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이애미대학병원, 두 달 전 자동차 사고로 뇌를 다친 9세 소년 윌리엄스는 특별히 고안된 방에서 선잠이 든 상태로 치료를 받는다. 이 방에 들어서면 환자의 안정을 유도하는 라벤다향이 후각을 자극하고 적절한 빛과 음악이 시각과 청각을 자극한다. 거품 튜브를 만지면서 느끼는 진동은 촉각을 자극해 뇌로 전달된다.
뇌는 셀 수 없이 많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뇌의 활동을 유도하는 주된 요소는 감각기관들로부터 끊임없이 전달되는 여러 종류의 정보들이다.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여 손상된 환자의 뇌기능을 향상시키는 치료를 다중감각치료법이라고 한다. 윌리엄스의 담당의사는 치료가 계속되면서 “아이가 전보다 더 잘 알아보고 소리를 내려고 시도한다”면서 소년의 뇌 기능이 향상됐음을 확인시켜줬다.
사실 빛과 소리, 움직임 등이 환자의 심리적, 정신적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새로울 것 없는 사실이다. 1860년대에 살았던 나이팅게일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의 간호일지에는 환자들이 밝은 색의 꽃과 그림을 보면 회복 속도가 빨라진다는 임상 기록이 적혀 있다. 2002년에 오스트레일리아 의료진들은 음악이 환자의 불안증을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치료를 할 때 음악을 사용하면 혈압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고 진통제 사용을 줄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혜민병원 척추내신경센터 최창명 박사는 음악이 수술 성공률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98명의 척추 이상 환자에게 내시경 디스크 수술 전에 음악 치료를 병행한 결과 95%가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고 수술 성공률도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수술의 전 단계에서 음악은 환자의 불안감과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신질환 치료에 주로 사용된 감각 치료
이러한 이유로 기존의 감각치료는 주로 정신질환 치료에 이용되어 왔다. 실제로 음악 치료나 미술 치료는 신경성 질환자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육체적인 질병으로 나타나는 경우, 그리고 정서장애나 학습장애, 성격장애를 겪는 환자들에게 주목할만한 치료효과를 보였다. 특히 음악은 자폐아를 치료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닫힌 마음을 여는데 음악이 자연스러운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자폐증 아이들은 조그만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음악은 다양한 변주를 통해 새로운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 있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간혹 뇌성마비 아이와 같이 육체적인 장애를 갖고 있거나 암이나 불치병으로 투병하는 환자들에게도 음악이 사용되었지만 적극적인 치료법으로써가 아니라 환자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보조적인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뿐이다.
이처럼 음악과 미술, 무용 등의 감각적인 자극이 환자의 억눌린 마음을 풀고 병을 치료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치료 원리에 대해서는 속시원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가장 신빙성 있는 설명은 플라시보 효과이다. 플라시보 효과란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가짜 약을 투여하는 방법인데, 투여한 약의 약리학적 작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약을 투여했다는 사실 자체에 의해 증상이 호전되는 효과로써 대개 심리적인 영향에 의한 것으로 간주된다.
물리적인 뇌 손상에도 감각치료 가능
따라서 물리적으로 손상된 뇌의 기능을 회복하는데 빛과 소리, 움직임 등의 감각적인 자극을 활용한 치료법은 주목할 만한 시도로 평가된다. 이는 빛이나 소리, 향기나 움직임이 뇌의 정서적인 면 뿐 아니라 물리적인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다중감각치료의 핵심은 뇌도 우리 몸의 일부라는 데서 시작된다. 몸을 쓰면 쓸수록 근육이 생기듯 감각을 통해 두뇌를 자극하면 뇌신경세포도 더 활성화된다는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령 다리뼈가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뼈가 어느 정도 아물면 물리치료를 시도하는 것처럼 사고에 의해 손상된 뇌 또한 감각을 자극하는 물리치료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두뇌에 물리적 압력을 가해 치료를 할 수는 없는 일.
뇌는 경험을 많이 할수록 더 많은 신경세포들이 연결되기 때문에 뇌에 손상을 입었을 때 여러가지 감각을 동원하여 뇌를 자극시키면 그 부위의 시냅스들이 강화되고 신경세포가 발달한다는 것이다. 이는 운동을 많이 한 쥐가 그렇지 못한 쥐보다 뇌세포 수가 더 많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를 비롯, 여러 동물실험을 통해 입증된 결과다. 또 하버드 의대 마트 트라모 박사는 운동을 하면 근육이 강화되는 것처럼 뇌도 음악적 훈련을 통해 점점 강화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즉 유명한 남성 고전 음악가들의 소뇌가 평소 음악 교육을 거의 받지 않은 다른 남성들보다 5% 더 크다는 것이다.
청각자극이 가장 효과적
이렇듯 오감의 자극은 인간의 심리적인 면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뇌의 기능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여러 개의 감각기관들 중 뇌에 미치는 영향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청각기관이다. 청각세포들에 의해 뇌로 전달된 소리는 주파수에 따라 뇌에 접촉하는 위치가 다른데 소리를 접수하고 판독하는 뇌세포들은 뇌의 전반에 걸쳐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뇌를 적절히 자극하여 뇌 기능을 향상시킨다. 따라서 두뇌가 가장 유연하고 적응력이 뛰어난 어린 나이에 어떤 음악을 듣고 자라는지가 중요해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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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아이의 뇌 형성을 도울 뿐 아니라 그 기능을 향상시키는 역할까지 한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속속 제기됐다. 잘 알려진 모차르트 효과는 캘리포니아대학 프란시스 로셔 박사와 고든 쇼 박사의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만 3~5세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모차르트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 음악을 듣지 않았을 때보다 문제해결 능력이 약 30% 이상 향상된 연구 결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는 반복적인 모차르트 음악 청취가 추상적, 공간적 사고 능력을 향상시켜준다는 설명에 힘을 실어준다.
이와 비슷한 연구로 미국 어바인 소재 캘리포니아大 프랜시스 라우셔 교수팀은 3~4살 어린이들에게 피아노 레슨을 시킨 결과 퍼즐 맞추기 실력이 34% 향상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피아노 레슨이 수학과 과학에 필요한 시공간 추론 능력과 관련된 신경세포 사이의 특별한 연결망을 발달시킨다고 추측했다. 이와 더불어 어렸을 때부터 악기를 연주하면 우뇌 피질을 자극하게 되고 나아가 신경망을 통해 전체적인 대뇌 활동을 증가시켜 어린이의 기억력 향상에 이바지한다고 한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의 감각 자극이 두뇌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자극에 따라 반응하는 뇌의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트라모 박사는 음악의 화성에 따라 뇌의 반응이 확연히 구분된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는데, 감미로운 음악과 불협화음으로 구성된 음악을 틀어주고 시신경 활동 변화를 관찰한 결과, 각각에 대한 감정이 두뇌의 서로 다른 영역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미국 신경학회에서는 음악에 따라 정서적인 활동을 나타내는 뇌의 부위가 다르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으며, 맥길 대학 앤 블러드 박사는 이에서 더 나아가 “어떤 종류의 신경 질환이든 그에 맞는 음악을 이용해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글│전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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