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g) .jpg) 메리 앨런 마크 작 <테레사 수녀의 손>과 리처드 이베든 작 <조 루이스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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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주제로 한 전시 " Speaking with Hands " 대림미술관 3.5~5.24
" Speaking with Hands " 라는 이름으로 헨리 M. 불의
사진과 조각 컬렉션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 컬렉션은 특이하게도 전부 손이 주인공입니다. 손을 찍은 사진과 손을 테마로 만든 조각과 미술품들이죠. 일단 유명인들의 손을 주제로 다룬 사진들이 있습니다. 앨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자기 부인 조지아 오키프의 손을 찍은 유명한 사진인 <골무를 낀 손>부터 시작해서, 베레니스 에벗이 찍은 <장 콕토의 손>, 리처드 이베든이 찍은 <헨리 무어의 손>과 복싱선수 <조 루이스의 손>, 매리 앨런 마크가 찍은 <테레사 수녀의 손> 등이 있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운증후군 소녀의 손과 같은 소수자들의 손도 주인공이고, <장난감 수류탄을 든 아이>처럼 전쟁에 희생되는 인간을 표현한 손도 있습니다. 또 조각 부문에서는 오귀스트 로댕의 유명한 <손> 연작과, 파블로 피카소의 손을 주제로 다룬 작품, 실제 인물을 석고로 복제하는 작품들로 유명한 극사실주의 조각가 조지 시걸의 손, 이밖에 브루스 나우먼, 아네트 메시저, 루이스 부르주아를 비롯해 우리나라 작가인 서도호와 노상균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jpg) 앨프레드 스티글리츠 <골무를 낀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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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헨리 불은
왜 ‘손’을 모으기 시작했을까요.
그거야 작품을 사 모은 불 본인이 가장 잘 알겠습니다만, 그의 설명이 없더라도 손 작품들의 가치는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제일 처음 자신을 그리기 시작할 때 사용하는 피사체도 손입니다. 저 역시 미술 시간에 제 왼손을 그리곤 했죠.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면서 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후부터 도구의 활용이나 의사소통 기술에 있어 극적인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게다가 손은 바로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주역이기도 하지요. 앤디 워홀이 자기의 손 사진에다 <자화상>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당연한 일이죠. 손이 손을 찍었으니까요.
그러면 또 다른 질문,
과연 이 컬렉션을 볼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이 컬렉션에 모인 손들은 보통 우리가 접하는 손들과 크게 다를까요? 로댕이 묘사한 손이 보통 우리가 매일 접하는 각자의 손과 크게 다를까요? 손이 아무리 중요한 신체 부위라고 해도 손 컬렉션이 어차피 보기 싫어도 보게 되는 손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그걸 굳이 봐야 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얼굴을 묘사한 조각이나 사진이나 그림은 많이 만들어져 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감상거리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얼굴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남의 얼굴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과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손도 얼굴만큼이나 다양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뇌에서 손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서 얼마나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이미 신경생리학자들이
해답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과학자들은 대뇌피질의 부위가 어떤 신체 부위를 담당하는지를 하나하나 조사해서 일종의 뇌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이 지도에 따라 몸의 각 부위가 뇌에서 차지하는 비중대로 인체를 표현한 것을 ‘호문쿨루스Homunculus’라고 부릅니다. 라틴어로 ‘작은 사람’ 이라는 뜻의 이 이름은 서양에서는 예전부터 어떤 현상의 배후에 존재하는 조작자 혹은 요정 같은 존재를 부를 때 사용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가 송과체 속에서 인간을 조종하는 또 다른 인간을 설명할 때도 이 이름을 썼죠.
호문쿨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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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개의 호문쿨루스가 있습니다. 하나는 감각을 담당하는 녀석, 또 하나는 운동을 담당하는 녀석이죠. 어쨌든 이 호문쿨루스의 모양을 보면 우리 뇌에서 신체 각 부위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부위가 크면 클수록 그 부위를 담당하는 뇌의 부분도 크다는 뜻이죠. 뇌에서 담당하는 부위가 크면 클수록 더 예민하다는 뜻이니, 호문쿨루스의 큰 손과 두툼한 입술을 보면 그만큼 손과 입의 감각에 우리가 예민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운동신경을 담당하는 오른쪽 녀석이 왼쪽 녀석보다 손과 입이 훨씬 더 크고 배가 나와 있는 것도 보이시죠? 배가 나온 것은 심장과 위장의 운동도 뇌가 꽤 많은 신경을 투입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호문쿨루스의 손과 입이 다른 기관에 비해 기형적으로 큰 것은 손과 입의 움직임이야말로 뇌에서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곳이고, 따라서 우리가 제일 섬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신체 부위임을 뜻합니다. 이 호문쿨루스를 보면 손이 우리의 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쉽게 알 수 있는데, 두 손이 대뇌피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납니다. 한쪽 손만으로도 얼굴이 차지하는 면적의 거의 2배 이상을 차지하죠. 간단히 말해서 뇌에 들어오는 감각과 뇌에서 밖으로 나가는 운동신경의 절반 이상은 손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경학적으로 봤을 때 눈이나 코나 귀나 입으로 느낄 수 있는 것보다 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고, 얼굴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보다 손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풍부합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던가요? 손은 마음이 오가는 현관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동안 손이 차지하는 그 거대한 비중을 인식하지 못했을까요? 아마도 손이 담당한 일들이 우리 눈에 띄지 않는 음지에서 묵묵히 수행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도 저는 이 글을 손에 의지해서 입력하고 있습니다. 머릿속으로 쓰고 싶은 단어를 생각할 뿐인데 손이 알아서 그 단어들을 입력해주죠.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손이라면 분명히 한 컬렉션의 주인공이 될 만한 자격이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실제로 이 컬렉션에 등장하는 손들은 각자의 개성과 각자의 감정, 그리고 각자의 마음을 조용히 드러냅니다. 우리가 그 메시지를 들어줄 준비만 되어 있다면, 지금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의 손들도 작게 소곤거리고 있다는 사실 역시 깨닫게 되겠지요.
글·장근영 jjanga@nypie.re.kr
《팝콘심리학》 《너, 싸이코지?》 《영화 속 심리학》을 쓰고,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을 번역한 칼럼니스트이자 일러스트레이터. 현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일하고 있으며 블로그 ‘싸이코짱가의 쪽방’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