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윤디자인연구소 편석훈 대표

(주)윤디자인연구소 편석훈 대표

폰트로 놀다, 폰트로 날다

브레인 3호
2013년 01월 11일 (금)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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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디자인이라는 회사명이 낯설다면 주민등록증을 찬찬히 살펴보자. 주민등록증이 없는 청소년이라면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방문해도 좋겠다.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글자들이 바로 윤디자인이 만든 서체들이다. 국내 1위 서체font 업체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한글과 우리의 관계를 발전시켜나가고 있는 윤디자인의 편석훈 대표를 만나본다.   







고구려의 힘을 담다

‘달팽이’, ‘고추잠자리’, ‘곰팡이’, ‘굴렁쇠’, ‘구름’, ‘야간비행’, ‘우체국’, ‘미소’, ‘풍경’.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모두 서체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 서체들은 윤 디자인에서 만들어낸 수십, 수백 종의 서체 이름 중 일부이다. ‘무슨 서체가 이렇게 많으냐’고 묻는 당신도 이미 수십 종의 서체를 사용하고 있으며 수백 종의 서체에 노출되어 있다.

서체명이 보여주듯 윤디자인은 한국적 서체를 지향한다. “한국적 느낌, 다시 말해 대한민국 산의 정기, 계절, 역사 등을 서체에 담아내고자 노력합니다. 봄체는 아지랑이 꽃피듯 하고,  고구려체는 묵직한 힘이 느껴지고, 백제체는 차분하면서도 명료하죠.

서체의 이름에서 느껴지는 느낌들이 서체 안에서 살아나야 합니다. 서체에는 그림이나 색상만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힘과 매력이 있어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체를 통해 다양한 감정들을 끌어내고 있거든요.”    

서체도 패션이다

손으로 적는 글자의 수보다 자판을 두드려 찍는 글자의 수가 더 많은 시대다. 따라서 인쇄물이나 서류 작성을 위한 서체뿐 아니라, 새로운 미디어에 어울리는 서체가 끊임없이 요구된다. 이는 서체를 디자인하는 이들에게 풀어야 할 과제로 다가온다.

“싸이월드 폰트도 만들었는데, 그와 같은 새로운 미디어 시장의 디지털 폰트는 기존의 폰트와는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젊은 소비층의 욕구에 맞춰지죠. 그래서 그 쪽은 폰트가 패션입니다. 빨리 써지고, 또 빨리 버려지죠. 스타체가 스타의 지속적 인기에 따라 수명을 함께하는 것과 같아요.

요즘 모바일이나 웹의 경우는 아예 이름부터 짓고 기획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엉뚱상상’, ‘My Boyfriend’ 시리즈 등이 그것이죠. 때문에 두 가지 시장을 함께 준비하고 공략합니다. 가끔 ‘이런 서체들을 만들어야 하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젊은이들의 변화와 요구에 대응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을 읽는 방도라고 생각합니다.”   

한글은 소중하지 않다?

다섯손가락을 쭉 펴서 한국인에게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문화를 물으면 한글은 항상 그 손가락 안에 포함된다. 우리의 말을 담고 있어서, 우리의 혼을 담고 있어서, 과학적 우수함이 증명된 문자라서. 모두 맞는 말이다. 한글은 그런 문자다. 그렇다면 ‘모양이 그 자체로 아름다워서’라는 답은 어떠한가. 국내에서보다 국외에서 이러한 점은 먼저 인식되고 인정받고 있다. 한글은 그 실용성과 모양새 모두 참 자랑스러운 문화이다.

그 자랑스러움이 한글을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를 키웠을까? 편 대표는 이의를 제기한다. “우리는 한글을 역사적인 문화유산이라고 말하지만, 말처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부 차원의 보호가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일반인도 한글을 어떻게 보호해나갈 것인가 하는 방법을 숙고하는 자세가 부족합니다. 하나의 예가 공짜로 베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화입니다. 하나의 서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6개월에서 1년이란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 노력에 대한 수고를 너무 쉽게 저버리죠.”

