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좋아해

뇌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좋아해

+ 뇌야 놀자

브레인 20호
2010년 12월 17일 (금)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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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3D 영화 <아바타>가 화제다. 이 영화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영상 경험을 제공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아바타>에 열광하는 것은 우리 뇌가 새로운 경험에 워낙 목말라 있던 탓이기도 하다. 3D가 얼마나 대단한 볼거리인지 입이 닳도록 설명해봐야 직접 본 사람의 경험에 비할 수는 없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以不如一見, 우리 뇌는 백 번 설명을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에 더 열광한다.

<아바타>뿐 아니라 주말을 도배하다시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다. 시청자들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 사전에 짜여진 것이 아니라 액면 그대로의 것, 실제 상황에 더 깊이 몰입하고 감정이입한다.

우리 뇌가 이렇게 실제 상황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지닌 불확실성 때문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윌리엄 슐츠 교수는 “뇌는 실제로 기분이 좋을 때뿐만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쾌감 호르몬을 분비한다”고 밝혔다. 실험에서 원숭이는 주스라는 보상을 줄 때마다 기저핵에서 도파민을 분비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매번 주스를 주는 것이 아니라 두 번 중 한 번만 줄 때도 역시 도파민을 분비하더라는 것. 이는 원숭이의 뇌가 주스라는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쾌감 신경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우리 뇌는 어떤 상황이든 더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경험하기를 원하며 그것이 설령 불확실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흥미롭게 받아들인다. 정답이 이미 나와 있는 죽은 지식보다는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실제 상황에 더 흥분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대본 없이 진행되는 줄만 알았던 텔레비전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설정 대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시청자들이 그렇게 분노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당연한 얘기지만 머리로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첫사랑의 아련함이든 짝사랑의 아쉬움이든 해본 사람은 설명 안 해도 알겠지만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그 세세한 감정의 결까지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운동을 하면 어느 부위에 어떤 근육이 생긴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해서 근육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초콜릿 복근을 만들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근육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우리 뇌가 실제 상황에 목숨 거는 이유는 생생한 체험이 뇌에 더 잘 각인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1박2일>을 통해 야외 취침을 간접 경험하는 것보다 직접 시골에 가서 하룻밤을 지내보는 것이 훨씬 오래 기억된다. 고생하면서 얻은 실제 경험은 그만큼 두뇌에 강한 자극을 주어 기억의 강도를 높인다. 이렇게 뇌에 확실하게 각인된 정보는 현실에 정확하게 재현되는 힘이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대단히 많은 양의 뉴런과 시냅스를 가지고 나온다. 살아가면서 신경회로를 재형성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대략적인 설계도를 가지고 태어나는 셈이다. 뇌는 이 뉴런과 시냅스를 통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감각 자극과 운동 자극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물론 이 방대한 영역을 모두 경험하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신경회로의 많은 부분이 사용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거나 퇴화한다.

버클리 대학 신경심리학자 다이아몬드와 홉슨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인간의 두뇌는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환경에서 자랄 때 피질의 크기가 증가하며 그런 환경에 오래 노출될수록 피질이 더 많이 성장한다고 한다. 따라서 뇌의 가소성 관점에서 볼 때 조기 경험의 영향력은 아주 강력하다. 어린 시절에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성인이 되어서 주로 사용하는 신경회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경험을 하면서 자란 뇌는 더 많은 긍정적인 상황을 불러오고, 부정적인 환경에 많이 노출된 뇌는 부정적인 상황을 끌어올 확률이 높다. 뇌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나는 셈이다.


상상은 경험의 플러스 알파
경험이 최고의 선생님이라는 사실은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되었다. 미국 워싱턴 대학 심리학과 제시카 솜머빌 박사팀은 10개월 된 아기들에게 도구를 사용해 장난감을 옮기게 했더니 비슷한 행동을 눈으로 본 아기들보다 훨씬 빠르게 방법을 이해하고 수행했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우선 10개월 된 아기 51명을 훈련 그룹, 관찰 그룹, 비교 그룹으로 나누었다. 훈련 그룹의 아기들에게는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놓인 장난감을 막대기로 끌어오는 훈련을 시켰고, 관찰 그룹은 훈련 그룹이 하는 행동을 직접 배우는 대신 눈으로만 지켜보게 했다. 비교 그룹 아기들은 훈련이나 관찰 모두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장난감을 끌어오는 실력을 비교했더니 훈련 그룹 아기들이 관찰 그룹이나 비교 그룹 아기들에 비해 과제 수행 능력이 월등히 뛰어났다.

솜머빌 박사는 “이 실험은 아기들도 훈련과 관찰을 통해 도구 사용법을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히면서 “특히 눈으로 보는 것보다 손으로 직접 해보는 경험이 아이들의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우리의 마음은 1백조 개가 넘는 시냅스의 활동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좋은 정보를 많이 받아들이고 이를 여러 각도에서 다시 조립하면 새로운 시냅스가 만들어진다. 재미있는 것은 인간이 실제 경험뿐 아니라 상상을 통해서도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클리블렌드 병원 신경과학자 광예 박사는 실험자들을 대상으로 상상을 통해 근육을 키우는 훈련을 실시했다. 실험은 팔이나 손가락을 특정한 부위에 올려놓은 후 마음속으로 근육을 강하게 수축시키는 상상 훈련을 매회 10~15분 정도, 총 50회 반복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4개월간의 훈련 결과 젊은 사람이든 노인이든 가릴 것 없이 평균 15% 정도 근육이 강화되었다.

이처럼 시냅스를 연결하는 정보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직접적인 경험뿐 아니라 ‘상상’이라는 가공의 경험도 포함된다. 우리 뇌는 직접적인 경험과 상상에 의한 경험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짜 레몬이든 상상 속의 레몬이든 제대로만 상상한다면 뇌의 같은 영역이 활성화된다. 이러한 뇌의 맹점을 잘만 활용하면 무한한 상상 체험을 통해 비약적인 두뇌 개발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도 경험하라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이승헌 총장은 “인간은 지식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성장한다”고 했다.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체험을 통해 터득하는 것만큼 뇌에 강렬한 자극을 줄 수는 없다. 사실 우리는 매 순간 실제를 경험하고 있다. 경험 중에서도 어떤 경험이 뇌에 더 큰 자극을 주고 잘 기억될까?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의 저자 박웅현은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마음을 열고 온몸의 세포를 활짝 열어 경험을 최대한 받아들일 때 그 경험이 뇌에 강렬한 자극으로 남아 새로운 신경회로의 연결을 돕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일이 결국 우리 자신이 된다”고 했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면서 얻는 것의 95%는 습관의 결과라고 한다. 이제 넘쳐나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그저 바라보면서 대리만족 할 게 아니라 우리 삶 자체를 리얼 버라이어티로 개편해 보는 것이 어떨까. 뇌의 관점에서 보면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것이 아니라 고생 속에 낙이 있는 것이므로.

글·전채연 ccyy74@brainmedia.co.kr  
일러스트레이션·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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