[김승환의 뇌이야기] 기억, 너를 알려줘

[김승환의 뇌이야기] 기억, 너를 알려줘

김승환의 뇌 이야기

브레인 6호
2010년 12월 29일 (수)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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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엄청난 양의 외부 감각 자극과 정보에 노출된다. 이를 적절하게 처리, 기억하고 학습을 통해 삶의 영위를 가능하게 해주는 뇌의 능력은 신비롭고 놀랍다. 이러한 기억과 학습과 관련된 고도의 뇌기능은 뇌의 유연하고 정교한 구조로부터 나온다.

해마와 기억

뇌 깊숙이 자리한 기억의 핵심 부위는 그 특이한 모습 때문에 ‘해마’라고 불린다. 치매(알츠하이머 병) 환자의 경우 이 해마가 제일 먼저 손상을 입고, 그 결과 기억에 문제가 발생한다. 뇌 과학자들은 해마가 경험된 사건에 대한 기억을 형성하는 데 관여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해마와 인근 뇌 영역은 단기 기억을 장기 및 영속적인 형태로 변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이 영역이 제거된 환자는 바로 직전에 일어난 일들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사실 뇌의 한 부위만이 기억의 센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기억이 학습의 처리 및 분석을 담당한 대뇌의 여러 정보처리 영역에 넓게 분포되어 저장된다고 믿고 있다. 뇌의 각 부위가 영속적인 기억 저장에 적절한 역할을 담당하고 상호 공조한다고 보는 것이다. 해마의 경우 대뇌 피질의 광범위한 영역, 특히 학습과 언어 기능과 관련된 영역과 상호 연결되어 있다. 해마는 기억을 형성하고 조직화하는 반면, 대뇌피질은 사실과 사건들에 대한 지식을 오랫동안 저장하고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지식이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기능한다.

시냅스와 기억

기억이란 어떻게 생겨날까? 여러 연구에 의하면 기억은 뇌의 기본 단위인 뉴런 사이의 연결에서 지속적인 변화와 관련된다. 시냅스는 뉴런과 뉴런이 상호 통신을 하는 연결 구조로 기억의 저장고 역할을 한다. 최근의 동물 실험에서 과학자들은 연결된 두 뉴런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생화학적인 사건들에 의한 시냅스 강도 변화가 단기기억과 관련됨을 관찰했다. 회로가 고정된 컴퓨터와 달리 두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 회로는 자극과 뉴런들의 상호 활동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했다. 즉 두 뉴런들의 신호가 서로 상관성 또는 시간적 연관성을 가질 때 시냅스는 더욱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가소성을 보인 것이다.

기억의 연구에서 시냅스의 가소성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LTP(Long-Term Potentiation) 현상이 있다. 뉴런에 반복적인 자극을 주는 경우, 자극 후 시냅스의 반응 강도가 오랜 시간 증가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LTP 현상은 해마뿐 아니라 뇌의 여러 다른 부위에서도 널리 관찰된다. 최근의 쥐 실험에서는 적절한 유전학적 변형을 통해 뇌의 특정 부위와 특정 시간대에서의 LTP를 강화하여, 기억과 학습 효과를 증진시키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기억에 대한 많은 지식은 해마와 대뇌 피질에 가해진 상처로 인한 기억상실로부터 얻어졌다. 또한 기억에 의존하는 대표적 지적 활동인 언어 능력을 상실한 환자들과 정상인들의 뇌영상 연구를 통해 뇌의 관점에서 언어와 기억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질환 치료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 <토탈리콜>에서 사람의 기억은 타인에 의해 이식되고, 인위적으로 조작된다. ‘리콜’이란 회사는 사람의 뇌에 기억을 이식시켜 가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회사다. 영화에서 중복 이식의 충격은 주인공의 정체성 혼란을 야기한다. 이제 약물과 기계장치에 의해 조종되는 기억의 세계가 다가오고 있다. 이 미래 세계에서 과연 나란 존재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꿈을 먹고 자라는 기억

장기기억이 될 경험은 해마로 보내져 보관되며 그 경험을 재현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피질에 각인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해마의 경험 재현이 대부분 수면 중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에게 수면은 육체적 피로를 제거해줄 뿐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인식 작용도 한다. 수면으로 소비되는 3분의 1이라는 시간이 나머지 3분의 2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다.

수면 중에서도 깊은 수면 단계인  렘수면(REM:Rapid Eye Movement)의 단계에 들어서면 뇌의 혈류량이 많아지며 맥박, 호흡, 혈압, 체온이 상승한다. 감긴 눈꺼풀 안쪽에서는 눈이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보통 우리는 이 수면 단계에서 꿈을 꾸며, 몸은 마비된 것처럼 거의 움직이지 않고, 뇌는 활발한 활동을 시작한다. 렘수면은 기억을 보관, 유지하고 편성하며 필요에 따라 재편성한다. 이 동안 뇌는 단기간의 기억을 장기간의 기억으로 옮긴다. 그래서 렘수면 후에는 기억력이 뚜렷이 향상되는 것이다. 꿈을 먹고 자라는 것은 어린이들뿐만이 아니다. 뇌의 탱탱한 기억력을 위해 숙면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보자.



글.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뇌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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