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공대 물리학과 김승환 교수

포항공대 물리학과 김승환 교수

뇌를 탐구하는 뇌

뇌2004년3월호
2013년 01월 11일 (금)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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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려면 지도가 필요합니다. 만일 지도가 없다면 만들면서 가는 것이 선구자의 운명이죠.” 이번 연구결과를 설명하며 김교수는 이렇게 말문을 연다.

이 연구는 포유류 뇌의 시각피질에 있는 뉴런들의 패턴에서 물리학적 모형을 추출해낸 것으로 뇌 지도의 신비를 한 꺼풀 벗겨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원숭이 뇌의 시각피질에 있는 뉴런들은 작은 집단을 이루고 있는데, 이 집단들은 수평 방향, 수직 방향 등 각각 자기가 좋아하는 방향만을 인식한다. 그런데 출생 전에는 뉴런에게 이런 선호하는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고, 출생 후 뇌로 들어오는 자극과 주위 환경에 따라 각 뉴런들이 스스로 좋아하는 방향을 정해간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성숙한 뇌지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연의 위대함은 이렇듯 뇌 속 신경세포 하나하나에서 경이를 자아낸다.

반딧불이 준 힌트

김승환 교수는 이 연구의 아이디어를 반딧불에서 얻었다고 한다. 

“반딧불을 본 적이 있죠? 수천마리가 동시에 빛을 반짝입니다. 사실 두 사람이 발맞추어 걷기도 힘듭니다. 군대에 가면 수백 명이 교관의 구령에 맞춰 행군을 하는데, 오른발 왼발 똑같이 맞추기가 쉽지 않죠. 그런데 반딧불은 수천 마리가 구령도, 교관도 없이 밤이 깊어갈수록 동시에 번쩍번쩍 빛을 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답은 반딧불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서로 눈치작전을 피면서 ‘어, 제가 더 빨리 하네, 그럼 나도’ 이런 식으로 맞추어나가는 거죠. 이것을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라고 합니다. 자연계는 이런 자기 조직화를 통해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가죠. 이러한 현상들을 물리적 모형으로 만들어 설명하는 것이 비선형 복잡계 연구입니다.”

그런데 그의 설명에 따르면 반딧불이 한 번 반짝하는 것과 뉴런이 활성화되어 신경신호를 번쩍하고 내보내는 것은 결국은 같은 원리라는 것. 반딧불 여러 마리가 눈치껏 함께 빛을 내듯, 뉴런도 주위의 뉴런과 적절히 집단을 이루어 함께 활성화된다.








<그림1> 원숭이 뇌의 시각피질 지도



시각피질에서 각 뉴런들이 어떤 방향을 좋아할지 결정하는 것도 같은 원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뉴런의 방향성 분포를 색깔로 나타내면 복잡한 가운데 규칙성이 있는 아름다운 패턴이 형성되는데 [그림 1], 이 패턴은 놀랍게도 물리학의 대표적 모형인 스핀의 동역학과도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번 연구는 뇌피질 발달과 뇌기능 지도연구에 중요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느 학자나 그렇듯 김 교수도 그의 연구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한창 신이 나 보였다.  “그러니까 그 친구들이 말이지…” 하며 그는 자주 뉴런을 ‘친구’, ‘녀석들’이란 호칭으로 불렀다. 심지어 때론 직접 뉴런이 되어(?) 서로서로 눈치를 보며 질서를 이루어가는 이들의 움직임을 흉내내기도 했다.

뉴런을 ‘친구’라 부르는 사나이

‘별은 왜 빛나?’, ‘밤 하늘은 왜 까매?’ 어린 시절에 누구나 그러하듯 보고 경험하는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 어린 질문들을 따라오다 보니 물리학자가 되어 있었다는 그는, 과학자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엇이 되었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참동안 답을 찾지 못한다.

“생각을 못해 봤어요.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대학을 진학할 때 공학같은 실용적인 학문을 해야 하지 않나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순수과학 분야를 선택했고 후회는 없습니다. ‘경자유전’이란 말이 있듯이 밭을 갈다 보면 먹고사는 문제는 그냥 해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교수는 학생시절엔 먹성과 체력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빠른 속도로 많은 음식을 먹는데다(이는 인터뷰 후 함께한 식사에서 여지없이 증명되었다^^), 워낙 운동을 좋아하는 성격이고 보니 체력이 단련되어 연구실에서 꼬박 밤을 지새워도 쌩쌩했을 만큼 무쇠체력이었다고.
졸업 이후 그는 코넬 대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90년 포항공대에 부임해 97년에는 포항공대 뇌연구센터 초대 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국가지정연구실인 비선형 및 복잡계 연구실을 맡고 있다.

