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여론의 대표격인 ‘댓글’은 이제 10대 청소년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의 의사를 전달하는 보편적인 의사표현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댓글 문화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악플러’들의 행보다. ‘악플러’란 인터넷상에서 기사나 자료 등에 악의적인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2007년 한국일보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열 명 가운데 세 명 정도가 인터넷에 악플을 단 경험이 있다고 한다. 또 설문에 응한 대학생의 68%는 ‘현재의 인터넷 댓글 문화는 수준이 떨어지는 악플러의 천국’이라고 지적했다.
악플러의 천국?
인터넷 댓글 문화의 심각성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례로 지난해 중국에 대지진이 났을 때, 우리나라 네티즌 중에는 “그럴 줄 알았다”, “꼴좋다”는 댓글을 단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당시 한창 반중 감정이 고조될 때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수많은 인명 피해를 입은 이웃 나라의 천재지변을 안타까워하기는커녕 ‘신이 내린 재앙’이라고 고소해하는 것은 분명 상식에 어긋난 행동이었다. 이처럼 악플이 문제가 되는 것은 가해자 대부분이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다.
연초에 군포 연쇄 살인 사건이 도마 위에 올랐을 때는 사형제 폐지 논란이 다시 불거지기도 했다. 사회평론가 진중권은 그의 저서 《호모 코레아쿠스》에서 사형제 폐지 논란을 예로 들어 한국 네티즌의 댓글 문화가 다분히 감정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독일의 시사평론지 <슈피겔>에서 사형제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을 때, 어느 사형제 폐지 찬성론자가 “누가 인간에게 다른 인간의 생명을 뺏어갈 권리를 주었는가?”라고 묻자 반대론자는 “그럼 누가 인간에게 다른 인간을 구속할 권리를 주었는가?”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나 한국 네티즌의 논쟁은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많은 네티즌이 사형제 폐지에 찬성하는 네티즌을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물론 “네 딸이 당해도 똑같이 얘기할래?”라는 식의 인신 공격, “그런 놈들은 교수형에 처해도 시원찮다”, “능지처참해야 한다”는 식의 폭력적이고 감정적인 댓글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우리 민족은 ‘정의 민족’, ‘신바람 민족’이라 불릴 정도로 역동적인 민족성을 띠고 있어서 특정 이슈에 대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특성이 있긴 하다. 이런 정서적 반응은 월드컵 응원의 감동적인 집단 문화를 창출하기도 했고, 태안 앞바다의 원유 유출 사고에 전국적인 자원봉사 물결을 만들기도 했다.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셨을 때도 40만 명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반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과거에는 사적인 자리에서 술 한잔 하면서 욕먹는 것으로 끝났을 정치인들도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수백만 명의 융탄 폭격을 받기에 이르렀고, 반감을 가진 집단에 대한 무분별한 테러, 연예인에 대한 마녀사냥식 매도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정보보다 감정적인 정보에 반응하는 성향이 더 강하다고 한다. 댓글에 담긴 감정 반응은 인터넷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파급되어 감정적으로 동화된 집단을 형성하고, 이들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서슴없이 공격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특성이 악용되었을 때 무고한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으며, 각종 허위 정보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다.
악플의 악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사람은 악플러 자신
이러한 악플의 문제점은 뇌생리학적 관점에서도 무시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지만, 악플은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 사람은 물론이고 악플을 작성한 당사자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악플은 어떤 사건에 대한 자신의 공격적인 태도나 분노를 표현한다. 인간은 난폭한 행동이나 과속 운전을 할 때 체내에서 아드레날린이라는 공격 호르몬을 분비한다. 아드레날린은 생명이 위독하지 않을 정도의 긴급 사태에 직면했을 때 이를 방어하기 위해 분비하는 호르몬이다. 또 어떤 일에 분노를 느낄 때는 ‘분노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노르아드레날린을 분비한다.
실제로 공격적인 글을 올린 후에는 그 행동을 방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뇌에서 아드레날린을 분비한다. 뇌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 흥분 상태가 지속되어 스스로 행동을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노르아드레날린의 분비가 증가하면 심장이 빨리 뛰고 혈압이 높아질 뿐 아니라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일시적으로 이런 상태가 되면 뇌의 활동이 활발해지지만 장시간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 몸의 면역 기능이 저하돼 질병에 노출되기 쉬워진다.
만약 인터넷에서 접한 사건들로 인해 격렬하게 화를 내고 악의적인 댓글을 단다면 공격 호르몬의 영향으로 두통, 심장의 두근거림, 식은땀, 호흡곤란이 올 수 있다. 일상적으로 이러한 호르몬에 자주 노출되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고 어떤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자신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지레 단정 짓고 심할 때는 상실감으로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악플러나 인터넷 폐인들이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는 현상은 이러한 호르몬의 작용과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인터넷에 중독되는 이유는 뇌가 새로운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제공하는 ‘새로운 정보’는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쾌락 호르몬을 분비한다. 그러나 요즘의 인터넷 공간에는 걸러지지 않은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정보가 범람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자극적인 정보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즉각적이고 폭력적인 감정 반응에 길들여져서 결국 공격 호르몬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을까? 특별한 방법은 없다. 그저 우리 뇌가 즉각적이고 부정적인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마다 의식적으로 ‘긍정’의 신경회로를 단련하는 수밖에.
글·전채연 ccyy74@brainmedia.co.kr | 일러스트레이션·이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