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의 뇌와 박찬호의 뇌는 다르다?

브레인 신호등

브레인 36호
2012년 10월 30일 (화)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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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하는 박지성 선수의 자로 잰 듯한 패스는 축구팬들을 열광시킨다. 묵직한 구속으로 삼진아웃을 잡아내는 박찬호 선수의 노련한 제구력 또한 야구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축구 뇌와 야구 뇌, 어떻게 다를까?

흔히 운동선수들은 머리가 나쁘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최근의 뇌과학은 우리 뇌가 운동을 할수록 더 똑똑해진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일리노이대학교 찰스 힐먼 교수는 일리노이 주의 3학년과 5학년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체력과 학업 성적의 상관관계를 비교해보았다.

그 결과 달리기와 수영, 조깅, 자전거 타기 등을 꾸준히 한 학생들이 산수와 읽기 성적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40명의 뇌파를 검사해보니 체력이 좋은 학생들이 뇌파 활동도 활발하고, 집중력과 관계 기억력도 더 좋은 것으로 밝혀졌다. 한때 아이스하키 선수로도 활약했던 힐먼 교수는 운동선수가 아둔하다는 편견을 버리라고 말한다.

축구선수에게 필요한 축구지능

실제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하는 박지성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누구보다 지능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축구팬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웨인 루니 선수가 이차방정식도 못 풀 것 같다고 말하지만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연구진은 축구선수는 절대 멍청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연구팀이 축구선수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인지능력에 관한 광범위한 테스트를 한 결과, 축구선수의 지적 능력은 보통사람보다 높고, 특히 인지능력은 상위 2%에 해당했다.

볼튼 원더러스의 이청용 선수도 축구선수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축구지능’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늘 체격 문제를 단점으로 지적받았던 그는 영국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체격적인 요소는 중요하다. 하지만 반드시 좋은 신체조건을 가져야만 축구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라운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축구지능이다.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체격보다 높은 축구지능을 가져야 한다.”


이청용 선수가 언급한 ‘축구지능’은 경기의 흐름을 읽고 필요한 때 필요한 자리에 가 있을 수 있으며 노련하게 공을 가로챌 수 있는 ‘경기지능’을 말한다. 스웨덴 칼롤린스카연구소 연구팀은 축구선수에게 필요한 경기지능이 인지과학자들이 말하는 ‘집행기능(executive function)’의 한 측면이라고 지적했다.

집행기능이란 즉각적인 창의성을 발휘하여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고, 전술을 재빠르게 변경하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 과거의 행동을 바꾸는 능력이다. 연구팀의 프데르래그 페트로비치 박사는 스웨덴 축구 리그 선수 5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집행기능이 높은 선수들이 실전 성적도 높고 지능검사에서도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고 밝혔다.

날아오는 공을 잡는 뇌의 원리

그렇다면 축구선수가 빠르게 날아오는 코너킥을 헤딩하거나 야구선수가 휘는 커브볼을 제대로 쳐내는 것, 외야수가 잘 맞은 타구를 끝까지 쫓아가서 잡는 것은 뇌의 어느 영역과 관련이 있을까? 연세대 심리학과 김민식, 이도준 교수팀은 뇌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관찰한 결과 뇌의 뒷머리 아랫부분에 있는 시각 영역이 물체의 이동 궤적 같은 시공간적 특성을 처리한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축구선수와 야구선수의 실력은 결국 시력이 좌우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타자는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치기 위해 끝까지 공을 노려보아야 하고, 축구선수는 넓은 그라운드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공을 패스하기 위해 시야가 넓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축구선수의 시각 능력은 보통사람과 달라서 숙달된 축구선수는 공에 시선을 고정하는 시간이 일반인보다 20% 정도 짧고 다른 선수가 찬 공이 어디로 날아갈지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다른 선수가 공을 차기 직전에 이미 공이 어디로 날아갈지를 감지할 수도 있다고 한다.

박지성 선수가 비어 있는 공간으로 재빨리 공을 밀어넣을 수 있는 것은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시야가 넓고 눈으로 얻은 정보를 뇌에서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인 셈이다. 

축구 뇌와 야구 뇌는 어떻게 다른가

물론 ‘축구 뇌’와 ‘야구 뇌’의 차이도 분명 존재한다. 일본의 가노야체육대학 고다마 미쓰오 교수는 “축구는 경기 특성상 선수 개인의 순간판단능력이 중요하지만 야구는 감독의 사인, 즉 이미 계획된 행동을 선수가 제대로 완수하는 것이 중요한 스포츠”라고 말한다.

따라서 축구선수에게는 축구공이 날아오는 데 따라 순간적으로 상황 판단을 한 다음 공을 몰고 상대편 골대까지 깊이 파고들어갈 수 있는 대뇌피질의 판단능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야구선수는 감독의 사인을 그대로 완수해내야 하기 때문에 대뇌피질보다는 소뇌의 기능이 더 중요하다. 소뇌는 연습을 통해 동작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깊이 관여하는 영역이다. 이승엽 선수가 타석에 서서 배트를 휘두르거나 박찬호 선수가 타자를 상대로 공을 고를 때 순간판단능력보다는 감독의 사인에 따라 원하는 목표를 제대로 수행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같은 이유로 피겨스케이트의 김연아 선수나 체조의 양학선 선수처럼 고도의 예술적인 동작을 수행해내는 선수들에게도 대뇌피질보다 소뇌의 기능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 대뇌기저핵 부위는 같은 동작을 반복 연습할 때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해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인 동작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처럼 운동선수들은 단순히 신체적인 조건과 기본적인 운동신경만 좋은 것이 아니라 각 종목을 노련하게 소화할 수 있는 인지능력 또한 뛰어나다. 그들이 운동을 했기 때문에 인지능력이 좋아진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인지능력이 좋았던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운동이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촉진하고, 신경세포 간 시냅스 형성을 통해 뇌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것, 운동을 하면 전두엽과 해마의 크기가 증가하고 집중력이 높아질 뿐 아니라 충동을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최근 뇌과학을 통해서 밝혀지고 있다.

글·전채연 ccyy74@naver.com | 일러스트레이션·양명진 artym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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