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는 답을 알고 있다

양파는 답을 알고 있다

두뇌쑥쑥 육아일기

뇌2004년1월호
2010년 12월 06일 (월)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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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 성운이가 뇌호흡* 숙제를 받아왔다. 물 담긴 유리컵에 양파 두개를 각각 얹어 기르는 숙제다. 그냥 기르는 게 아니라 규칙이 있었다. 규칙은 단순하다. 한쪽 컵에는 ‘사랑’이라는 글씨를 써 붙이고 사랑해, 잘 커라, 예쁘다 등등의 좋은 말만 해줄 것, 반대로 다른 양파에는 ‘미움’이라는 글씨를 써 붙이고 미워, 죽어라, 이 나쁜 놈아 등등 성운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나쁜 말만 해줄 것.

왜 이런 숙제를 해야 하는지 물론 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성운이가 뇌호흡을 시작한 네 살 때 사랑양파와 미움양파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사랑양파는 잎이 나고 미움양파는 썩어 죽고 만다는 양파이야기는 몹시 신기했다. ‘사랑’이라는 어쩌면 거창한 주제를 집에서 굴러다니는 한갓 양파가 너무나 쉽게 증명해 보인다는 것에 대한 당혹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꼭 필요한 것도 간신히 하고 사는 바쁜 일상을 핑계로 묻혀져 갔었다.

직접 길러보니 그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신기한 경험이었다. 성운아빠의 표현을 빌리자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과장된 표현 같지만 정말 그랬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게 눈앞에 실체를 확실하게 드러낼 때의 경이로움이었다.


양파 사건 이후 동생을 더욱 아끼게 된 성운이

사랑양파와 미움양파의 탄생

내 직업은 방송작가다. 그리고 난 흔히 하는 말로 성질이 더럽다. 두 가지를 합하면 난 성질이 더러운 방송작가다. 방송작가는 무척 시간에 쫓기는 직업이고 성질이 더러운 사람이 바빠지면 감정을 통제할 능력을 잃는다.

성질이 더러운 방송작가 엄마와 일곱 살, 세살의 형제가 같이 사는 우리집은 항상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긴장감이 감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건 내가 뇌호흡을 하는 성질이 더러운 방송작가라는 것이다. 뇌호흡 트레이닝을 잘 받으면 아이들이 전혀 거슬리지 않고 예쁘기만 하다. 우리부부는 그런 현상을  ‘수련발’이라고 표현한다.

양파를 기르면서 마치 수련발 잘 받는 수련을 받은 느낌이었다. 성운이와 난 똑같은 유리컵에 같은 분량의 물을 담고 양파 두개를 골라냈다. 하나는 탱글탱글 아주 상태가 좋은 양파였고 하나는 쭈글쭈글 시들어서 부실한 양파였다. 성운이가 부실한 양파를 사랑양파로 하겠다고 했다. 좋은 양파를 사랑양파로 하면 잘 자라는 게 당연히 여겨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일곱 살 아이치고는 제법 논리적인 발상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사랑양파에게는 사랑의 말을, 미움양파에게는 나쁜 말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순간 미움양파에게 연민이 생겼다. 성운이도 미움양파가 불쌍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린 규칙을 지키기로 했다.

아직 말을 잘 못하는 성영이와 회사원인 성운아빠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 실험이었다. 성운이가 주로 양파에게 말을 건넸다. 사랑양파에게는 ‘사랑해’, ‘잘 자라라’, ‘아이 예뻐’ 같은 좋은 말을 해주고 미움양파에게는 ‘에이, 이 나쁜 양파야’, ‘미워’, ‘확, 그냥’ 같은 미운 말을 해 주었다. 말을 못하는 30개월 성영이는 가끔 형 옆에 서서 흘러내린 침이 번들거리는 턱을 치켜들고 뭐하나 구경하곤 했다

아직 욕 같은 걸 전혀 배우지 못한 성운이는 나쁜 말을 다양하게 구사하지 못했다. 좋은 말 역시 늘 비슷한 내용이었다. 그 단순한 몇 마디를 되풀이 하는 것만으로도 양파는 벌써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부실했던 사랑양파가 먼저 아래로 하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사랑양파의 하얀 뿌리가 무성해질 동안 그토록 통통했던 미움양파는 뿌리가 그대로였다.

사랑양파에서 파란 잎이 나올 무렵 양파들은 결정타를 맞기 시작했다. 성질이 뭣 같은 성운엄마가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파에 잎이 나거나 전혀 안 나거나

내가 비몽사몽 잠결일 때는 아무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 우리집의 불문율이다. 잠결인 성운엄마는 이성이 제로인 상태이므로 잘못 건드렸다가는 아주 재수없을 경우 주먹이나 발길에 맞았다는 피해자도 있었다.

양파실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된 계기는 바로 잠결에 발생했다. 그 전날 잠을 제대로 못자는 바람에 아이들 둘이 깬 줄 알면서도 그냥 잤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성영이가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코 안이 간지러웠다. 뭔가 하고 만져봤더니 부스러기 같은 게 코 안에서 잔뜩 나온다. 벌떡 일어나 코 안에 든 걸 꺼내보니 어제 먹다 남은 마늘바게뜨를 잘게 부수어서 내 코 안에 잔뜩 쑤셔 넣은 것이 아닌가.

