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동지들에게

아픔의 동지들에게

명상적 순간

브레인 118호
2026년 08월 14일 (금) 00:40
조회수42
인쇄 링크복사 작게 크게
복사되었습니다.



나는 ADHD다

ADHD 콘텐츠가 넘쳐난다. 무척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는 ADHD를 ‘병’으로만 취급하던 예전의 시선을 넘어, 고지능 ADHD를 예찬하는 콘텐츠가 많아졌다는 것. 범람하는 ADHD 예찬 콘텐츠들을 보다가 이런 생각을 한다. ‘이것들, ADHD 안 겪어 봤구나.’

그렇다. 나는 ADHD다. 제법 고지능의 ADHD다. 예찬은 쉽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이해는 쉽지 않다. 그러니 그들에 대한 사랑도 쉽지 않다. 흥미로운 ADHD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르긴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ADHD와 함께 사는 것에는 큰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이 얘긴 ADHD 스스로도 자기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을 거란 뜻이다. 

초등학생의 약 10퍼센트, 성인의 약 5퍼센트가 ADHD다. 자기 자신이든 직장동료든 자녀든 자녀의 친구든 누구나 ADHD 한두 명과는 더불어 살아야 하는 때이다. 그러니 ADHD를 흥미로워하는 것을 넘어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해주길. 


중2병 아닙니다

중학교 2학년. 나는 교실에 앉아 있다. 내 인생의 그닥 의미 없는 45분이 흘러가고 있다. 열심히 지식을 전달해 주시는 선생님, 열심히 듣는 학생들. 그 모두의 ‘열심’을 헛되게 만들고 싶지 않기에 나 또한 ‘열심히’의 세계에 동참하고 있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N 번째 자세를 바꾸고, 열과 성을 다해 N 번째 시계를 보고 있다. 문득 내 앞의 창문이 눈에 들어온다. 조별 대형으로 앉아 있었기에 나와 창문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전방으로 고작 2미터. 나를 향해 시원스럽게 열린 고혹적인 창문의 자태. 나는 너를 보고, 너는 나를 본다. 창문은 내 세상의 전부가 되고, 내 뇌에는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나가고 싶다!’ 그다음 순간, 내 몸은 이미 창문을 넘어가고 있다. 
 

선행동 후생각

놀란다. 갑작스레 창문 밖에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내가 놀라는 환상의 세계, 여기는 ADHD.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선행동 후생각이 전개된다. ‘교실로 돌아가야 할 것인가, 그냥 도망갈 것인가?’ 전자를 선택하면 당장 혼날 것이다. 후자를 선택하면 나중에 혼날 것이다. 

다년간의 ADHD 삶의 데이터를 가지고 온다. 생존의 위협 앞에서 아주 오랜만에 고민이라는 것을 하는 것이다(이 지점이 바로 고지능 ADHD라고 할 수 있다). 이왕 나온 김에 오락실로 달려가라고 내 비루한 전두엽은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되면 담임선생님, 교장선생님, 학부모까지 연계될 것이다. 편도에서 두려움이 일어난다. 교실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한다면? 담임선생님께 인도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다. 그래! 용기를 내어 교실로 들어간다. 다시 창문을 넘어서.


나는 왜 이럴까

‘넌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선생님이 묻는다. 할 말이 없다. 반항이 아니다. 정말 모르기 때문이다. 국어 선생님은 눈이 유난히 동그랗다. 살짝 처진 눈꼬리와 또 살짝 처진 입꼬리가 조화를 이루며 울기 직전의 토끼 같은 얼굴을 하고 계신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도 울고 싶다. ‘그러게요, 저는 왜 이런 걸까요?’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선생님이 무슨 죄인가. 얼마나 힘드실까. 얼마나 회의감이 드실까’(전혀 티가 안 나서 그렇지, 내 인성은 꽤나 괜찮았다)

난 요즘도 힘들다.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가는 것은 여전히 고역이다. 정해진 일정을 지켜나가야 하는 삶이 제법 끔찍스럽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나의 ‘고밀도 성취’엔 열광하지만, 나라는 사람의 기질은 이상하게 여긴다. 지난달에는 밀린 가스비 때문에 온수가 끊겼고, 몇 년째 사용하지 않는 서비스의 구독료가 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해지할 방법을 찾을 정신이 없다. 나는 40년 넘게 이런 나를 데리고 살고 있다. ADHD인들은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어딘가 좀 잘못된 인간 같다.’ ‘내가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하루에도 몇 번씩 참으로 막막해진다.


그래서 아팠다

ADHD라는 병명이 대중화하기 이전, 나는 그냥 ‘이상한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 넘치는 에너지의 절반을 이 사회에서 모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경계하고 부정하는 데 썼다. (전혀 티가 나지 않았겠지만 그것은 뼈를 깎는 노력이었다.) 그래서 아팠다. 내가 나를 싫어해서 아팠다. 살고 싶어서 화가 났다. 그래서 세상을 미워했다. 외로워져서 아팠다.

튀어 오르고 부딪히고 찢기고 찌그러지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생명은 이해받고 인정받고 허락받을 필요가 없구나. 그냥 존재하는 거구나. 그래, 나는 나로 그냥 존재하면 되는 거였다!’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나를, 남들이 이해하고 인정해주길 바랐다. 그런데 나는 누군가의 인정과 상관없이 이미 온전한 존재였다. 


나는 사랑이 많구나

아픔 덕분에 알았다. ‘나는 사랑이 많구나. 다름을 넘어 나와 세상을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구나.’ 그 마음이 아니라면 세상을 미워하는 일이 그토록 아팠을 리가 없으니까. 사랑이 아니라면 이렇게나 미련스럽게 다시 튀어 오르고 찢기기를 반복하지 않을 테니까. 

지금의 나는 ‘꿈이 많은 사람’이다. 많이 아파본 나는 누구나 아픔이 있다는 걸 안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해도 당신은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란 걸 안다. 사람들의 눈에 이상해 보여도 당신 또한 당신의 삶을 통해 아름답게 피어날 것을 안다.

어쩌면 아직은 미움과 위축과 희망 사이에서 눈물짓고 있을 당신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 나의 엉망진창 ADHD 이야기로 시작했을 뿐, 나는 그냥 이생을 통과하고 있는 당신의 고단함을 내가 알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상한 당신! 이해불능 당신! 괴랄하고 괴팍한 당신! 그럼에도 다시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 그 마음이 사랑이다. 사랑이 많은 당신의 행복을 바란다. 당신의 행복이 나의 꿈이다. 

나의 필요를 입증하지 않아도, 자기의 모양을 깎아내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존재가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을 당신도 함께 꿈꿔주길. 그 길에서 주변의 아픔에 한 번 더 손 내밀어 주길. 아팠던 당신은 누군가의 아픔을 잘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픔의 동지여, 그렇게 울며불며 어떻게든 살자. 

글_권나라
건축학을 전공하고, 극단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브레인트레이너로서 유튜브에서 명상 채널을 운영하며, 명상 상품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 브레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 뉴스

설명글
인기기사는 최근 7일간 조회수, 댓글수, 호응이 높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