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불꽃 튀기는 키스

뇌에 불꽃 튀기는 키스

생활 뇌의학

뇌2003년8월호
2012년 10월 04일 (목)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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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 me!

오랜만에 첫 키스의 추억을 떠 올려 보자. 언제 누구와 했는지 가물가물하다? 그렇다면 부끄러움에 못 이겨 붉어진 얼굴, 혼란에 가까운 상반된 감정을 떠 올려 보라. 거기에 첫 키스의 기억이 숨어 있다. 대 부분 첫 키스는 키스 자체를 즐긴다기보다는 충격과 혼돈스런 감정이 앞서게 마련이다. 신체 가운데 성적으로 가장 예민한 부분 중 하나인 입술을 접촉할 때의 짜릿한 전율, 여러 종류의 키스를 묘사할 테니 마음껏 상상해 보시길.

새들이 부리를 맞부딪치는 것처럼 살짝 입술만 맞대는 버드키스. 입술을 살짝 다문 채 교차시켜 맞대는 우아한 느낌의 크로스 키스. 입술을 열고 상대의 위 혹은 아랫입술을 살며시 문 다음 입술을 좌우로 비비는 햄버거 키스. 입술을 다물고 밀착시킨 후 미끄러지듯 자극을 주는 슬라이딩 키스. 숨이 차츰 가빠져 숨을 쉬기 위해 입술이 열리게 되고, 살며시 상대의 입술과 혀를 받아들이는 인사이드 키스. 입술을 벌린 채 혀만 장난치듯 자유롭게 움직이는 프렌치 키스. 주로 여자가 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입속으로 들어온 남자의 혀를 살짝 깨물어 주는 이팅 키스.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키스법으로 상대의 입술을 덮어버리듯 하는 와이드 스페이스 키스. 취향이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는 키스의 종류를 다 헤아리기는 어려우니 여기까지만. 


키스의 전주곡

사람의 입술은 동물과 달리 구강 점막이 뒤집힌 모양을 하고 있으며, 마치 여성의 성기처럼 도톰하게 솟아올라 성적인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세상 모든 입술에 키스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지는 않는다. 특별한 끌림이 있어야 하니 바로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사람과 눈부터 맞아야 할 일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불꽃이 튀었다고 말하는데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말은 사실이다. 통계적으로 사람은 90초에서 4분 사이에 상대에게 끌리게 된다. 영국 런던대학 인식신경과학연구소의 커누트 캠프 박사는 매력적인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뇌 혈류량의 변화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측정한 결과, 보상 중추의 활동이 수초 내에 불이 켜지듯 급격히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눈이 맞아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는 시기에 대뇌 변연계에서는 화학적 작용이 시작되면서 사랑의 전령사 역할을 하는 도파민이 만들어진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때.

이어 그 다음 단계로 발전하면 변연계에서 페닐에틸아민이 분비되면서 감정은 급격히 상승곡선을 그린다. 페닐에틸아민은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천연각성제 구실을 한다. 이때는 이성으로 제어하기 힘든 열정이 분출된다. 이때 쯤 되면 사랑하는 사람을 껴안고 키스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면서 시상하부의 뇌하수체에서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상대방의 자극에 예민해지면서 육체적인 접촉을 점점 더 원하게 된다. 바로 가슴 뛰는 사랑의 시기.


설왕설래舌往舌來, 다이어트에도 효과 

쿵닥, 쿵닥, 쿵닥! 심장이 뛴다. 매우 많은 감각 신경이 분포된 입술과 혀, 입 속의 점막이 자극되면 가벼운 접촉에도 매우 예민하게 반응해서 심장 박동수를 급격히 증가시킨다. 얼마 전 세계심장연맹은 사랑을 주고받는 키스 등의 행위가 심장 건강에 좋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키스가 어디 심장 건강에만 도움이 될까?

남녀가 설왕설래하는 동안 29개의 근육(그중 17개의 근육은 단지 혀의 움직임을 위해 동원됨)이 움직이고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더불어 최대 9mg의 타액과 0.7mg의 단백질, 0.18mg의 유기질, 0.7mg의 지방질, 0.45mg의 염분이 교환된다. 이자에서는 인슐린이, 부신에서는 아드레날린이 각각 분비된다. 또 핏속에선 백혈구 활동이 왕성해져 면역력이 올라간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배출되는 호르몬(코티졸)의 생성은 줄어든다.

