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티지 치즈에서 도파민 리스트로

코티지 치즈에서 도파민 리스트로

[뇌와 마음]

브레인 16호
2010년 12월 21일 (화)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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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만나는 일회성의 순간
일본의 뇌과학자 모기 겐이치로는 사람마다 일생일대의 변화를 맞는 일회성의 시기가 있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때 “너는 목소리가 좋구나”라는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아나운서가 된 사람도 있고, 우연히 산책을 하다가 발치에 떨어진 사과를 보고 과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법칙을 발견한 과학자도 있다. 인생을 바꾸는 깨달음의 기회는 이렇듯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갑자기 찾아온다. 그 한 번의 경험으로 인생 전체가 바뀌기도 하고, 단 한 번의 만남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기도 한다. 이처럼 어떤 사건으로 인해서 그 이후의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는 것, 이것을 ‘일회성’이라고 한다. 우리 뇌는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를 이 일회성의 체험을 소중하게 각인해서 정리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작년 겨울에 내게도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찾아왔다. 내 인생을 완전히 전복시킬 만한 대단한 일회성의 순간은 아니었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삶에 미세한 중심 이동이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당시 상황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경기는 경기대로 안 좋았고, 몇 년 동안 준비했던 일은 막다른 벽에 부딪쳤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강이 나빠졌다. 건강 하나는 자부하고 있었는데, 덜컥 겁이 났다. 이대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일단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몸을 추스르기로 했다. 건강에 관련된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고, 몸에 좋다는 방법을 하나하나 실천해가면서 몇 달을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힘썼다. 그러면서 본의 아니게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까지의 내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코티지 치즈’라는 단어가 적합할 것 같다. ‘코티지 치즈’는 데이브 스콧이라는 운동선수가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매일 치즈를 물에 헹궈 먹던 습관에서 나온 말이다. 그가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치즈를 헹궈 먹은 이유는 단순하다. 그렇게 하면 여분의 지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고, 결국 우승을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것. 사실 치즈를 물에 헹궈 먹는 행동 자체가 몸 만들기에 극단적인 차이를 만든다는 보고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치즈를 헹구는 사소한 습관이 자신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몇 년 전부터 나는 나만의 ‘코티지 치즈’를 실천해왔다. 내가 원하는 목표에 닿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전부 코티지 치즈 목록에 집어넣고 날마다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꿈은 여전히 산 너머에 있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는 위기에 처했으며  몸은 몸대로 망가져가고 있었다. 내 인생의 무언가가 삐걱거리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결정적으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분명 우리 뇌는 원하는 일을 이룬 순간뿐 아니라 그것을 이뤄가는 과정에서도 도파민을 분비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뇌과학적인 관점에서 내가 아직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도파민이 분비되어야 마땅하다. 그 꿈을 상상하고 코티지 치즈를 헹굴 때마다 가슴이 떨리고 왠지 모를 행복감에 젖는 정신적인 보상을 받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내 뇌는 왜 사막을 건너는 낙타처럼 퍽퍽하고 목이 마르고 지쳐 있는 걸까?


도파민 리스트가 주는 행복감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인간은 꽤 오랜 세월 동안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최근의 뇌과학은 마음이 뇌에 있다는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그러니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뇌를 바라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인생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뇌’라는 시스템이 인생 전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부터 명확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는 긴 시간 공들여 나의 뇌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뇌 속에서 수많은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동안 추구해오던 것들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었을까? 혹시라도 내가 나를 속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원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서 간과한 부분은 없었을까? 결정적으로,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그때부터 ‘도파민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리 멋지고 그럴 듯한 삶을 살더라도 뇌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는다면 그건 내가 나를 속이는 일에 불과할 것이다. 사람이 나이 들어 가장 허망해질 땐, 하나도 이룬 게 없을 때가 아니라 이룬다고 이룬 것들이 자신이 원했던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라 하지 않던가.

도파민 리스트를 작성한 지 두 달여, 이제 삶의 중심이 코티지 치즈에서 도파민 리스트로 미세하게 이동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 그 책에 담긴 정보를 요약, 편집하는 버릇 대신 그 글을 쓴 작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 새벽 골목길, 종종걸음으로 밤길을 재촉하는 대신 가로등 불빛에 처연하게 빛나는 목련 꽃무리를 바라보며 문득, 걸음을 멈추게도 되었다. 무엇보다 멋진 선물은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 모자라고 부족한 나 자신을 다그치고 닦달하는 대신 완벽하지 않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 오랜 지병을 앓다 깨어나 재활 훈련을 받는 환자처럼, 날마다 뇌 속에 파릇파릇한 새 살이 돋는 감각을 즐기고 있다. 여전히 삶은 더디고 팍팍하지만,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세상사 모든 것, 결국 행복하자고 하는 것 아니겠나.

글·전채연 ccyy74@brai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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