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을 사람들은 의지의 문제라고 한다. 어떤 점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어떤 점에서는 틀린 말이다. 중독되는 과정은 심리적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리적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심리적인 문제는 의지의 문제로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리적 과정은 의지 이상의 무엇, 즉 의학적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의학적 도움이 반드시 절대적이지는 않다. 의학적 도움없이 알코올이나 마약을 끊는 사람도 적지않게 있으니 말이다. 중독현상은 이처럼 간단치 않은 논의와 연구가 필요한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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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들어서 특정 병리적 현상이나 행동을 중독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늘었다. 정신의학에서는 중독이라는 용어를 엄격히 알코올이나 마약, 흡입제, 니코틴 등에 한정하지만, 사회학자나 매스컴은 도박중독, 쇼핑중독, 인터넷중독이라는 용어를 남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생리적 중독과는 다른 행위적 중독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엄밀히 분류하자면 도박, 쇼핑, 인터넷 중독은 충동조절장애
(impulse-control disorder)로 볼 수 있다. 이런 충동장애와 중독 사이의 관계가 모호하므로 사람들은 모두 중독이라고 지칭하게 되는 것 같다.
중독의 메커니즘
그렇다면 중독이라는 현상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중독에 이르는 과정은 간단히 말해서 ‘사용(use)-남용(abuse)-의존(dependence)=중독’의 연속적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과정은 갑자기 급격스럽게 일어난다기보다 시간의 축적을 요한다. 그래서 사용단계, 남용단계는 언제나 예방의 초점이 된다. 예를 들어, 술이나 담배를 사용하기 시작해서 의존단계에 이르는 것은 몸과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인데, 쉽게 말하면 컴퓨터의 운영체제가 바뀌는 것과 유사하다. ‘의존단계’라고 하는 것은 뇌의 작동기제가 술의 성분인 알코올이나 담배의 니코틴을 주원료로 움직이는 상태를 말한다. 알코올 중심 운영체제, 니코틴 중심 운영체제로 뇌가 생리적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알코올과 니코틴이 공급되어야만 작동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내성’은 알코올에 적응하여, 일정한 중독 상태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알코올 용량이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처음에는 소주 한 병에 취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소주 한 병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상태, 즉 두 병을 필요로 하는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금단’은 알코올 중심으로 운영되던 뇌체제가 갑자기 알코올 공급이 끊겼을 때 보이는 혼란스런 현상을 말한다.
특히 알코올이나 마약에 의한 금단은 그 반응이 매우 격렬하여 의학적 도움이 없이는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이때 응급처치는 다시 알코올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면 뇌는 다시 알코올 중심체제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을 끊기 어려운 것은 이 금단증상이 격심하기 때문이다. 니코틴도 역시 금단증상이 존재하고 이로 인해 완전한 금연이 어려운 것이다. 정신의학적 진단을 위한 미국 정신의학 통계편람에서는 여기에다 ‘사회적 기능의 상실’이라는 요소를 추가한다.
이렇게 내성과 금단 그리고 사회적 기능의 상실, 이 세 가지가 의학적으로 중독을 정의하는 핵심 요소이다.
현대 의학의 발전은 중독의 기제를 더 미세한 수준에서 설명하고자 하는데 이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뇌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다. 뇌내 특정부위의 도파민 대사과정이 중독회로를 가동시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암페타민이나 코카인 같은 마약 중독물질은 뇌내 도파민 주머니를 자극하거나 짜내게 해서 뇌내 도파민량을 상승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이것은 극도의 흥분과 쾌감을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암페타민에 비하면 코카인은 도파민을 휠씬 많이 방출시키기 때문에 코카인의 중독성은 다른 어떤 마약에 비해서도 높다.
‘사람의 힘’으로 치유
이렇듯 중독의 메커니즘과 관련물질은 밝혀졌지만, 중독의 해법은 아직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다. 도파민량을 낮추면 중독현상이 사라질 것 같지만, 사람의 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항도파민제는 현재 정신분열증 치료제로 쓰이긴 해도 알코올 중독의 주치료제는 아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도파민을 매개하는 물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명 ‘갈망 감소제’라는 약제는 도파민 외의 다른 신경전달물질에 작용한다. 하지만 이 또한 기대만큼 중독의 해법에 효과적이진 않다.
중독의 시원한 해결책이 나타나지 않는 동안, 사람들은 스스로 중독 극복 방안들을 개발해내기 시작했다. 흔히 협심자 모델이라고 하는 단주동맹(Alcoholic
Anonymous)은 중독자 자조에 의해 중독을 해결하는 모델이다. 현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중독치료의 결과들 중에서 이 단주동맹의 효과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 효과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단주동맹이 사람의 힘을 빌린다는 점이다.
정신과 의사이면서 영적 치료자인 스콧 펙은 중독을 영적 질환(the disorder of spirituality)이라고 했다. 심리적, 신체적 영역을 뛰어넘은 영적 부분이 중독과 밀접히 닿아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중독은 신성한 질환이고 중독을 극복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더 깊숙한 본성을 지니게 된다고 여겼다. 스콧 펙은 “중독은 강력한 갈망을 갖게 되는 상태로 우리는 이 갈망을 술에 내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강력한 갈망을 맞대응하고 우상에 팔아 넘기지 않으면 새로운 현실을 보게 된다. 중독은 우상숭배의 하나이다”라고 말했다.
자기조절력이 관건
술이나 담배와는 달리 흔히 도박중독, 쇼핑중독이라고 부르는 병적 도박, 병적 쇼핑 등은 그 핵심적 치료법이 자기조절력의 회복에 있다. 충동에 대한 자기조절력이 있으면 적당히 즐길 수 있게 된다. 최근에는 비만도 이런 충동조절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도박, 쇼핑, 인터넷, 섭식 등은 비록 중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영원히 단절되게 하는 것이 치료일 수 없는 특성이 있다. 밥중독이라고 해서 밥을 영원히 먹지 못하게 할 수 없고, 쇼핑중독이라고 하여 쇼핑을 금하고 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여기에서 초점이 되는 것은 왜 어떤 사람은 자기 조절을 잘 하는데, 일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다. 자기조절적 행동에 대한 연구는 그래서 최근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독은 개인의 질환이긴 하지만 그 고통은 온 가족이 나누어야 하는 가족병이라는 현실을 강조하고 싶다. 알코올 중독은 배우자에게 동반의존을 불러 일으키거나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도박으로 온 가족이 재정적 타격을 받기도 하며, 자녀의 인터넷 중독으로 온 가족이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중독과 충동장애는 곧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다.
‘중독中毒’은 말 그대로 독 가운데 있는 것이다. 독을 추구하는 것임을 더 분명히 알려야 하는데 중독자들은 독을 약으로 여긴다. 여기에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다.
글│김현수 minuchin@hanmail.net정신과 전문의, 사는기쁨 신경정신과의원 원장, 중독정신의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