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기후변화를 재앙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애써 모른 척하고 있는가? 어느 쪽에 있든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 기후변화는 오랫동안 우리의 귀를 자극해왔다.
정치인부터 기업가 까지, 종말론자부터 회의론자까지 모두 각자의 시나리오를 펼치며 1.5도(℃)를 '티핑 포인트' 로 삼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눈과 피부까지 자극하기 시작했다. 마의 '1.5도'는 예상보다 빠르게 도달해버렸고, 홍수·지진·산불 등의 자연재해는 더욱 잦아졌으며, 폭염은 일상이 되며 실존적 위협을 체감하게 되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기후변화가 실존하는가'가 아니라, '이미 닥친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와튼스쿨 공공경제학과 교수 박지성은 장기간의 연구를 통해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를 제시한다. 계량경제학자의 시선에서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는 것이다.
저자는 기후변화에 관한 최신의 연구들을 취합한 후, 자극적인 경고보다는 오히려 건조한 데이터세트와 통계를 통해 오늘날 기후변화 의 현실을 담대하게 드러낸다.
기후변화의 숨겨진 비용과 희망을 읽는 데이터의 힘
2025년 1월 미국 LA에서 40년 만에 최대 규모의 산불이 발생해 여의도 면적의 50배에 달하는 지역이 불타고 주민 수십만 명이 대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피해액만 해도 최소 400 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며, 전 세계가 LA에 닥친 비극에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피해 규모는 엄청났지만 산불은 3주 만에 진정되는 듯했다. 트럼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파리협약(지구 평균 기온을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1.5도 이내 상승하도록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협약)을 탈퇴했다.
이처럼 기후변화의 담론은 흔히 두 극단으로 흐른다. 한쪽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종말'을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적응할 수 있다는 맹목적인 낙관'을 내세운다.
하지만 『1도의 가격』은 이 두 가지 접근에서 벗어나 우리가 미처 생각도 못했던 기후변화의 영향을 보여준다. 대규모 산불 같은 자연재해의 피해액은 숫자로 보여지지만, 자연재해로 파생된 미묘한 피해, 그래서 우리가 위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미세한 변화가 일상을 급격히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자녀의 시험 성적이 떨어졌다면, 아이가 유난히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기후변화 탓일지도 모른다. 자연재해로 학교교육이 어려워지는 경우 이는 학생 개개인의 미래 기대수입을 현저하게 낮춘다.
이는 학위로 연결되는 교육이수율과 학업성취도로 보여지는데, 수많은 데이터를 취합하고 분석 및 연구한 결과 저자는 대규모 자연재해(1인당 500달러 이상의 물적 자본 피해)의 경우 1,520달러 가량의 인적 자본 피해가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유난히 더운 날에는 업무효율도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폭염(32.2도 이상)을 하루 더 겪을수록 미국 내 사망자가 3000명이 늘어나며, 저소득층일수록 이러한 더위 에 더 많이 노출되며 기후변화에 취약하다.
또한 29도가 넘는 날에는 선선한 날에 비해 강력범죄율 발생확률이 9퍼센트 높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사회 전반에 걸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나아가 이 책에서는 에어컨을 구입할 경제적 여력이 있는 사람(국가)과 그렇지 못한 사람(국가) 사이의 건강(국력) 격차, 폭염이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 기후 이 주 문제 등 다양한 사례들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이 책은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산출해낸 통계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개인부터 기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할 수 있는 역할까지 제시해낸다.
기후위기를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독자들은 기후변화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의사결정과 정책 수립 과정에,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문제들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경제학적 시각에서 기후위기를 분석한 이 책은 개인부터 정부까지 현실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이 책의 독자들은 결코 비관적이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인 관점에서, 우리 모두가 작은 선택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알게 될 것이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