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지 못하는 이유
영화 <아바타>에는 “I see you”라는 대사가 여러 번 나온다. 이 영화 주제곡의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시각적으로 당신을 그저 바라본다는 뜻이 아니라, 당신의 본질을 본다, 또는 진심을 안다는 의미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상태, 온전히 연결된 순간을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느낄 때, 상대방의 본심을 이해할 때 마음을 열고 ‘소통’을 시작한다.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에 겪는 갈등과 오해는 우리 주변에 숱하게 많다. 가족 구성원 간에도, 한창 사랑이 피어나는 연인 간에도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이는 상대방의 마음을 느끼려는 ‘수고스러운’ 노력 대신 그냥 지레짐작하거나, 아니면 주변에서 들은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손쉽게’ 판단해버리는 습관에서 비롯된다.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고 대화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적은 정보만으로 손쉽게 판단하고 결론 내버리는 습관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사회는 늘 소통 부족 상태에 빠진다.
소통을 잘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서로 ‘연결’ 돼야 한다. 연결돼 있지 않으면 소통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연결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은 이미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단지 연결돼 있다는 자각이 필요할 뿐이다. 이를 알면 소통할 준비가 된 것이다.
절대가치와 상대가치의 대결
.jpg) |
<아바타>에 등장하는 나비Na’vi족이나 인간은 저마다 가치 기준이 있다. 나비족은 ‘생명’이라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인간은 ‘욕망’이라는 가치를 좇는다.
나비족과 인간은 자신의 가치 기준에 따라 ‘목표’를 정하고 ‘선택’하고 ‘행동’한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인간의 탐욕은 ‘생명’이라는 절대적인 가치가 아닌 ‘욕망’, 즉 ‘돈’이라는 상대적인 가치에서 비롯된다.
이는 다른 생명체가 어떻게 되건 간에 자신의 필요만 충족하면 된다는 태도를 취하게 하고, 이로 인해 파괴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
주인공인 제이크 설리는 인간의 이러한 욕망이 잘못된 가치 기준 때문임을 처음에는 미처 알지 못하다가, 나비족의 일원이 되어가면서 차츰 깨닫는다. 마음을 열어 나비족과 ‘연결’하고 소통하면서 그들의 가치를 이해하고,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 뒤에 용기를 내어 ‘생명’이라는 절대가치를 중심가치로 삼고 살아가는 나비족의 삶을 지켜낸다.
뇌는 연결의 달인
소통과 연결의 불균형 속에 살고 있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천부적으로 ‘연결’의 달인들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뇌’의 속성을 들여다보면 그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뇌는 기본적으로 신경세포들 간의 시냅스를 통한 ‘연결’에 의해 정보를 주고받으며 생명 활동을 한다.
정보 전달 구간인 시냅스는 한 개의 신경세포에 수천 개에서 많게는 2만 개까지 있고, 뇌의 피질에만 해도 이러한 시냅스를 통해 서로 연결된 신경세포가 1백60억 개 이상 분포한다. 이쯤 되면 우리의 뇌는 거대하고도 치밀한 연결의 최고수라 할 만하다.
이러한 뇌의 특성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인, 가족, 사회, 국가 그리고 지구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은 이 모든 것들의 구성원인 우리 개인이 서로의 연결 상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서로 연결돼 있다는 자각이 없으니 소통을 하지 못하고, 절대가치를 공유하지 못하니 자신의 안위를 챙기기에 바빠 다른 사람에게 진정한 관심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과 눈에 보이게 연결된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밥을 사면서도 소외 계층이나 다른 나라의 기아와 난민을 위한 모금 운동에는 참여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재 모습인 것이다.
우리 뇌가 ‘생명’이라는 절대가치를 중심으로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연결하고 소통하는 것처럼, 인류 사회도 상대가치가 아닌 절대가치에 따라 하나의 공동체로서 소통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탄생을 위하여
이렇게 중요한 절대가치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아바타>의 주인공 제이크 설리가 나비족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의식이 치러지는 장면에 이런 말이 나온다. “누구나 두 번 태어난다. 두 번째 태어나는 때는 당신이 다른 사람들 가운데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그때다.”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우리는 누구나 어머니의 몸을 통해 한 생명으로 이 세상에 온다. 그리고 각자 어딘가의 일원으로 자리 잡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자리는 대부분 영원하지 않다. 우리에게 영원한 자리라는 건 어딜까? 내 가족? 내가 속한 사회? 내가 태어난 나라?
아마 우리가 두 번째 삶을 통해 영원히 자리 잡아야 하는 곳은 다름 아닌 이 ‘지구’가 아닐까 싶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얘기라고 느끼는가? 그건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나 작은 곳의 일원으로 너무나 작은 곳만을 위해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다.
<아바타>의 제이크 설리처럼 우리도 새롭게 태어나 두 번째 삶을 시작할 기회를 누릴 수 있다. 상대가치에서 벗어나 절대가치를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데는 제이크 설리가 그랬던 것처럼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선택이 쉽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한계를 넘어 더 큰 차원의 자리에 머물기 위해 노력하기만 한다면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수많은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적어도 우리 가정, 우리 사회가 하나의 공동체 의식으로 연결돼 소통할 수 있다면 주위의 많은 문제들을 슬기롭게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탄생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면, 두 번째 탄생은 우리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절대가치를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삶을 ‘완성’하고, 이 지구를 살리는 것이 두 번째 탄생의 이유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글·이제헌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무선통신연구부 근거리무선전송연구팀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