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숲에서 거닐다

지식의 숲에서 거닐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

브레인 24호
2013년 05월 03일 (금)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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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내가 가진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지식이 개인의 자산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대화 과정에 관여하는 흐름’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그가 꿈꾸는 지식생태계에서는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수용하여 그 절충 결과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만들어진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당연한, 그러나 잊고 있던 생태계인가.  
♣ 지식생태학자라고 불리시는데, 지식생태학이란 무엇인가요?
지식경영학과 생태학을 합친 말이죠. 구성원이 가진 다양한 지식들이 지식의 숲에서 어떻게 자유롭게 활성화되고 공유될 것인가, 생태계가 유지 발전되는 원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조직에 대입해 보는 일종의 융합학문이라 볼 수 있어요.


많은 접촉을 통해서 배우고, 시행착오를 겪고, 수많은 연습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 지식인데, 대부분의 기업에서 하는 지식경영은 어떻게 하면 빨리 구성원들이 가진 지식을 뽑아서 시스템에 저장해 놓고, 필요한 사람들이 벌 떼같이 날아와서 순식간에 공유하게 할 것인가 하는 효율의 논리가 지배합니다.


사실 자연에는 효율이 없잖아요. 그런데 인간이 나타나서 “너희들 왜 이렇게 들쭉날쭉 피는 거야. 한꺼번에 빠르게 펴!” 한다면 자연의 아름다움이 없어지겠지요. 효율이라는 담론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기심(기계의 마음)이 들어서면서 효율의 논리, 즉 적게 투입하고 빨리 뽑아내려고 하는 발상들이 지식의 공유를 막는 근본적인 장애요인이 됩니다. 김치 담그는 것과 같은 손맛 지식은 디지털 첨단사회가 와도 접촉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죠. 그런 문제의식에서 탄생한 것이 지식생태학입니다. 


♣ 저서에 보면, 학습은 ‘상생적 더부살이 과정’이라는 말이 있는데, 건강한 학습이란 어떤 학습인가요?


학습이라고 하면 결핍된 욕구를 채우는 것, 빈 머리에 부족한 능력을 채워넣는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 보니 지식을 나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만 쓰게 되어 ‘나눔’이라는 학습의 본래 의미가 희석되고 있어요.


오히려 학습이라는 것은 지식을 나누는 것이고, 버리고 비우는 것입니다. 기존의 지식, 고정관념을 털어내야 새로운 지식이 들어올 수 있잖아요. 지식에는 수학 체감이 아닌 체증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하죠. 지식은 혼자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나누었을 때 효과가 커집니다.


트위터를 시작한 지 세 달 정도 됐는데, 사람들에게 140자 분량의 지식을 지속적으로 보냅니다. 메시지를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죠. 나눔을 통해 동기부여가 일어나기도 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공유되지 않을 때에는 나 혼자만의 지식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면 그 사람의 생각이 바뀌고 삶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죠. 이런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습이 아닐까 합니다.


건강한 학습을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일단 현대인들이 건강하지 않아요. 신체의 건강이 마음의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말이죠. 시멘트 바른 집에서 자고, 하루 종일 흙 밟아볼 시간도 없고, 인스턴트 식품을 먹어요.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오히려 줄고, 낯 모르는 사람들과는 소통하면서 정작 배우자하고는 소통이 안 되죠.


이런 것들이 인간의 건강성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봅니다. 신체의 건강을 확보하려면 무엇보다 운동을 해야 해요. 저도 마라톤을 하거든요, 헬스도 하고. 체력이 바탕이 돼야 뇌력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현대인들은 체력이 매우 약해요.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없죠. 상상력도 그렇고. 물론 정신의 건강을 확보하려면 책도 좀 읽어야죠.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자기 개발서만 읽어요.


‘20대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스무 가지’ 뭐 이런 처방전 중심으로 ‘어떻게 써먹을까’ 하는 생각만 하죠. 고전이나 인문학 책은 읽으려고 하지 않아요. 그러니 ‘정신 나간’ 상태가 되는 거죠. 정신 나간 사람들이 정신없이 일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어요. 우리 사회 전체의 건강성이 걱정입니다.


지식생태계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힘은 무엇인가요?