게다가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 풍부한 감정이 제대로 실린 키스는 한 번에 약 3.8kcal의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또 키스의 가시적 효과로는 침 분비의 증가를 들 수 있다. 교감신경이 침샘근육을 자극해 고여 있는 침을 짜내고, 부교감신경이 신경전달물질의 이동을 활발하게 하기 때문이다. 또 침은 백혈구의 활동을 돕는 물질이기도 하다. 키스의 다양한 효과를 본능적으로 터득해서일까? 붉은 립스틱의 역사는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고, 이도 부족해 요즘에는 입술을 더 도톰하고 섹시하게 보이려는 성형수술까지 유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랑의 수명은 30개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주인공은 돌아선 연인에게 그렇게 소리친다. 주인공이 애처롭긴 하지만 두뇌의 화학 작용으로 볼 때 사랑은 변하는 것이 맞다. 두 사람 모두 깊은 열정에 빠져 온몸과 마음으로 하나 되기를 원하는, 마치 마른 장작에 불붙는 듯한 그런 사랑도 처음의 매력과 열정의 강도가 언제까지나 지속되지는 못한다. 화학작용의 변화에 따른 사랑의 수명은 길게 잡아 30개월이다.

남녀가 만난지 2년이 지나면 대뇌에 항체가 생겨 사랑의 화학물질이 더 이상 생성되지 않고 오히려 사라지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로맨틱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성적인 매력에 취하게 되는 열정이 점차 사그라질 즈음, 사랑을 지속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는 친밀감과 책임감이다. 서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친밀감과 사랑을 지키겠다는 책임감은 열정과 더불어 사랑의 삼각형을 이룬다. 그러니 이 세상 모든 사랑이 고작 30개월짜리라고 해서 절망할 일은 아니다. 열정, 친밀감, 책임감이라는 세 꼭지점으로 사랑의 정삼각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일이다. 변하는 것이 순리라면 발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할 테니.


대안 성행위로써의 키스

만약 당신이 직접적 성행위가 곤란한 임신부나 장애인, 또는 혼전 순결을 지키고자 하는 미혼자라면 키스를 통해 섹스 이상의 만족을 얻을 수도 있다. 보통 성행위에 대해 ‘사랑=성행위=삽입’이라는 관념이 있는데 최근 미국에서는 대안 성행위로써 키스가 권장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 CBS의 방송은 기존 성관념을 벗어난 대안 성행위가 청소년과 장애인뿐 아니라 보통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보도했다.

기존의 성행위는 삽입 이전의 각 단계는 다음 단계를 위해 존재하며 성기를 중시하는 ‘계단식 성행위‘이다. 이에 반해 대안 성행위는 각 단계가 다 목표다. 애무, 키스 등이 모두 오르가슴에 이를 수 있고 각각이 하나의 목표라는 것. 대안 성행위도 계단식 성행위와 마찬가지로 흥분기, 고조기, 절정기, 해소기 등의 단계를 거친다. 청소년 음란사이트 접속률이 세계 1위인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보여주는 성행위가 자극적인 삽입에 집중돼 있는 점에 주목한다면, 대안 성행위의 장점은 청소년에게도 도움이 된다. 남성이 대안 성행위로 키스를 활용한다면 성기 크기나 성행위 시간에 덜 집착할 수 있다. 특히 폐경기 여성을 비롯, 성인 여성의 40% 정도가 기존 성행위 방식으로 만족하지 못하는데 이들에게도 깊고 풍요로운 자극이 가해지는 키스만으로 성적 만족감을 줄 수 있다.

키스는 생명의 숨결이다. 키스가 불러일으키는 뇌의 충만한 화학 반응에 감사하며 천천히 부드럽고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일이다. 키스의 전주곡도 잊지 않는 것이 좋다. 몇 초간의 눈빛 교환. 혈액순환이 활발해지면서 뇌 혈류량이 증가하여 자극에 대한 반응이 배가될 것이니.

글│곽문주 joojoo@powerbr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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