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공감'_게티이미지
최첨단 과학의 산물인 AI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지구 공동체는 여전히 곳곳에서 가난과 전쟁에 시달리고, 환경오염과 기후 온난화는 모든 사람이 체감할 정도의 위협이 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경쟁, 혐오, 이기심, 소외와 불안이 사람들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병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풍요와 발전의 혹독한 대가를 우리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나 자신만의 기준에서 벗어나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 파국으로 치닫는 인류의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공감’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공감능력 향상은 범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핵심 요인
뇌과학의 마음이론에서는 공감을 타인에 대한 개인의 신체와 내부감각, 인지, 정서를 조합하여 만든 타인에 대한 가설이라고 정의한다.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타인의 내적 세계를 느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할수있다. 대인관계 면에서 공감은 비판 없이 상대방의 시각과 입장에서 그 사람의 감정과 경험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관점에 따라서 정의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도덕적 기준이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타인을 비판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이다. 또한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더라도 자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휩쓸려 들어가면 관점과 경계를 상실하고 원시적이고 병적인 상태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공감능력은 친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기본이 되며, 세일즈나 경영관리, 정치 행동, 연애나 육아에 이르기까지 삶의 영역에서 두루 활용된다. 공감능력을 잘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은 복잡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생존하지 못하고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공감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학교에서 따돌림당하거나 가정과 직장에서 폭력과 갈등에 시달리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많아진다.
이처럼 개인으로서든 조직의 구성원으로서든 공감은 우리 존재의 정수이자 관계 회복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를 확대하자면, 공감능력을 향상함으로써 개인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경감하고, 타인과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조직·사회·국가의 공감대 형성으로 범지구적 문제 해결에도 구심점이 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공감은 상대와 교감하며 협력할 수 있는 중요한 능력
공감보다 더 단순하고 기본적인 수준의 기능에 ‘공명’이 있다. 공명은 반사적으로 서로 연결하고 소통하는 본능적인 장치로서 협동과 협력을 통해 집단의 생존율을 높이는 쪽으로 진화해왔다. 공명은 자동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교류함으로써 집단의 응집력과 안정성을 증진하는 역할을 했는데, 원시시대에는 사냥, 채집, 싸움, 도망과 같은 집단행동에 유용했고, 이후에 몸동작과 표정, 목소리 톤, 자세 등 비언어적 소통과 언어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촉진하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공명은 신체적 동작과 거울뉴런의 활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체와 거울 신경계의 활동은 우리가 타인이 느끼는 것을 우리의 내장과 감정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즉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 비추어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발달적으로 공명은 부모-자녀 관계에서 시작된다.
영·유아기에 엄마는 아이에게 공명의 행동을 보인다. 아이가 기분이 좋을 때는 같이 즐거워하고, 아이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같이 가라앉는다. 이처럼 엄마가 아이에게 정서적 공명을 많이 해주면 아이는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안정 애착형 아동은 성인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고, 자신의 감정과 내적 상태를 잘 인식하게 된다.
공명은 공감보다 더 단순한 형태이기 때문에 쉽게 감정적으로 전염되는 특성이 있다. 어렸을 때는 부모의 감정에 쉽게 전염되고, 이후에도 타인의 기쁨을 나누기도 하지만 타인의 두려움, 불안, 공포 등에 쉽게 전염된다. 극단적인 경우 외상이 매스컴을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되어 피해자와 동일한 수준의 외상을 겪기도 한다. 유명인의 자살 이후 일반인의 자살 행동이 증가하는 것도 같은 현상이다.