자연을 관찰하면 거기에 인생의 지혜, 삶의 지혜가 있어요. 개나리꽃 한 송이를 보고 “참 화려하다”고 하지는 않죠. 개나리는 집단으로 춤을 추는 꽃이거든요. 또 삼나무는 수직으로 높게 자라는 나무인데, 땅을 파보면 뿌리가 매우 얕아요.


그럼에도 쓰러지지 않고 높이 자라죠. 뿌리와 뿌리가 엉켜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에요. 뿌리의 연대가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겁니다. 우리 사회는 흔히 연대망을 형성할 때 윗사람하고만 줄을 잡으려고 하죠. 그런데 사실 밑으로 내려갈수록 연대망의 힘이 강해집니다.


늘 자연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어요.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 거기에는 치열한 약육강식이나 생존경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공생의 지혜가 있어요.


50여 권의 저서를 쓰셨는데, 교수님께 글쓰기란 어떤 의미이며,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쓰기란 그리움을 긁는 행위인 것 같아요. 몸부림이자 그리움이죠. 자기가 그리워하는 것이 많아야 글을 씁니다. 쓰지 않으면 쓰러지죠. 그런데 난 요즘 글을 너무 많이 써서 쓰러질 것 같아요.


하하.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보다 한국말을 많이 몰라요. 영어 22,000단어는 잘 외우는데 말이죠. 궁둥이와 엉덩이의 차이, 방망이와 몽둥이의 차이, 병마개와 병뚜껑의 차이를 알고 정확하게 쓰는 경우가 드물어요.


글을 잘 쓰려면 어휘력을 늘려야 하고, 어휘력을 늘리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해요. 글 쓰는 방법에 대한 책이 무수하게 많은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이 되든 안 되든 자기 생각을 밖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매일 꾸준히 하는 거예요.


우리는 글을 쓸 때 머릿속으로 계속 고민만 하다가 겨우 써놓은 글을 보고는 스스로 실망해서 더 글을 쓰지 않기 일쑤죠. 글 쓰는 비결은 첫 한 줄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첫 한 줄을 쓰고, 그 다음날 또 한 줄을 쓰면서 ‘왜 내가 생각한 것과 표현한 것이 이렇게 다를까’, ‘말하고 글이 왜 다를까’를 생각하면서 부족한 표현력과 어휘력을 채워가면 좋은 글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 접하는 정보의 양이 무척 많으실 텐데 지식을 관리하는 방식은 어떤 것인가요?


머릿속에 인지맵이 그려져 있어요. 생태학, 방법론, 교육학, 디자인, 상상력, 우리말 관련 책 등등. 글을 쓰다가 참고할 책이 생각나면 분류되어 있는 책들을 찾아봐요. 신문은 일간지, 경제지를 비롯해 거의 다 보는데, 뒤쪽에 있는 문화면부터 보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거든요.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메모하는 습관이 있어요.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찰나의 아이디어 중에 유용한 것들이 많아요. 책 쓰다가 막힐 때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하고 떠오르는 것이 많거든요. 주가 되는 것은 컴퓨터 안의 폴더 관리죠.


동영상, 이미지 등 각종 데이터와 저술 관련 아이디어들을  폴더로 세분해서 관리해요. 정보를 스크랩해 놓을 수 있는 블로그도 지식관리의 중요한 부분이에요.


여전히 꿈꾸는 것이 있다면?


대학교수는 하나의 포지션 타이틀일 뿐이고, 그 외에 많은 일을 하고 싶은데, 예를 들면 ‘지식산부인과 의사’ 같은 것을 해 보고 싶어요. 지식자연분만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식낙태를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구하고 알리는 거죠.


대한민국 국민들의 학습과 지식에 관한 일을 하고 싶어요. ‘지식산부인과’라는 책을 쓸 계획도 잡고 있고요. 책은 정년퇴임 전에 1백 권 정도 쓰는 것이 목표예요. 평균 1년에 6~7권 쓰면 7~8년 안에는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장학재단을 만들고 싶어요. 후배들을 위해서 발전기금을 내고 있는데, 인세를 더 많이 받아서 학생들이 박사과정까지 전액 장학금으로 다니게 하는 장학재단을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최유리 yuri2u@hanmail.net | 사진·박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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