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짱의 봄

뇌짱의 봄

두뇌쑥쑥 육아일기

뇌2004년4월호
2010년 12월 07일 (화)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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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 백수, 성운

성운이가 학생이 됐다.1학년 8반이다. 아침이면 개나리처럼 노란색 잠바를 입고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다. 하나밖에 나지 않아 고민이던 대문니도 비록 모양은 이쁘지 않지만 또 하나가 나고 있다. 봄인가보다.

학교는 오전 열한시 반이면 마친다. 일찍 집에 온 성운이는 그때부터 논다.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학원에 가고 없다. 일주일에 한번 뇌호흡을 하고, 일주일에 한번 영어 선생님 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하는 성운이는 대부분 혼자 논다. 동네 백수다. 우리 아파트 있는 데가 꽃동네라고 불리기 때문에 꽃동네 백수라고도 한다.

요즘 아이들은 정말 배우는 것도 많고 바쁘다는 것을 갈수록 실감한다. 성운이처럼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는 없는 것 같다. 가끔 성운이가 잔소리를 한다. 엄마는 왜 그렇게 공부를 시키지 않느냐며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배우고 싶다고 한다.그러면 난 성운이와 한참 이야기를 한다. 학원이나 학습지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기는 것은 좋지 않다는 내 의견을 말하면 성운이는 이해한다. 유치원 방학 때 너무 시간이 많이 남아 학원에 보낸 적도 있다. 바둑이랑 피아노를 잠깐 배웠다. 초등학교 시절의 학교 외 교육에 대해서는 우리 부부가 한번 의논해 봐야할 시점이다.

학원에 가지 않는 대신 성운이는 책을 많이 읽는다. 매일 일기를 쓰고 동시를 두 편씩 꼭 쓴다. 엄마가 작가니까 성운이가 쓴 글에 대해서 친절하게 지도해줄 것 같지만 절대 아니다. 우리 부부는 성운이 동시를 읽으며 즐겁게 웃고는 끝이다. 성운이가 쓴 시들은 한결같이 기발하고 재미있다. 보탤 말이 없다. 글씨 크기도 철자법도 엉망이지만 그것 역시 한번도 지적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시작하면 그 때, 그동안 써놓은 동시들을 같이 읽어볼 생각이다. 자신의 엉망진창 철자법을 깨닫고는 깔깔깔 웃을 성운이 모습이 벌써 선하다. 그때는 철자법에 관한 모든 것이 성운이 뇌에 쏙쏙 들어갈 것이다.

완전백수, 성영

꽃동네 백수 성운이가 주로 같이 시간을 보내는 상대는 완전백수 성영이다. 아직 어린 형제들 치고는 둘이 제법 잘 논다. 둘이 잘 노는 이유의 대부분은 성운이에게 있다. 고집 센 성영이를 잘 받아주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성영이를 귀여워하고 재밌어 한다. 둘이 통한다. 자신을 분별심 없이 대하니까 동생도 형을 좋아한다.

한 번은 성영이가 아랫도리를 벗은 채 TV위에 올라가 오줌을 싼 적이 있다. 본체에 구멍이 뻥뻥 뚫린 구형 TV안으로 성영이 오줌이 가차 없이 흘러 들어갔다. 얼른 TV 전원을 끄고 코드까지 뽑기는 했지만 기가 막혔다. 그때 내가 웃음 반 분노반인 것과는 달리 성운이는 백퍼센트 웃음이다. 재미있는 이벤트라도 생긴 것처럼 좋아한다. 당연히 성영이는 “내가 못살아”를 연발하며 무지막지하게 엉덩이를 씻기는 엄마보다는 자신의 해프닝을 즐기는 형에게 점수를 준다.

야단치는 나를 피해 형에게 가서 안기는 것이다. 오줌 세례를 받은 우리 TV는 며칠동안 MBC가 잘 나오지 않았다. 겨우 잘 나오기 시작할 무렵 성영이는 또 한번 올라가 오줌을 쌌다. 이번에는 뭔가 전선이 타는 냄새가 나는 듯 하더니 마침 아파트에 정전이 됐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서 경비실에 알아봤더니 우리집만 정전이었다. 성영이 오줌 때문에 순간적으로 두꺼비집이 내려간 것이다. 어른들은 이럴 때 재미있어도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표현을 한다.

해도 너무한다는 등 니가 지금 똥오줌 못 가릴 군번이냐는 등. 그런데 성운이는 정말 재미있어서 어쩔 줄 모른다. 데굴데굴 구른다. 재미있다는 생각 말고는 일체의 잡념도 없는 상태가 된다.

성영이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방법에도 성운이만의 독특함이 있다. 제일 좋아하는 건 인체공부다. 앉아있는 성영이 앞으로 가서는 “형아가 인체공부 시켜줄께”하며 자신의 바지를 확 내리고는 엉덩이를 성영이 얼굴에 바싹 들이민다. “자 이게 엉덩이야. 따라해 봐. 엉덩이”

그러다 성영이가 기분 나쁠 때는 가차 없이 한 대 맞기도 한다. 며칠 전에도 무슨 일에 화가 났는지 발 뒤꿈치 까지 들어서 형 뺨을 야무지게 때리고는 ‘쯧’ 혀를 차고 가는 성영이 때문에 온 가족이 기가 막힌 일이 있다. 하루에 한번 정도는 꼭 동생에게 맞고 울면서도 같이 때리지는 않는다. 동생이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형제 싸움에는 될 수 있으면 개입하지 않는다. 어차피 둘이 풀어 가야할 문제다. 성영이가 태어난 이후 말을 못하는 성영이를 대신해서 성영이의 심정을 표현하는 역할을 할 때는 무조건 형을 좋아하고 칭찬하는 말을 했다. “성운아, 성영이가 형 멋있대”, “형 사랑해요”, “형이 있어서 정말 좋아요”…. 그런 말들의 되풀이가 무의식중에 성운이 뇌 속에 성영이에 대한 좋은 정보를 만들었을 것으로 믿는다.