반대로 타인의 바람직한 행동은 관찰만으로도 모델링의 효과를 나타낸다. 이때 긍정적 감정이 전염되어 개인의 생각을 바꾸고 위험에 처했을 때 용기를 내고 삶을 긍정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고 사회적 응집력을 증가시킬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공감은 공명보다 더 발전되고 정교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동물들에서도 원시적인 수준의 공명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공감은 인간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다. 공감은 단순히 타인과
최첨단 과학의 산물인 AI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지구 공동체는 여전히 곳곳에서 가난과 전쟁에 시달리고, 환경오염과 기후 온난화는 모든 사람이 체감할 정도의 위협이 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경쟁, 혐오, 이기심, 소외와 불안이 사람들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병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풍요와 발전의 혹독한 대가를 우리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나 자신만의 기준에서 벗어나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 파국으로 치닫는 인류의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공감’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감정적으로 공명하는 것을 넘어 타인의 기분을 파악할 뿐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에서 세상을 봄으로써 타인과 교감하고 협력할 수 있는 중요한 능력이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대개 타인의 감정을 잘 인지하고 그에 따른 정보를 잘 이해하며 효율적으로 반응한다.
타인의 고통을 감소시키고 행복을 함께하려는 친사회적 동기로 작용
공감의 뿌리는 공명과 마찬가지로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유아기 초부터 엄마와 아이 간에 발생하는 작지만 꾸준한 정서 교환이 공감 형성에 중요하다. 자신의 감정이 타인의 공감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보답받는다는 것을 앎으로써 자신이 이해받는다고 느끼게 되고 공감 능력이 발달하게 된다. 허용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수록 감정을 더 잘 알아차리고, 타인의 감정에 더 잘 공감하고, 필요할 때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조절할 수 있다.
특히 유아기가 지날 무렵부터 아이들은 타인의 고통에 주목하고, 고통에 대한 공감이 빠르게 형성된다. 아이들은 신체적 고통을 넘어 가난한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 소외당하는 사람들,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동정심을 갖게 된다. 이는 타인이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종류의 도움이나 위안을 필요로 하는지를 이해하고, 자신의 이익이나 손해를 굳이 따지지 않은 채 타인을 위해 행동하려는 친사회적 동기로 발전한다.
타인의 고통을 감소시키고 행복을 함께하려는 동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공감이 개인 차원을 넘어 국가적, 전 인류적 당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공감능력이 부족하거나 결여됐을 때 나타나는 현상
안타깝게도 공감의 기능이 적절히 발휘되지 않는 병리적 증상들이 있다. 성추행범이나 아동학대자를 포함한 반사회성 성격장애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어린 시절을 조사해보면 적절한 양육이 부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가정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을 때 감정이 수용되고 이해된 경험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거부되었기 때문이다. 공포나 불안에 대해서도 둔감하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 범죄자가 된 경우 자신에게 가해질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고, 무엇보다도 피해자가 겪는 고통과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공감의 부재가 심각한 범죄로 나타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자기애성 성격장애인 사람들도 공감의 결여를 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중요성에 대해 과장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탁월함이나 성공, 권력에 대한 공상에 사로잡혀 타인을 이용하고, 타인으로부터 특별 대우와 찬사를 받기를 요구한다. 타인에 대한 착취적인 태도는 과도한 자기중심성과 공감 부족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아동청소년기에 나타나는 자폐증은 성인에서 분열성이나 분열형 성격장애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또 다른 형태의 공감능력 부족이다. 이들은 사회적 자극에 쉽게 압도당하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접촉을 회피하는데, 이로 인해 타인들과의 상호작용의 기술을 익히지 못하고 의사소통할 동기도 거의 없게 된다. 이들은 타인들과의 정서적 교류에 전혀 관심이 없으며, 오히려 물건에 집착하며 정형화되고 반복적인 행동을 고집하는 특성을 보인다.
공감의 역기능
공감의 결여를 보이는 장애뿐 아니라 공감의 부정적 측면도 명확히 인식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선한 행동을 할 동기를 부여하는 등 공감에는 다양한 순기능이 있지만 문제점 또한 포함하고 있다. 공감이 특정 인물이나 집단에 국한될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특정 대상에 공감이 제한될수록 소외되는 대상 또한 존재하게 된다. 즉 공감이 편향되면 지역이기주의나 인종차별주의 등 편견에 의한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심하면 전쟁이나 잔학행위 등 폭력이 유발될 수도 있다.
