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치료를 목적으로 병원에서 마취 주사를 맞은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마취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이 중 전신마취에 대한 걱정은 정작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길 바라는 마음보다 앞서기도 한다. 전신마취는 뇌를 일종의 정전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복구되어 뇌가 다시 정상적으로 활동하지만, 복구가 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마취의 메커니즘이 대체 뭐기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기억력 감퇴, 치매 가능성 높아진다?
국소마취는 치료 부위에 있는 신경의 전달을 방해함으로써 몸의 일부만 마취하는 것으로 의식이 살아 있지만 전신마취는 의식을 잃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한다. 그래서인지 ‘전신마취를 하고 나면 기억력이 나빠진다’,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하는 속설을 듣게 된다. 전신마취를 하면 마취액이 혈액을 타고 뇌로 운반되며 이에 따라 뇌 기능이 일시적으로 저하되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서서히 원상태로 회복된다.
뇌 기능이 일시적으로 저하된다는 것은 뇌의 대사와 전기적 활동이 잠시 둔화되어 무의식, 무감각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혈중 마취제 농도가 마취 유지량 이하로 감소하면 뇌의 대사와 전기적 활동은다시 활성화된다. 따라서 앞에서 거론한 속설은 마취제로 인해 뇌 기능이 억제되었다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뇌세포가 손상될 것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실제로 마취 전후에 지능 검사를 해본 결과, 전신마취는 지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신마취는 뇌 기능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피츠버그 대학의 맨들 박사팀은 마취 후 기억력 저하에 대한 연구를 했다. 다양한 마취제에 대한 ‘아밀로이드 B’ 펩티드의 악화 기전에 대한 실험으로써, 흡입 마취제인 할로탄과 이소프로렌 및 정맥주사인 프로포폴 등이 아밀로이드 B와 상호 작용을 일으킨 후 이를 다시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 보이는 형태의 아밀로이드 B와 비교한 결과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결과 맨들 박사팀은 마취제와 기억력의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 이와 더불어 전문가들 역시 전신마취 후 기억력이 나빠진다는 것에 대한 의학적인 근거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전신마취는 에테르를 이용한 흡입마취로 시작됐다. 하지만 에테르는 마취를 시행하는 의사와 환자에게 부작용이 많이 나타나서 이를 개선한 흡입마취제 개발이 20세기 후반부터 빠르게 진척됐다. 지금의 전신마취는 여러 가지 발전된 마취 방법을 상호 보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신마취제는 호흡과 심장 기능을 억제하고 환자마다 반응 정도가 달라서 마취의 깊이 조절이 잘못되면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마취 전에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의사에게 정확하게 알리고, 반드시 마취 전문의에게 시술받는 것이 사고를 예방하는 길이다.
통증 신경 차단하면 아픈 줄 모르는 뇌
K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어느 가을날, 논에 나가 벼 베기를 돕고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K는 갑자기 멈춰 섰다. “종아리에서 피가 나!”라는 친구의 외침에 뒤돌아서 다리를 내려다보니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낫이 종아리를 벴다는 것을 알게 된 K는 그제야 통증을 느끼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왜 K는 피를 보기 이전에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을까? 이런 경험은 생활 속에서 누구나 간혹 겪는다.
우리가 걷다가 넘어져서 피가 나고 아플 때 통증을 감지하는 곳은 피부가 아니라 대뇌의 바깥 부분인 대뇌피질이다. 몸은 조직이 손상되었다는 정보를 뇌에게 알려줄 뿐이다. 그러니까 ‘다리가 낫에 베여서 아파’라는 표현은 ‘다리의 조직이 날카로운 물리적 자극에 손상 받았는데 이 정보가 대뇌피질에 전달되었어. 그래서 뇌에서 불쾌한 감정 반응과 통증 인식이 일어났어’라는 표현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런데 뇌와 관련된 재미있는 사실은 뇌는 통증이라는 느낌을 발생시키는 핵심적인 장소지만 정작 뇌 자신은 통증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뇌와 몸은 서로를 보호하며 연결되어 있는데, 이 사실을 국소마취와 연관시켜보자. 어떤 이유에서인지 통증 신경은 제일 쉽게 마비된다. 그래서 적당량의 마취제를 사용하면 의식은 남기고 통증만 없앨 수 있는 것이다. 마취제는 신경에 일단 달라붙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떨어져 나간다. 그 순간 신경과 함께 통증도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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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이런 얘기, 사실일까?
Q 봉숭아물을 들이면 마취를 할 수 없나? A 손톱을 이용해서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던 때가 있었다. 이는 15년 전의 일로, 현재는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기계 장치를 이용한다. 때로 마취 전에 간호사에게 손톱의 매니큐어를 지워달라는 지시를 받는데 이는 마취 중에 손톱을 눌렀다가 놓으면 손톱 밑이 하얘졌다가 다시 혈색이 돌아오는 시간을 봐서 혈액순환이 잘되는지 체크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는 것과 마취를 하는 것에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Q 마취가 잘 안 되는 체질도 있나? A 여러 가지 인자의 영향으로 마취 유도 속도가 달라질 수는 있으나, 마취가 잘되거나 잘 안 되는 체질이란 따로 없다. 환자의 건강 상태에 따라서 마취 효과가 나타나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예를 들면 알코올을 만성적으로 마시는 사람의 뇌는 마취제에 대한 저항이 높아져서 마취액을 늘려야 한다.
Q 마취 중 각성이 정말 일어날 수 있나? A 이 문제를 다룬 영화가 나오면서 전신마취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었다. 환자의 의식이 깨어났는데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은 근육을 이완시켜 수술이 잘되도록 ‘신경근차단제’를 투여했기 때문이다. 마취 중 각성은 흡입마취제나 정맥마취제를 투여하지 않은 경우, 마취 기계의 오작동, 잘못된 약 투여 등으로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최근에는 BIS 장비로 환자의 수면 상태(마취의 깊이)를 뇌파로 감시한다. 환자가 움직이지 못하고 말을 못해도 의식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서 마취가 잘되어 있는지 수시로 점검한다. 어떤 수술이든 부작용에 대한 위험은 있다. 전신마취의 경우 검증되지 않은 떠도는 정보로 불안해하기 전에 마취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아두자. 또 마취는 반드시 마취 전문의에게 맡겨야 한다. 일부 병원에서는 수술 전에 환자와 면담하면서 적절한 약제를 미리 투여해보기도 한다. 마취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심한 사람이라면 이런 병원을 찾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일 듯하다. |
글·김보희
kakai@brainmedia.co.kr | 도움말·김동수 교수(경희의료원 마취통증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