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오후, 동료의 사소한 농담 한마디에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10시간을 잤는데도 진흙 속에서 막 빠져나온 것처럼 몸이 무겁다. 어느 날은 평범한 업무 확인 메일 한 통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모든 것이 망할 것 같다’는 불안이 해일처럼 밀려온다.
아픈 곳은 나았는데도 평소 즐겨 보던 드라마가 재미없고 친구의 연락마저 귀찮게 느껴진다.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웅크리고만 싶어진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응급실을 찾지만, 돌아오는 말은 단 한마디다. “이상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감정 문제의 원인이 ‘멘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신 뇌과학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진짜 문제는 무너진 정신력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 곧 ‘내부감각 문해력’의 상실에 있다는 것이다.
감정은 뇌 혼자 만들어내는 창작물이 아니다. 장과 간, 심장과 폐, 면역계와 근육 등 몸 곳곳에서 올라오는 생물학적 신호를 뇌가 해석하고 편집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뇌가 울기 전, 몸이 먼저 울고 있었다!
내부감각 문해력이 낮아지면 뇌는 이런 신호들을 잘못 읽어낸다. 극심한 피로를 우울로 착각하고, 근육의 비명을 분노로 해석하며, 내장의 요동을 공포로 부풀리고, 면역 시스템의 에너지 재분배를 무기력으로 오해한다.
저자는 최신 뇌과학 연구와 500여 편의 논문을 바탕으로 감정의 기원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장내 미생물과 우울, 간과 번아웃, 심장 박동과 불안, 만성 염증과 우울, 수면과 감정 조절, 타인과 상호작용 하며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는 공동조절(co-regulation)에 이르기까지 몸과 뇌가 함께 만들어내는 감정의 메커니즘을 밀도 있게 풀어낸다.
불안과 우울, 무기력이 일상이 된 시대. 현대사회는 감정 문제를 개인의 정신력과 의지로 극복해야 할 고독한 과제로 떠넘겨 왔다. 그러나 최신 뇌과학의 렌즈로 들여다보면, 감정 문제 뒤에는 하나같이 선명한 생물학적 실체가 존재한다.
무너진 장 내벽과 꺼지지 않는 만성 염증, 들숨과 날숨의 엇박자, 어긋난 생체 리듬, 그리고 지친 간이 띄워 보낸 호르몬들까지. 우리가 ‘감정’이라 불러온 많은 것들은 사실 몸과 뇌가 함께 만들어낸 생존의 신호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몸은 뇌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슬픔과 기쁨, 아픔과 회복을 반복하고 있다.
감정의 소용돌이 앞에서 이 책은 지금까지 반복해 온 “왜 나는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가?”라는 자책 대신, “지금 내 몸은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건넨다.
감정은 관계 속에서 공명한다
이 책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겪는 ‘디지털 외로움’에 주목한다. 온종일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우리 뇌는 점점 더 깊은 고립감을 느낀다. 우리는 감정이 내 머릿속이나 가슴속에서만 은밀히 일어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감정은 결코 개인 내부에 고립된 채 만들어지지 않는다. 놀랍게도 인간의 뇌는 타인의 표정과 목소리, 호흡과 체온에 실시간으로 주파수를 맞추는 ‘사회적 기관’이다. 그러나 초연결 사회가 제공하는 연결에는 부교감신경을 안정시키는 이러한 생리적 신호들이 빠져 있다.
뇌와 감정의 메커니즘을 추적한 끝에, 저자는 결국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바로 감정이라는 합주를 아름답게 지휘하는 첫걸음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몸은 뇌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슬픔과 기쁨, 아픔과 회복을 반복한다. 감정은 대사와 호흡, 수면과 면역,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조율된다.
“짜증, 불안, 공포, 우울, 무기력 같은 까닭 모를 감정이 밀려와 괴로울 때, 부디 스스로를 책망하며 홀로 숨어들지 않기를 바란다. 대신 우리 몸이 끊임없이 뇌에 보내는 메시지에 가만히 귀 기울여보자. 그리고 가능하다면 밖으로 나와 누군가와 체온을 나누고, 시선을 맞추며, 같은 리듬으로 숨 쉬어 보자.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