공감이 감정에 치우치면 비이성적 행동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경우에 부당한 결정, 무관심, 잔인함이 유발된다. 어떻게 하면 공감의 역기능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해답은 공감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공감은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느끼는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본질적으로 감정적이다. 감정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반면, 압도될 경우 통제하지 못하고 방향성을 잃을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공감의 관리에 이성을 개입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공감의 따뜻한 마음은 유지하면서 냉철한 이성으로 균형을 맞출 때 우리는 최적의 공감 효율을 얻을 수 있다.
상담가의 공감에서 내담자의 치유가 시작된다
이제까지 가정, 학교, 직장 등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공감의 역할과 효과를 논의했다고 할 수 있는데, 공감이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있다. 바로 상담 장면이다. 심리치료와 상담 장면에서 공감은 무비판적으로 내담자의 현재 심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알아주고 헤아려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상담가가 자신의 중심을 잃고 내담자에게 완전히 동화되어 감정에 휘말려서 객관성을 잃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상담가는 내담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의 입장에서 무엇을 느꼈는지를 있는 그대로 감지하고 이해하는 한편, 자신의 정체성과 중심은 견고히 유지해야 한다. 한마디로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내담자는 자신이 더이상 고립되고 소외된 존재가 아니며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상담가의 공감을 통해 내담자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이해될 수 없는 병적이거나 수치스러운 존재가 아님을 인식하게 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이 이해되고 수용됨을 체험한다. 이러한 공감의 놀라운 효과에 대해 상담가 칼 로저스는 “공감적인 이해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던 무능감이나 열등감, 무가치감이 드러남에도 치료자가 담담히 그 모습을 받아주면 내담자는 크게 안심하고 위로받으면서 치유가 가속화된다. 더는 자신의 문제를 억제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수용함으로써 조절이 더 수월해진다. 피하던 경험들이 자신의 일부분으로 통합되면서 자아가 확대되고 자신의 정체감을 정확히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내면의 놀라운 성장이 공감에서 시작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상담에서의 공감의 과정을 일상생활 속에서도 적용하여 공감의 순기능을 확대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우리는 명백히 공감의 유전자와 공감의 동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하기 위한 다양한 생리적심리적 장치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관계 지향적이며 사회적인 태도에 반응하기 위한 장치들 또한 장착하고 있다. 학문이 발달함에 따라 긍정적 관계 형성을 위한 장치들이 유전자 수준에서부터 호르몬, 신경계, 신체 수준에 이름이 밝혀졌으며, 생후 초기에 형성되는 양육자와의 애착관계부터 다양한 심리적 기능들 또한 보고되고 있다. 특히 공감은 거울세포 시스템이라는 뇌기능부터 공명, 감정이입, 정서관리 등의 심리적 특성들과의 연관성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공동의 선을 위해 노력하는 동기를 가지고 있다. 자신을 앞세우는 이기심이나 타인과의 경쟁심에 잠시 유보되었을 수는 있으나, 우리는 명백히 공감의 유전자와 공감의 동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개인의 심리적 문제로부터 환경문제를 포함한 전 인류적인 시급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해결의 열쇠를 공감능력의 회복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글_윤선아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참고문헌
●《DSM-5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APA, 학지사.
●《감성지능》, 대니얼 골먼, 비전 코리아.
●《공감 능력》, 헬렌 리스, 리즈 네포렌트, 코리아닷컴. ●《공감의 배신》, 폴 블름, 시공사.
●《공감하는 능력》, 로먼 크르즈나릭, 더퀘스트.
●《공감하는 유전자》, 요하임 바우어, 매일경제신문사.
●《뇌기반 상담심리학의 이론과 실제》, 루이 코졸리노, 시그마 프레스.
●《비폭력대화》, 마셜 로젠버그, 한국 NVC센터.
●《사회적 뇌》, 매튜 리버먼, 시공사.
●《상담의 과정과 대화 기법》, 신경진, 학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