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8월, 서울 번동에 위치한 놀이공원 ‘드림랜드’에서 20대 중반의 한 남자가 18.5미터 높이의 번지점프 대에서 ‘번지!’라는 기합과 함께 뛰어내렸다. 잠시 후 그는 번지점프 특유의 튕김 없이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다. 그의 등에는 번지 로프가 묶여 있지 않았다. 자유낙하하던 그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다행히 에어매트 위로 떨어져 목숨을 건졌다. 안전요원이 실수로 로프를 매지 않은 것이었다. 하루에도 몇 십 번씩 로프를 묶던 안전요원이 어떻게 이런 황당한 실수를 하게 되었을까?
늘 하던 대로 일하는 위험성
안전요원은 로프를 묶는 대신 신발 끈을 묶었다. 신발 끈을 묶는 도중에 그는 남자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언가 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느꼈음에도 그는 평소 하던 대로 고객에게 다가가 힘차게 ‘번지!’라고 외쳤다. 신발 끈을 묶는 일과 로프를 묶는 일이 비슷했기 때문에 안전요원의 뇌가 깜박 속았고, 그 결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이미 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웃지 못할 실화는 ‘늘 하던 대로’ 일하는 것이 비즈니스에서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일수록 뇌의 해당 부분을 더 활발하게 움직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전문적인 기술을 획득한 사람의 뇌 활동은 학습 이후에 대개 줄어든다. 우리가 미숙할 때, 다시 말하면 배울 게 많을 때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이지만, 익숙해지면 거의 자동적으로 일을 진행한다. 일의 능률이 오름에 따라 필요한 뇌세포가 줄어드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지식 노동자들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거의 의식하지 않으면서 일을 한다.
뇌의 배신
이러한 ‘자동 조정 장치’로 움직이면 큰 이점을 누릴 수도 있지만, 큰 실수가 발생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기업경영에서 이러한 실수들은 더욱 빈번히 일어나고, 그 결과는 매우 치명적이다. 예컨대 1982년, 워싱턴에서 발생한 플로리다 항공사 90호기 여객기의 추락사건은 체크리스트에 의한 ‘기계적인’ 점검이 원인이었다.
체크리스트의 항목에 따라 기기를 점검하던 여객기의 기장은 영하 7도의 눈이 날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항빙抗氷 장치가 ‘꺼져 있다’고 보고받지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플로리다 날씨는 연중 따뜻했기에 항빙 장치가 “꺼져 있다”는 대답을 수없이 들었고, 기장의 뇌가 그 대답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엔진의 주요 측정기가 얼어버렸고, 비행기는 이륙 직후 포토맥 강에 곧바로 처박히고 만다. 번지점프의 안전요원과 마찬가지로 90호기의 기장은 자신의 뇌에 배신을 당했고, 이 사소한 과실이 78명의 고객이 목숨을 잃는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많은 비즈니스 현장에서 직원들을 관리하고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체크리스트를 활용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체크리스트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오히려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직원들이 단순히 그 ‘활동’에 집중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뇌에 관한 지식이 있는 관리자는 활동이 아닌 ‘성과’에 초점을 맞추어 체크리스트를 개발한다. 앞선 플로리다 항공의 체크리스트가 활동(항빙 장치가 켜져 있는가) 자체가 아니라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변수들(밖에 눈이 내리는가, 엔진 측정기가 얼 가능성이 있는가)에 주의력이 집중되도록 했다면 그와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뇌의 주의력을 가장 중요한 성과에 집중하도록 하며, 책임감 또한 높인다.
뇌를 경영에 접목하다
뇌를 알게 됨으로써 리더는 조직 구성원의 행동과 그에 따른 연관관계에 대해 알게 된다. 이런 연관관계에 대한 통찰은 리더가 조직을 바꾸고, 구성원들의 관계를 향상시키며, 새로운 기업문화나 의사결정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라는 막강한 도구가 뇌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읽기 위해 활용되면서 뇌과학 이론들이 쏟아지고, 최근 들어 이러한 이론을 경영에 접목하려는 시도들이 늘고 있다.
소비자들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 설문조사에만 의존했던 기업들은 이제 뇌를 들여다본다. ‘좋다’는 느낌이 들 때 뇌의 특정부위에 피가 몰리는 현상을 측정하는 것이다. 기아자동차가 올해 초 신형 중대형 승용차를 출시하면서 ‘K7’이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은, 국내외 소비자 2백여 명의 뇌 반응을 측정한 결과이다.
다임러-크라이슬러도 유럽 소비자들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대의 차를 보여주고 뇌 반응을 측정하는 ‘뇌 시장 조사’를 실시했다. 영화 제작자를 위해 ‘영화 예고편 뇌 반응 시사회’를 열어주는 마케팅 회사도 생겼다. 사실 소비자들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이제 기업들은 사람들의 뇌를 뚫고 들어가 소비자 자신도 모르는 그 속살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다.
뇌를 알면 리더의 운명이 바뀐다
앞서가는 기업들은 뇌과학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뇌 신경망에 대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구글 검색엔진을 개발한 한편, 최근 5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여 일부를 온라인 광고와 뇌 반응에 대한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아마존 등의 인터넷 기업들은 뇌과학 전문가를 고용하여 미래의 인터넷 환경 변화에 따른 사업기회와 위협을 연구하고 있다. 아직 초기단계이지만 뇌과학은 경영의 여러 분야에서 응용이 확대되고 있으며, 특히 인간의 심리와 감성을 직접 측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경영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통해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개인의 생각과 행동은 모두 뇌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뇌를 알아야 제대로 경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뇌를 알면 직원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여러 한계들을 넘어설 수 있다.
많은 관리자들이 효과적인 경영을 위해 경영학 서적을 뒤적이지만 피상적인 현상만을 분석하거나 단편적인 해결책에 머무르기 일쑤다. 그것보다는 인간행동의 근본인 ‘마음’, 곧 뇌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뇌에 대한 깊은 이해야말로 창조의 시대를 살아가는 리더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지식이다. 그러므로 경영학보다는 뇌과학에 관심을 가져보라. 뇌를 알면 리더의 운명이 바뀐다.
글·이형우 (주)마이다스아이티 대표 www.midasi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