우리 부부는 자주 생각해 본다. 여덟 살, 네 살 아이의 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무엇일까? 성운이에게 뇌호흡만은 꾸준히 시키는 이유도 이 질문과 관계가 있다.

13번과의 갈등

엄마들이 자주 물어온다. “뇌호흡 하면 뭐가 좋아요?”
그때마다 딱 부러지게 설명하기 힘들었는데 성운이가 학교 들어가서 겪은 일이 정확한 답을 한 가지는 가르쳐 줬다.

처음 입학하고 며칠동안 엄마들이 하교시간에 기다렸다가 아이와 함께 집으로 올 때다. 성운이 반이 현관을 나와 선생님을 따라 교문까지 걸어가는데 성운이 바로 뒤의 13번이 성운이를 계속 때리는 게 눈에 띄었다. 입학 다음날부터 괜히 성운이를 툭툭 건드린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그날은 노골적으로 발로 차고 밀고 했다. 12번 성운이가 빨리 안 간다는 이유였다. 성운이는 짜증스런 얼굴로 어쩔 줄 모르고 맞기만 했다. 자신의 아이가 바로 눈앞에서 다른 아이에게 대책 없이 맞는 걸 본 엄마들은 그때의 내 심정을 알 것이다. 한순간 이성을 잃고 확 열이 받치는 자신을 통제하느라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 성질대로라면 그대로 달려가 13번 멱살을 잡고는 “너 아줌마한테 죽을래?”하고 싶은 걸 참고 참았다.


성운이를 데리고 나오며 왜 맞느냐? 맞기만 하면 안 된다. 울분을 토하는데 마침 남편이 전화를 했다. 용건도 듣지 않고 13번 이야기를 하며 반 죽이고 싶은 걸 참았다는 거친 표현까지 마구 썼다. 어떻게 생긴 아이냐는 남편 물음에 멀리서 본 13번의 모습을 악마처럼 묘사했다. 편협한 분노로 눈이 먼 나의 상상력은 그 아이의 부모가 어떤 사람일거라는 것 까지 확신처럼 넘겨짚고 있었다. 부모까지 악마로 묘사하고 싶은 걸 간신히 참느라 힘이 들었다. 성운이 앞에서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은 끓어오르는 감정 때문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이성이 돌아오고 나서야 이 문제가 성운이에게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운이와 이야기를 했다. 13번은 내일도 때릴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엄마가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가 오가고 나서 성운이가 말했다. “내가 해결해 볼게.”

뇌 속에 사는 황금짹짹이에게 물어보겠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성운이는 잠시 후에 나왔다. 황금짹짹이 말이 푸시업을 열심히 해서 아무나 때리지 못하게 힘을 기르고 또 친구들한테 말을 많이 해서 친해지라고 했다는 것이다. 내일 가서 13번에게 자기가 직접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성운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13번 생각이 났지만 일부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엄마 때문에 부담을 느껴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에 성운이가 부딪쳐 해결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교시간에 맞춰 학교에 도착한 나는 성운이 반이 나오길 기다렸다. 결과가 궁금했다. 분홍색 명찰을 단 성운이 반이 나왔다. 일부러 멀리서 지켜봤다. 놀랍게도 13번은 성운이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 나를 발견한 성운이가 기쁜 얼굴로 뛰어왔다.

“엄마, 내가 13번한테 얘기 했어.”
“그래? 뭐라고?”
“응. 앞에 있는 애들이 빨리 안 가서 그러는 거니까 밀지 말라고 좋게 얘기 했더니 알겠대. 그러더니 안 밀고 안 때리더라.”

대견함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잘했다고 했더니 성운이가 한수 가르친다.

“으이그. 좋은 말로 하면 될 걸 엄마는 반 죽인다고 그러냐? 애들한테 소문낼 뻔 했잖아. 우리엄마 깡패라고”

이거다. 뇌호흡을 오래 한 성운이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뇌 속에 황금짹짹이라는 존재를 기르는데 그건 성운이 안에 있는 가장 현명한 자아이다.

황금짹짹이가 성운이에게 뇌로 입력되는 정보처리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같은반 친구가 너를 때린다, 어떻게 할래? 라는 정보가 들어왔을 때 성운이는 그 답을 스스로 찾아내서 문제를 해결했다. 엄마들이 물어 올 때 이제 한 가지 대답은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됐다. “뇌호흡을 제대로 하면 정보처리를 엄마보다 잘 하거든요. 뇌짱이죠”

푸시업을 50개 하다

분노를 지우고 13번을 보니 그저 개구쟁이 1학년이었다. 성운이는 현재 13번과 잘 지낸다. 감정적인 엄마 때문에 첫 단추를 잘못 끼웠을 수도 있었는데 다행이다.

푸시업도 매일 열심히 하더니 오늘은 50개를 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팔로 끝까지 인내하는 성운이를 보며 우리 아이들은 우리 세대보다는 훨씬 의식이 큰 사람이 될 것을 믿음이 생긴다. 아이들은 부모가 믿는 대로 된다고 했다.
모든 아이들이 이미 뇌짱이라는 것을 모든 부모가 믿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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