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식 입에 쌀 들어가는 것만 봐도 절로 배부르다고 한다. 그만큼 자식은 부모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하고 소중한 존재다. 그러나 어느 날 금지옥엽 같은 아들이 내 자식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떨까?
영화 <허삼관>은 가진 건 없지만. 가족들만 보면 행복한 남자 '허삼관'이 11년간 남의 자식을 키우고 있었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되면서 펼쳐지는 웃음과 감동의 코믹 휴먼드라마이다. 영화의 배경은 50~60년대. 대를 잇는 핏줄의 중요성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강조되었던 시기다.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를 위해 도시락을 가져다준 첫째 아들 일락에게 허삼관은 "내가 볼 때는 아버지 도시락 갖다 주는 아들이 제일로 효자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일락이도 아버지를 따르며 남다른 애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찰떡같은 두 부자 사이는 아들이 친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혈액형 검사로 인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눈만 감으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허삼관, 고기 왕만두까지 먹지 말라며 일락이를 차별한다. 그러나 일락이의 친부 하소영에게 아들을 보내야 하는 운명 앞에서 그는 거부할 수 없는 부정(父情)을 느낀다.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새겨본다. 11년간 키웠던 자식이 비록 내 친자는 아니지만, 이미 허삼관과 일락이는 부자(父子)라는 인연으로 묶여 있었다. 허삼관은 아들 일락이가 뇌염에 걸렸을 때도 자신의 피를 팔러 다니며 아들의 병원비를 구한다. 아버지의 정은 핏줄마저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영화 <허삼관>을 통해 요즘 우리 세대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일 때문에 항상 늦게 들어오시는 아버지, 아이들과 대화 한번 하기 어려운 아버지, 신문이나 TV만 보는 아버지, 우리가 늘 알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러나 허삼관은 보통 아버지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얼굴을 일그러뜨려 아이들을 웃게 만들고,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상상으로 음식을 요리해주고, 아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허삼관은 우리가 그리워하는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이 아닐까. 아버지 허삼관은 애틋한 부성애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영화 <허삼관>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깊고 위대한 의미를 관객들에게 던진다. 마지막에 아들을 구하기 위해 피를 팔아 초췌해진 모습으로 변한 아버지는 아들을 껴안고 울며 말한다.
“아버지가 늦게 와서 미안하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자식에게 항상 미안한 그런 존재다.
글. 김보숙 기자 bbosook7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