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의학 건강연구소 이은희 연구원

태평양의학 건강연구소 이은희 연구원

상상이란 무기로 도전하는 과학자

뇌2004년2월호
2013년 01월 09일 (수)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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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의 세포는 어느 정도 재생 능력이 있지만, 이 능력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세포가 있는데 바로 중추신경세포다. 뇌와 척수를 구성하는 중추신경세포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재생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고로 이 신경들이 손상을 입으면 회복 불가능한 장애자가 되고 만다.

사고로 하반신이나 전신 마비 후유증을 짊어지고 평생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몸’의 한계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된다.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세상은 없을까. 살아있음이, 뇌가 깨어 있음이 분명한 그 눈동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을까. 이럴 때 누군가와 텔레파시라도 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세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이은희(29세)씨는 같은 대학원에서 신경생물학을 전공하고 파킨슨 병과 관련된 연구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기업체 연구원으로 일하는 그녀는 자신의 취미인 글쓰기를 무기삼아 과학을 사람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말하고자 한다. 과학은 어렵고 딱딱한 학문이 아니라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 일상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

과학은 상상과 도전이다

“구속과 금기로부터 자유로운 발상의 전환이 과학의 밑바탕이라면, 한계에 도전하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의지는 과학의 원동력이다. 이 자유로움과 도전은 인간 스스로를 날개 없이도 하늘을 날게 해주었고, 아가미 없이도 심해에서 숨쉴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 과학이란 상상의 뿌리에 도전의 줄기를 가지고 쭉쭉 뻗어나가는 나무다.”

쉽고 재밌게 말하는 재능에 앞서 그녀의 취미는 글쓰기다. 어릴 때부터 워낙 상상과 공상하는 것을 좋아해서 이런 상상과 공상들을 글로 옮겨 적는 작업이 취미가 되어버렸단다. 그렇게 축적된 그의 상상력은 날개를 달고 벌써 두 권의 책으로 비상하고 있다. 그녀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기 훨씬 이전부터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든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의문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누구나 한 번쯤 고민했을 질문이겠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제 각각 다르죠. 어떤 사람들은 ‘철학’을 통해 답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예술’을 통해 답하기도 하지요. 저는  ‘과학’을 통해 구하고자 생물학을 택했어요.”

그녀는 스스로를 의심이 많은 성격으로 규정한다. 생물학을 전공한 것도 의문에 대한 증거자료를 제시하기 위함이었다. 그 후 그녀는 대학원에서 신경생물학을 전공했는데 그 연유 또한 생각을 할 수 있게 관장하는 모든 기능이 ‘뇌’에 있기 때문이라고. 신경생물학 연구를 거쳐 현재까지 오면서 과학은 그녀에게 신기하고 재미난 면모를 수없이 드러내 주었고 그 덕에 즐거웠다고. 하지만 뇌에 대한 그녀의 탐구 열망은 아직도 채워지지 않는다.

과학은 ‘나’ 자체이다

“우리는 가끔 사이버 세상이 우리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만들어낸 가상공간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듯하다. 인류는 때때로 자신이 만들어낸 편리한 도구에 스스로 묶여서 헤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실수도 범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는 원래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과 함께 자신이 만들어낸 것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는 또 다른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인류는 그렇게 문제를 극복하고 한계에 도전하며 점점 진화해 나갈 것이다.”







그가 본격적인 글쓰기 작업을 시작한 것은 대학원시절이던 99년 여름방학 때부터다. 취미인 ‘글쓰기’를 위해 인터넷 사이트에 ‘하리하라’라는 아이디로 ‘가타카에서 살아갈 날들을 위해’라는 카페를 운영하였다. 그때는 출판을 염두하고 쓴 글이 아니라, 그저 좋아하는 분야의 좋아하는 글들을 그냥 그렇게 써내려갔었다.

그랬던 것이 3년 동안 1백 10여 편의 칼럼으로 모이게 되었고, 어느 날 출판사에서 제의가 들어왔다. 그렇게 나온 책이 첫 단행본 〈하리하라의 생물학카페〉로 처음으로 집필했던 책이라 유독 정이 간다고 한다.

