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트위터를 통해 연을 맺은 작가 선생님과 ‘번개’ 모임을 한 적이 있다. 현직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면서 매년 꾸준히 책을 써낸 분이다. 다작의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달리기’란다. 달리기를 하면서 더 열정적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석한 출판사 편집장도 마라톤을 통해 인생 슬럼프를 극복했다고 동조한다. 물리적인 시간으로 따지면 달리는 만큼 ‘금쪽같은’ 글 쓸 시간을 빼앗길 텐데, 그들은 달리기가 창조력의 원천이 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아침 운동이 뇌를 깨운다
그동안 취재를 하면서 아침 운동을 목숨처럼 신봉하는 인터뷰이들을 많이 만났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좋은 광고를 만들어내는 광고쟁이 박웅현 씨는 하루 스케줄 자체도 놀랄 만큼 단순하지만 특히 새벽에 한 시간 동안 하는 수영을 컨디션 조절의 비결로 꼽는다.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의 저자 김정태 씨는 집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서 출근하는 한 시간이 글을 구상하는 시간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그는 출근길에 그날 쓸 내용을 미리 구상하는 습관을 들여 직장에 다니면서 두 달 만에 책을 탈고했다.
그러고 보면 하루 종일 앉아서 글을 쓰는 게 업인 작가들에게 몸을 쓰는 것은 단순한 ‘운동’ 이상의 의미인 것 같다. 최근 《눈먼 시계공》을 낸 작가 김탁환은 글 쓰는 뇌에 발동을 걸기 위해 아침에 세 시간씩 걷는다고 한다.
《상도》의 작가 최인호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청계산을 오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등산을 하면 생각이 정리되기 때문에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에게 등산만 한 운동이 없다고 단언한다. 확실히 창조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침 운동은 잠들어 있는 뇌를 깨우고 창조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체력이 곧 뇌력
한발 더 나아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집요하게 달리기에 천착한 작가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의하면 그가 달리기를 시작한 계기는 이렇다.
재즈 바를 운영하면서 주방 구석에서 쓴 소설이 덜컥 신인문학상을 받자 그는 본격적으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새벽 몇 시간의 작업으로는 정말로 쓰고 싶은, 무게 있는 소설을 쓸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가게 문을 닫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한 소설이 《양을 쫓는 모험》. 그는 이 소설로 인해 전업 소설가로 자리를 잡지만 한편으로는 탈진 상태에 빠진다. 소설 작업에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부은 탓이다.
하루키는 장편소설을 쓰는 작업은 근본적으로 ‘육체노동’이라고 주장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두뇌 운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 일은 육체노동에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로 글을 쓸 때는 일상생활을 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집중력과 지속력이 요구된다.
하루키 표현에 의하면 “책상 앞에 앉아 신경을 레이저 광선처럼 한 곳에 집중하고, 아무것도 없는 데서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하루키는 그런 순간에 대해 “실제로 몸을 움직이지는 않지만 뼈를 깎는 듯한 노동이 몸 안에서 역동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작가들에게 글쓰기란 정신 능력만이 아니라 육체 능력까지 남김없이 ‘혹사’당하는 지난한 작업에 다름 아니다. 18년간의 강진 유배 생활 동안 수백 권의 저술을 남긴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은 글을 읽고 쓰느라 너무 오래 가부좌로 앉아 있던 탓에 복사뼈가 문드러졌다는 기록이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작가 조정래는 《아리랑》을 쓸 때 하도 오래 앉아 있어서 엉덩이에 종기가 나고 탈장 수술을 받아야 했으며, 결국 오른쪽 어깨가 통째로 마비되는 직업병을 앓았다.
《칼의 노래》를 쓴 김훈도 마찬가지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 어찌나 고생을 했던지 생니가 8개나 빠져버리는 바람에 동인문학상 상금으로 임플란트를 해 넣어야 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남겼다.
어떤 창조적인 작업이든 아이디어를 낚아채서 무엇을 창조할지를 고민하고 결정할 때는 반짝이는 영감 하나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을 현실로 이뤄내기 위해서는 무지막지한 집중력과 지속력이 요구된다.
아무리 좋은 글감이 있다 하더라도 작품으로 완성하지 못한 작가는 빛을 볼 수 없다. 그런데 창조의 전 단계를 아우르는 집중력과 지속력은 단순히 넘치는 열정과 강인한 의지만으로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보이고 만져지고 읽히는 실체로 창조하기 위해서는 육체노동에 버금가는 집중력과 지속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힘은 결국 체력에서 나온다. 체력이 곧 창조력이다.
글·전채연 ccyy7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