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기 그지없던 중년의 샐러리맨 A 씨. 어느 날 문득 그가 좀 달라졌다. 따사로운 봄 햇살에 이끌려 출근 길에 회사가 아닌 교외로 방향을 틀어 차를 몰았다. 하루 종일 멍하니 봄볕을 쬐는 일탈을 시도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TV드라마를 보다가 조금이라도 슬픈 장면이 나오면 공연히 훌쩍훌쩍 눈물이 난다. 아내와 아이들이 볼까 겸연쩍어 눈물을 훔치던 A씨, ‘내 맘을 나도 모르겠어! 요즘 왜 이러지?’ 싶어 정신과를 찾았다.
남성심리전문가로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씨는 “A씨는 인생에 있어 자연스러운 변화를 겪고 있을 뿐이다. 남성들은 40대 즈음부터 여성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기 시작한다. 이 호르몬 분비는 무의식 심층에 숨어있던 감성을 일깨운다. 남성들에게는 이 시기가 제 2의 사춘기인 셈이다. 축복처럼 찾아든 통과의례를 잘 치루어 낸 중년 남성들은 한층 더 성숙해지며 매력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남성들의 감성 이끌어내는 콘서트
지난 3월 21일부터 30일까지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는 평상시와 달리 중년 남성들로 객석이 꽉 찼다. 정혜신 씨가 ‘감성 콘서트 -남자들’이라는 이색적인 공연에 이들을 초대한 것. 강연, 상담, 연극, 뮤지컬 등의 형식을 합친 1인극을 통해 감성 표현을 수치스럽게 치부하는 중년 남성들의 딱딱한 틀을 부드럽고 잔잔한 울림으로 자극했다.
정혜신 씨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왜 남자들 문제에 그리 관심이 많은 거죠?”
이유는 남자의 한 원형으로 자리 잡은 그녀의 아버지 때문이란다. 암으로 세상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서른여섯이라는 한창 나이 때부터 홀로 삼남매를 키우셨던 아버지. 정신과 의사가 되고서야 아버지에게 우울증 증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아버지에게 항우울제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이미 젊지도 성공하지도 못한 아버지는 의사가 된 딸의 처방에 순순히 따랐으나 그것이 그녀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느 날 길에서 심장 마비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우울증도 제대로 치료해 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아직 남아있는 지 그녀는 공연 중에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래서 정혜신 씨는 풋풋한 젊은 남자, 그리고 같은 여자의 문제보다도 중년의 남자 문제에 더 애정을 느낀다. 실제로 그녀는 병원에서 환자를 상담하는 일 외에도 기업의 중견 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자아경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가 하면, 중년남성들의 삶을 정신의학적으로 살펴본 ‘맨콤플렉스’ 연구 및 기업경영전략에 정신의학적 이론을 접목시킨 ‘심리경영’등의 연구, 또 ‘조직원의 잠재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기업차원의 정신건강관리 전략’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정혜신의 감성 콘서트-남자들>은 이처럼 이전의 그녀의 활동과 맞닿아 있다. 또한 40대 남성 문제를 병원 밖으로 이끌어내 문화와 접목시켜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했다.
철학자 칸트는 ‘섹스는 두 사람이 하는 자위이다’라고 했다. 사랑을 나눌 때 서로에 대한 깊고 섬세한 배려는 결국 절정에 이르러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고 스스로를 느끼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는 의미이다. 어디 그것이 섹스를 나누는 순간뿐 이겠는가? 우리가 서로 다른 성을 이해하고, 또 다른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은 결국은 또 다른 나와 더 깊게 교감할 수 있는 길이다.
<글. 곽문주 기자 joojoo@powerbr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