무슨 일 있냐는 듯 까만 눈동자로 말똥말똥 보는 성영이가 우습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순간 팍 짜증이 몰려왔다. 거실로 나와보니 도대체 발을 어디 디뎌야 될지 모를 정도로 완전 폭탄맞은 집 꼴이었다. 또 이렇게 정신없는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싶어 성질이 확 솟구치는 순간 왜 그랬는지 양파 생각이 났다. 양파가 있는 방으로 씩씩대며 갔다.

그 와중에도 욕을 할 대상은 미움양파라는 것만은 잊지 않은 난 양파의 ‘미움’이라는 글자를 노려보며 있는대로 성질을 부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의 화내는 에너지가 양파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너무나 확실해서 가슴이 섬뜩한 느낌이었다. 아이들이 달려와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엄마, 양파 숙제 하는 거야?” 성운이가 실감나는 나의 거친 말투에 놀라 물어본다. 그동안 저 천진한 얼굴에 이렇게 무서운 에너지파를 날렸다니!

그 이후로 하루에 두 번 정도 양파에게 사랑의 말과 욕을 번갈아 했다. 그때마다  정말 양파에 집중했고 내 말에 실려 있는 에너지가 양파에게 전달된다는 걸 생생하게 느꼈다. 어느 사이 두 양파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부실했던 사랑양파는 아래로는 뽀얀 뿌리가 촘촘히 났고 위로는 파란 잎이 길게 자라고 있었다. 그토록 탐스럽던 미움양파는 뿌리도 잎도 나지 않은 채 점점 시들고 있었다. 사랑받고 미움받는다는 차이 말고는 모든 조건이 똑같았는데도.

제일 신기해한 사람은 성운아빠였다. 회사에서 돌아오자마자 양파를 들여다보며 “진짜 신기하다. 우째 이래 되노?”(성운아빠는 부산사투리가 심하다. 본인은 완벽한 표준말을 구사한다고 항상 우기지만) 마치 새로운 세상을 본 것 같다며 어린애 같은 얼굴을 했다. 하지만 양파가 보여주는 신기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난히 팔꿈치 스킨쉽을 좋아하는 성영이


양파를 잡아먹다

사랑양파의 파란잎이 내 손으로 한 뼘 넘게 자랐을 무렵, 우리 식구는 일주일 동안 집을 비워야 했다. 미국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두 양파 모두 물을 갈아주고 떠났다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온 우리는 양파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사랑양파는 별 차이를 보이지 않은 반면에 미움양파는 잎이 난 것이다. 욕을 먹는 몇 주일 동안 잎이 날 낌새라고는 없었는데 욕을 먹지 않은 일주일동안에 잎을 틔운 것이다. 미움의 에너지가 얼마나 강한 독으로 생명을 죽이는지! 그저 방치해두기만 해도 나오는 잎이 아예 푸른 끄트머리조차 못 내밀게 했던 부정적인 힘을 실감했다.

다시 욕을 먹기 시작한 미움양파의 잎은 그러나 더 이상 자라지 못했고 반면에 사랑양파의 파란잎은 주체할 수 없이 자랐다. 양파실험의 의미를 충분히 깨달았다고 느낄 무렵 난 과감히 양파를 잡아먹기로 했다. 잡아먹는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정말 그런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저 양파인데 매일매일 마주보고 대화를 하다보니 마치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인 것처럼 생명이 느껴졌다. 하지만 과감히 잡았다. 두 양파를 껍질을 벗겨 씻어 놓았다가 퇴근한 성운아빠에게 보여줬더니 날 식인종 보듯 한다. “니 우째 그 양파를 먹을 수가 있노? 잔인한 것! 난 절대 안 묵어!”

성운이도 사랑양파만 먹고 미움양파는 안 먹겠다고 난리다. 나 역시 미움양파를 먹을 생각을 하니 말 그대로 찝찝했다. 미운 에너지가 속속들이 박혀 있을 것 같아서였다.

어려서부터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밖에 없고 미운털이 박혀 자란 아이들은 역시 그런 존재로 대접받게 되는구나,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날 사랑하지 않는 건 당연하구나…등등의 생각을 했다.

결국 두 마리 양파를 모두 잡아먹었다. 미움양파는 식구들 몰래 떡볶이에 퍽퍽 썰어 넣어 먹였다. 그런 줄 모르는 성운아빠가 미움양파를 제일 많이 먹었다.

하지만, 내가 미처 몰랐던 한 가지가 있었다. 성운이 뇌호흡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시들대로 시든 미움양파라도 다시 사랑을 주기 시작하면 점점 살아난다는 것이었다. 진작 알았다면 사랑양파로 만들어 먹였을 것을.

양파보다 민감한 아이들의 뇌

양파를 키워 본 성운이는 동생에게 나쁜 말 하는데 무척 신중해졌다 ‘성영이 싫어!’했다가도 양파 이야기를 하면 금방 쑥 들어간다. 아이들의 뇌는 양파보다 훨씬 민감할 걸 생각하면 부정적 에너지가 실린 말과 행동은 거의 아동학대처럼 느껴져 나 역시 많이 변했다.

다른 엄마들에게 양파 이야기를 하면 엄마들은 우선 놀라고 다음엔 굉장히 찔려한다.
역시 쉽고 단순한 진리가 가슴을 파고드는 힘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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