‘하리 하라hari-hara’라는 뜻의 의미를 물으니, “사람들은 ‘하다’, 혹은 ‘할 것이다’라는 의미로 많이들 오해하죠. 하지만 ‘하리-하라’라는 뜻은 어렸을 때부터 신화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인도신화에서 따온 이름으로 빛, 시작, 창조의 신 비슈누Visunu와 어둠 끝 파괴의 신 시바Shiva가 합쳐진 형태를 의미합니다.”라고 설명한다. 특별한 의미가 담긴 이름이라 지금도 아이디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글이 책으로 엮어 나오는 것을 보는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니 “참 신기하기도 하고 가슴 떨렸어요”라고 당시의 느낌을 말한다.

〈하리하라의 생물학카페〉가 2003년 제21회 과학기술부 우수과학 도서상을 수상하자 좀 더 욕심을 내어 두 번째 발간한 책이 바로 〈과학 읽어주는 여자〉다.


“보통 사람들은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매우 다른 이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전달하는가에 따라 서로 잘 어울릴 수 있고, 자연과학도 아주 쉬울 수 있지요. 제 개인적으로 장점이라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인 것 같다고 생각해서 시도해 봤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아서 뿌듯해요.”

사실이다. 기자 역시 ‘과학’이라 하면 재미없고 지루한 게다가 딱딱한 학문이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그녀를 만나는 순간 사라진다.

“나의 몸이, 즉 ‘나’라는 것 자체가 생명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를 보는 것이 과학인 것이지요.”


과학은 ‘뇌’다

“뇌세포의 발달 과정은 흥미롭다. 처음에 태아의 뇌세포는 마치 머리가 몸의 전부라도 되는 양 마구 분열만 거듭한다. 마구잡이로 뻗어나간 뇌세포들이 과하게 넘쳐나면 이제 잔인한 생존 경쟁이 시작된다. 뇌세포는 분열 속도를 늦추고, 서로서로 가지를 연결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결국 이 연결이 중간에 끊긴다거나 제대로이어지지 않아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뇌세포들은 죽는다.”

그녀는 신경생물학중에서도 ‘파킨슨병’에 대해 집중연구를 했다. 매일같이 배양 접시에 쥐의 도파민계 신경세포를 배양하고, 배양한 세포에 약물을 처리하며 죽어가는 방식을 기록하고, 이를 늦출 수 있는 방법을 실험했다. 그렇게 때문에 뇌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다. 파킨슨병은 대뇌가 죽는 알츠하이머병과 다르게 소뇌가 죽는 병이다. 대뇌는 기억, 판단, 감정, 창조 등 각종 정신활동을 담당하고 있고 이에 반해 소뇌는 근육운동을 조절하고, 몸의 균형 활동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대뇌에 손상이 가면 대표적으로 기억상실이나 알츠하이머 병과 같은 치매증세가 일어나는 것이고, 소뇌에 손상이 가면 팔, 다리가 떨리고, 근육이 굳어지며, 몸 동작이 느려지는 운동 장애인 파킨슨병이 생기는 것.

“뇌가 파괴되는 병은 인간이 앓는 질병 중에 가장 처절한 병이죠. 알츠하이머병나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은 뇌 자체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이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 즉, 생각 자체를 잠식하기 때문에 더욱 처절하죠. 결국 인간의 생각이 잠식된다는 것은 인간의 영혼까지 잠식당하는 것과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뇌가 중요하고, 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드넓은 우주이다

그녀는 과학이라는 거물 앞에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서슴없이 다가서는 용기 또한 잃지 않는다. 단지 본인이 아는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소질이 있을 뿐이라고 소박하게 말한다. 그러나 어른이 된 우리가 아이들의 세계를  잊고 살듯이 그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소박한 그의 답변에 기자는 ‘겸손한 자신감’이란 수식어로 답하고 싶다.

“드넓은 우주에서 지구는 겨우 점 하나. 그리고 그 지구 위에서 오글거리며 살고 있는 60억 지구인들은 먼지처럼 작고 미세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인류는 잃어버린 겸손을 배웠다. 그러나 겸손이 의기소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우주가 위대하면 위대할수록, 인간이 하잘것없이 작은 존재일수록 우리에겐 그만큼 더 많이 나아갈 공간이 있다.”

글│안정희
ajhee@powerbrain.co.kr  사진│김경아
자료제공│명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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