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하면 왜 입맛을 잃을까?

브레인 탐험

브레인 14호
2010년 12월 09일 (목)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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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밑바닥에 감춰진, 본능과 행동의 지휘자 ‘시상하부’

시상하부(Hypothalamus)는 이름 그대로 시상의 밑, 입천장의 바로 위에 위치한 작은 조직이다. 완두콩만 한 크기에다 무게도 10g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율신경계와 내분비계를 통제하고, 생존과 관련된 본능적인 행동들을 조정하는 곳이다. 시상하부가 없다면 우리는 욕구를 느끼거나 충족시킬 수 없고, 몸의 균형은 엉망이 되어 살아남을 수 없다. 신체와 본능적인 부분뿐 아니라 감정과 의식에도 시상하부는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우리 몸 안팎과 마음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마에스트로, 시상하부를 살펴보자.



정보의 장르를 가리지 않는 잡학다식 시상하부

시상하부는 신경을 통해 전달되는 전기적 신호들뿐 아니라 혈관을 통해 전해지는 화학적 신호들을 받아들인다. 특히 시상하부와 그 부근의 혈관 사이는 다른 뇌 영역들에 비해 엉성한 장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스테로이드 계열이나 렙틴, 그렐린, 인슐린 같은 호르몬들이 쉽게 전달된다. 심장이나 위장에서 전달되는 정보들과 자율신경계의 정보들도 끊임없이 들어온다. 또 시상하부에는 빛 자극을 받아들여 밤과 낮, 하루 24시간을 뇌의 다른 영역에 알려주는 생체시계가 있다. 후각 신호도 받아들여 위험을 감지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찾고,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정보로 사용한다.

들어오는 정보만큼이나 나가는 정보들도 다양하다. 감정과 기억, 학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변연계는 모두 시상하부와 연결되어 있다. 또한 시상하부는 갑상선 자극 호르몬 방출 호르몬(TRH: Thyrotrophin Releasing Hormone), 배란과 정자 생산에 관여하는 생식선 자극 호르몬 방출 호르몬(GnRH: Gonadotropin-Releasing Hormone), 부신피질자극호르몬 방출호르몬(CRH: Corticotropin-Releasing Hormone), 성장 호르몬 방출 호르몬(GRH: Growth hormone-Releasing Hormone), 성장 호르몬 방출 억제 호르몬(GIH: Growth hormone-release-Inhibiting Hormone)과 프로락틴의 방출을 억제하는 도파민dopamin 등 화학적인 신호들을 만들어낸다.

시상하부에서 만들어낸 이들 호르몬은 다른 호르몬의 분비를 통제하고, 몸의 각 부분에서 만들어진 호르몬들은 다시 시상하부에 작용한다. 흔히 호르몬을 만들어내는 뇌의 중요한 내분비 기관으로 뇌하수체가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뇌하수체의 기능은 시상하부가 만들어내는 호르몬을 모아서 내보내거나 그 통제를 받아 활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원초적 본능의 해결사

이처럼 다양하고 많은 정보들은 시상하부가 인간과 동물의 생존에서 가장 기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필수다. 시상하부에는 배고픔, 포만감, 성적 욕구, 공포심, 투쟁심 등 원초적 본능들의 중추가 모두 모여 있다. 배가 고프거나 목 마르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시상하부가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성을 만나 성적으로 끌리는 느낌이 드는 것도 시상하부에서 그런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위험이 닥치면 싸우거나 도망가는 등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도 시상하부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본능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작은 시상하부에 본능의 중추들이 모여 있다 보니 자연히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예를 들어, 실연을 당하면 때를 넘겨도 밥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고, 별미를 먹어도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하루 세 끼는 물론, 간식거리까지 챙겨 먹던 사람을 음식 앞에 초연한 사람으로 바꿔놓는 이러한 변화는 뇌하수체의 식욕 중추와 성욕 중추가 나란히 위치한 데서 비롯된다.