뇌를 탐구하는 뇌

물리학자로서 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복잡한 세상 뒤에 숨어있는 원리를 발견하는 연구가 전공인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고 한다. 뇌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증폭된 뇌 연구와 과학 매체에 소개된 뇌 특집 기사들을 읽으며 초기의 자연과학 대상을 벗어나 뇌의 신비에 대한 연구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90년대 초반 몇몇 지인들과 함께한 스터디 그룹을 통해 뇌연구에 입문한 후, 그는 물리학자로서 뇌연구에 기여할 수 있음을 확신했다.

“재밌는 명제가 ‘뇌를 탐구하는 뇌’죠. 뇌연구에 끝이 있을 수 있을까요? 다른 주제를 연구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 자신의 뇌를 써서 뇌를 연구하는 것인데,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 과학적 진보로 지구를 포함한 우리 주위 자연의 지도는 어느 정도 만들어졌지요. 하지만 우주 전체의 지도는 아직 미완성입니다. 뇌연구의 경우 이제 지도의 탐색단계에 불과하지만 작은 한 걸음 한 걸음을 모아 밝혀낸 지도로 일부 기능만 구현하더라도 궁극적으로 뇌질환치료제나 지능로봇 등에 활용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현재 국가적인 차원의 뇌연구 지원도 이런 결과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죠.”

뉴턴이 존경스런 이유

김교수의 방문에는 대한민국 전도가 붙어있다. 그는 평소에도 지도를 자주 들여다보고 도로망을 자세히 살펴본다고 한다. 뇌 속 도로망을 연구하는 그에게 사람사는 대한민국에 길이 연결되어 가는 원리도 결코 무관하지 않을 터, 그 속에서 사고의 확장이 일어나겠구나 싶었다. 물리학자의 뇌 쓰기가 궁금해진 기자는 어떻게 발상을 하고 그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지 물었다. 

“마치 흩어진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머리 속에서 사고思考실험을 많이 하죠. 주로 컴퓨터를 이용해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실험해 보는데, 인고의 과정을 거쳐 그 퍼즐의 윤곽이 드러날 때면 흥분과 쾌감을 느낍니다.”







연구실 한쪽 벽엔 포항공대 초대총장 故 김호길 박사와 아인슈타인의 사진도 나란히 붙어 있었다. 김호길 총장은 평소 존경하던 물리학자이기도 하고 또한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미국에 남을지 고국으로 돌아올지 고민하던 그를 포항공대로 이끌어 주었던 분이다. 유능한 인재들이 고국의 과학발전을 위해 귀국하여 헌신하길 바랬던, 무척 존경하는 분으로 올해가 10주기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사진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김호길 박사 사진 옆에 걸린 아인슈타인의 사진 아래 적힌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위대한 정신은 항상 범인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다.’ 아직 미개척 연구 분야의 선구자로서 헤쳐나갈 그의 뚝심을 짐작케 하는 말이다. 

하지만 김교수가 가장 존경하는 과학자는 그가 1996년 연구년을 다녀왔던 영국 캠브리지 대학이 배출한 뉴턴이라고 한다.
“물론 그가 과학혁명의 선구자이자 천재적인 학자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과학자 개인의 연구뿐 아니라 영국왕립학회 회장, 조폐국 장관 등 과학자로서 사회에 봉사하고, 큰 영향력을 남긴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로서 좋아하는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회에게 받은 특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사회에 되돌려야할 책임을 가지고 있지요.” 

이런 맥락에서 그가 요즘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올 7월 포항공대에서 개최될 국제물리올림피아드이다. 과학 꿈나무들의 축제이자 두뇌올림픽인 이 행사는 과학의 대중화에도 한 몫 할 전망인데, 이 행사의 한국 유치엔 국내외 물리학계에서도 마당발로 소문난 그의 활약이 컸다고 한다.

앞으로 김교수는 이번에 발표된 연구결과를 시각장애자나 로봇의 인공시각을 개발하는데 도움되는 방향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그는 뇌연구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미래지향적인 탁월한 선택’이라며 ‘생물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되 학제간 연구와 정량적 접근이 중요한 만큼 편식하지 말고 수학 등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하라’고 당부한다.

“작은 우주, 혹은 뉴런들이 이루는 ‘망의 망(Network of net-work)’이라 불리는 뇌를 연구하는데 있어, 생명과학자들뿐 아니라 물리학, 컴퓨터 공학자 등 학제간 연구가 필수적입니다. fMRI(자기공명영상)나 EEG(뇌파측정) 등을 통해 뇌를 거시적으로 직접 파악하는 연구와 함께 표면적인 현상 뒤에 숨겨진 원리를 탐구하는 작업도 필요하죠. 이런 노력이 합해지면서 인간은 뇌의 신비에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최소한 이번 세기를 관통하는 화두는 ‘뇌’가 될 것입니다.” 

글│정호진
hojin@powerbrain.co.kr  사진│안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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