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아빠 석우(공유 분)와 딸 수안(김수안 분)을 따라 필사의 탈주를 벌이는 생존자들./ 영화'부산행'메인 포스터.
한국식 재난 블록버스터 좀비영화가 탄생했다. 좀비! 살아있으되 살아있지 않은 자들. 인간이지만 인간다운 의식이 없는 존재이다. 이 영화에서 좀비는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좀더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다.
바이오 기업의 바이러스 누출로 인해 좀비가 된 이들이 사람들을 무차별로 공격하는 대혼란의 상황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다. 공포와 위기 속에서 유일한 안전지대가 되어버린 부산으로 달리는 KTX열차는 좀비와 인간이 맞닥뜨려 생사를 오가는 공간이 되었다.
영화 부산행에 등장하는 인간상은 앞으로 지구가 극한의 위기에 처한다면 인류가 보여줄 모습의 축소판처럼 여겨졌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을 외면하고, 어리고 약한 이를 희생시키는 극한의 이기심을 보여준다.
▲ 만삭의 아내를 지키려는 상화(마동석 분)와 딸을 지키려는 석우(공유 분)일행은 좀비들이 들끓는 탑승칸 중간에 갇힌 생존자를 구하려 좀비와 맞선다. / 영화'부산행' 스틸컷
그러나 그 속에서도 지켜야할 소중한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용감한 행동은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딸 수안을 지키려는 아빠 석우(공유 분), 만삭의 아내를 지키려 필사적으로 고군분투하는 남편 상화(마동석 분), 살아남은 승객을 위해 기다리는 기관장(정석용 분), 세상에서 존중받지도 못하고 가진 것이 없지만 아이와 임산부의 탈주를 위해 좀비 앞에 막아선 노숙자 (최귀화 분). 그리고 만삭의 몸으로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도와주려는 성경(정유미 분)과 어린 수안은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다.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소중한 가치를 지키려는 이들은 좀비로 되어 가면서도 의식이 살아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다운 모습을 잃지 않았다.
▲ 자신의 안전을 위해 생존자들을 막아선 안전 칸의 대기업 상무 용석(오른쪽 앞)과 사람들./ 영화'부산행' 스틸컷.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아비귀환 속에서 생존자를 구해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단 한 칸 남은 안전 칸으로 돌아온 석우(공유 분) 일행의 고군분투이다. 그러나 이미 안전 칸에 있던 사람들은 숨죽이고 자신의 안전을 위해 그들을 막았다. 겨우 사지死地에서 건너온 석우 일행 중 두 명이 더 희생되고 나서 간신히 안전 칸으로 밀고 들어왔다.
분노하는 석우 일행에게 안전 칸에 있던 대기업 상무 용석(김의성 분)은 그들이 감염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매몰차게 휴게석으로 몰아낸다. 안전 칸의 사람들은 석우 일행의 시선을 외면하고 사지에서 겨우 탈출한 그들을 추방하며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걸어 잠갔다. 그때 “안돼요! 아직 제 친구들이 다 못 탔어요.”라고 절규하며 안전 칸에 있던 야구부 응원단장 여고생 진희(안소희 분)는 쫓겨나는 사람들을 따라 가버린다. 이기심에 인성이 메마른 사람들이 감염될 위험성을 안은 석우 일행보다 더 무섭고 좀비와 다를 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자신의 안전만을 위해 사지에서 탈출한 석우(공유 분)일행을 외면하는 사람들의 이기심 어린 모습/ 영화 부산행 스틸컷.
영화 초반 좀비의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주인공 아빠 석우는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딸 수안에게 말한다. “이런 (위기)상황에서는 너부터 챙겨야 하는 거다.”라고 가르친다. 폭발적인 연기력을 보여준 딸 수안은 “그러니까 엄마가 떠난 거다. 아빠는 아빠밖에 모른다.”고 절규하듯 내뱉는다. 절친한 지인의 정보를 입수해 딸과 자신만 좀더 안전한 곳에 피하려 했던 석우는 자신의 딸을 지켜주고 낯선 사람들을 위해 나서는 상화(마동석 분) 일행과 함께 사람들을 돕고 구했다. 자신을 던져 희생하는 마지막 순간 처절한 부성애를 보였다.
▲ 영화 '부산행'에서 아빠 석우 역을 맡은 공유는 경쟁 속에서 이기적인 현대인의 모습에서 처절한 부성애 넘치는 아빠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영화 '부산행'스틸컷
그 반면, 50대 대기업 상무 용석(김의성 분)은 오직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사람들을 선동하고, 여고생은 물론 자신을 구하러 달려온 기관장을 좀비에게 제물로 던졌다.
영화 속 가장 지독한 악역인 그는 인간으로서 마지막 의식이 남았을 때 “무서워, 제발 부산에 가게 해줘. 엄마가 기다리고 있어. 꼭 가야 한다.”며 어린아이처럼 울부짖는다. 냉철하고 이기적인 냉혈한이던 그의 내면에는 생존의 위기 앞에 두렵고 무서워서 떨고 있는 소년이 들어 있었다.
극한의 상황 속 인성이 사라진 이들, 결국 더 많은 좀비를 확산해갔다. 지금 지구위에는 극한경쟁, 승자독식의 물질문명 속에서 인류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가. 관절을 꺾고 달려드는 좀비, 사람의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은 인성이 사라진 인간상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남을 생각해줄 여유 따위는 없다. 네 몫부터 챙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글. 강현주 기자 heonjukk@naver.com / 사진 영화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