연애를 시작한 이들이 맛집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이유도 두 개의 본능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 아닐까? 연인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동안 뇌 속에서는 연쇄적으로 성적 연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공포에 질리거나 누군가와 다툴 때 음식 생각이 달아나는 것도 뇌하수체 속에서 서로 연결된 핵들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S 라인도 V 라인도 뇌하수체 생각대로

뇌하수체의 여러 가지 중추들 중에서 섭식 중추는 우리 몸의 에너지 대사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곳이 고장나면 아무리 먹어도 배고픔이 충족되지 않는다. 반대로 음식을 먹지 않아도 전혀 배고픔을 느끼지 못해 굶어 죽을 수도 있다. 비만한 사람의 식욕 중추 회로는 정상 체중인 사람과 다르게 작용한다. 고지방, 고칼로리 음식을 먹어야만 포만감을 느낄 수 있도록 뇌회로가 바뀐 것이다. 폭식이나 거식처럼 비정상적인 식습관도 뇌하수체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상하부의 섭식 중추가 몸 안팎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에너지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몸짱’이냐 ‘몸꽝’이냐가 결정된다. 최근 비만 연구가들은 시상하부를 조절해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에 발견된 NAPE(N-아실포스파티딜에타놀라민)라는 신호물질은 체내에서 자연 생성되는 다이어트 물질로 주목을 받았다. 이 물질은 지방을 많이 섭취했을 때 장에서 만들어지는데, 뇌하수체에 도달하면 식욕이 억제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연구진은 사람이 지방을 지나치게 섭취해 비만이 되는 것도 이 물질 분비의 시스템에 이상이 발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서와 자율 중추의 관제탑

시상하부가 하는 일 중 감정과 관련된 기능도 빼놓을 수 없다. 시상하부는 변연계의 다른
구조물들과 함께 감정 반응을 일으킨다. 가령 공포감을 느낄 때 편도와 시상하부의 활동량이 많아진다. 공포나 분노를 느낄 때 어떻게 행동할지도 시상하부에서 결정된다. 전두엽이 시상하부의 활동을 억제하면 감정이 억제되고, 그렇지 않으면 감정이 터져 나온다.

사랑의 감정에도 시상하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출산과 수유 등 여성이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할 때 분비되는 대표적인 호르몬인 옥시토신은 시상하부에서 만들어져 뇌하수체에 저장된다. 옥시토신은 모성애뿐 아니라 서로 포옹하고 싶은 감정을 느끼게 하고, 성적 쾌감의 원천이 된다. 가족을 넘어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 유대감과 공감이 형성되는 것도 시상하부에서 만들어진 옥시토신의 역할이다.

정서 작용과 자율신경 활동을 일치시키는 역할도 시상하부가 하는 일이다. 위험을 만났을 때 시상하부는 비상사태를 알리기 위해 교감신경을 자극한다. 그러면 카테콜아민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고, 눈동자가 커지고, 혈관이 수축되며, 심장이 빨리 뛰게 된다. 시상하부가 뇌하수체를 자극해서(부신피질 자극 호르몬)이 나오면 콩팥 위쪽에 위치한 부신에서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한다. 적당한 양의 코르티솔은 포도당을 빨리 만들어내 뇌와 근육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신경세포들을 죽인다. 현대인에게 처치 곤란한 문제인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일도 시상하부를 어떻게 길들이느냐에 달린 것이다.


몸과 마음의 균형추

이처럼 시상하부는 외부의 자극에 따라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아주는 균형추 역할을 한다. 기초적인 생존과 정서 이외에도 사춘기의 시작, 폐경기의 복잡한 생리적 변화 등 시상하부와 관련된 부분은 무수히 많다. 균형을 맞추는 시상하부의 균형추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이동할 때 이런 부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개발되고 있는 약물들은 시상하부의 정상적인 작동 방식을 연구하고 조정하는 것들이 많다. 인공적인 약물이 아니라 자연 식품이나 생활 습관을 조절해 새로운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들도 많아지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시상하부가 의식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성의 영역으로만 생각했던 학습과 판단 기능에 정서와 무의식, 직관 등이 깊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들은 개인의 성격이나 기질까지도 시상하부에 달려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거꾸로 보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마음 쓰는가에 따라 시상하부의 균형이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다.

뇌간과 함께 우리의 생명과 의식의 가장 밑바탕을 이루는 시상하부. 그 깊은 비밀을 알아낼수록 뇌의 비밀도 함께 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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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성진 daniyak@brainmedia.co.kr | 일러스트레이션·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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