그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도 한글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고 있다. 지금도 그는 2002년부터 2003년 8월까지 진행했던 고문서 문화원형 복원작업을 바탕으로 고문서의 서체들을 제품화하는 작업들을 진행 중이다. 잊혀져가는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놀아야 얻는다

브레인 컨트롤 방법을 묻는 기자에게 “이거 얘기하면 내 자랑 되는데” 하며 편 대표는 말을 이었다. “다행스럽게 선천적으로 안목을 타고난 것 같습니다. 현실화시키려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떠오르면 ‘이건 된다’, ‘안 된다’ 하는 판단이 바로 서지요. 직원들이 제출한 디자인 샘플을 보고도 ‘정말 저건 되겠다’, ‘안 되겠다’하면 대부분 그 판단이 시장에서 입증이 되더군요. 그래서 직원들이 좀 힘들어합니다. 아무래도 미래 시장을 내다보는 안목이 남들보다 조금 앞서는 것 같아요. (웃음)”

그래도 뭔가 있을 것 같다고 재차 물으니 편 대표는 곰곰이 생각하다 말을 꺼낸다. “그 바탕에는 저 사람 ‘굉장히 논다’라고 할 만큼 자유스러움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정체되는 것을 매우 답답해하죠. 젊은 친구들의 생각을 알아내려고 노력하기 전에 스스로가 젊은 사람들의 측면에서 사고하려고 합니다. 생활의 폭도 마당쇠에서 왕족까지 다양하고요. 때문에 남들보다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할 수 있는 측면이 있죠. 이런 성향이 안목을 높이는 데 일조했으리라 봅니다.” 그의 말이 농弄이 아니라는 것은 1961년생인 그에게 청바지가 평상복처럼 잘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증명이 되는 일이었다.

딴생각이 꿈꾸게 한다

남들은 의아해할 수도 있는 그의 습관 중 하나가 ‘딴생각’이다. 함께 대화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몰래 몰래 딴생각을 한다.

“머리가 듀얼 프로세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일을 하면서 늘 딴생각을 해요. 상대편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문득 문득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거든요. 그리고 그걸 바로 행동으로 연결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아이디어를 떠올리면 이 일이 잘 될까, 안 될까 앞뒤를 재죠. 불은 켜지도 않고 죽이 되냐, 밥이 되냐 너무 고민들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일단 불을 켭니다. 발상을 추진하는 것, 재미있잖아요. 재미있게 일생을 사는 게 제겐 일단 중요합니다.”

때문에 그는 남보다 먼저 발상을 현실화시킨다. 간혹 그러한 일들은 세상의 행보보다 앞서 걸림돌에 걸리기도 한다. 4년 전에 서울시에 제안했던 간판문화가 그중 하나이다. 수년 전부터 그는 우리나라의 간판문화가 잃어버린 다양성을 회생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그래서 곧 서체와 캐릭터를 손쉽게 간판 디자인에 응용할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을 만들었으나 쓴물만 들이켜야 했던 것. 아직도 그는 윤디자인 서체로 서울시 곳곳에 아름다운 간판을 만들 수 있기를 꿈꾼다.    

문화 담고 날다

올해 그의 가장 큰 꿈은 또 다른 방법으로 한글을 상품화하는 것이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아름다운 패턴으로 재탄생시키고 싶습니다. 지금 그 패턴을 옷이며 운동화 등의 패션과 연결시켜 유럽 시장을 공략하려고 준비 중이죠. 한글이 인사동에서 일부 소품 디자인으로 활용되거나, 몇몇 예술가들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고는 있지만, 그런 접근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글 패턴이 이렇게 대단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드릴 겁니다.”  

그는 분명 젊다. 젊음은 나이를 넘어 활력에서 나온다. 넘어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달리며 생각하는 그의 뇌는 여전히 나이를 깎아 먹는 중이다.      

글·최유리
yuri2u@brainmedia.co.kr│사진·강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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