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드라마로 읽는 우리 역사

한 편의 드라마로 읽는 우리 역사

[신간] 이호석 지음 '보이는 역사는 아주 작습니다'(도서출판 답)

지은 사람이나 건축 시기, 양식 위주로 역사를 공부하게 되면 역사는 암기해야 하는 과목이 된다. 또한 지루하기 짝이 없어 역사 공부를 기피하게 된다. 때로는 사람이 없는 역사가 되고 만다. 그래서 현재의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과거사로 여기게 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에서 벗어나 조각조각 부서진 역사를 엮어 한편의 드라마로 하나하나 만든 역사책이 나왔다. 전직 언론인 이호석이 지은 ‘보이는 역사는 아주 작습니다’(도서출판 답)라는 책이다. 저자는 4부로 나누어 유물과 사람을 스토리에 담고(1부), 국보에 얽힌 사연을 소개하고(2부), 안타깝게 떠나버린 우리 역사의 영웅들을 이야기로 풀어낸다(3부). 마지막 4부에서는 역사 속의 사건, 인물을 불러 오늘의 우리와 연결한다.
  4개로 크게 묶었지만, 글마다 하나로 완결되는 구조다. 그래서 어느 한 편의 글만을 보아도 그 역사를 아는 데 부족하지 않다. 하나하나 독자성을 가지면서 큰 테두리 안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3부에서는 이순신 장군, 홍범도 장군, 조선 최고의 침의가 된 노비 허임, 문정왕후, 천재 작곡가 윤이상, 이 다섯 사람을 ‘안타깝게 떠나버린 우리 역사의 영웅’으로 묶었다. 4개로 묶은 공통점을 염두에 두고 각각의 글을 읽으면 저자의 분류에 공감을 하게 되고, 읽는 재미가 배가 된다.

▲ 이호석 지음 '보이는 역사는 아주 작습니다.

눈 밝은 이는 이미 알아챘겠지만, 이 책은 이야기 방식을 채용했다. 전문용어로는 스토리텔링이라는 방식이다.

창덕궁 대조전에는 동쪽에 흥복헌(興福軒)이란 이름의 부속건물이 붙어 있다. 조선의 500년 왕조가 생(生)을 다한 곳이 바로 이 흥복헌이다.

1910년 8월 22일. 월요일이었던 이날 오후 순종이 주재한 조선의 마지막 어전회의에서 이완용과 박제순 등 부일 매국노들은 사실상 한일병합조약 문서에 옥새를 찍으라고 황제를 겁박했다. 순종비 순종효 황후가 치마폭에 옥새를 감추며 저항했지만 결국 1시간여 만에 순종은 이완용에게 병합에 대한 전권을 위임하는 문서에 도장을 찍었다.

나라와 왕실이 흥하고 복되기를 빌어 흥복헌이란 이름을 단 중궁전 귀퉁이 전각에서 이렇게 조선은 숨이 끊어졌다.
이런 역사를 안다면 창덕궁 흥복원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 하지만 500년을 이어온 조선 왕조의 역사가 멈춘 이 현장의 역사를 알리는 건 ‘경술국치의 치욕적인 어전회의가 열렸던 곳’이라는 초라한 안내판뿐이다.

2부로 넘어가면 신선하면서도 생생한 역사를 접하게 된다. 왜? 국보가 우리에게 각자 겪은 사연을 이야기해주기 때문이다.

백제 금동 대향로는 땅 속에 깊게 묻힌 사연을 이야기하고 우리에게 묻는다. “천 년을 묻혀있던 고통을 아시나요” 당나라 침략군이 야차처럼 수도 부여로 밀려드는 와중에 나라의 보물을 빼앗기지 않으려 급히 땅을 파서 숨기고 죽음으로 비밀을 지킨 백제 왕사의 스님들 이야기가 백제 금동 대향로에는 깃들어 있다.
이렇게 경주 장항리사지 석탑, 사도세자의 비극, 임오화변의 장소 창경궁 명정전, 삼국유사, 뒷면 글씨가 사라진 충주 고구려비의 이야기를 들고나면 이 국보가 더욱 안타깝고 사랑스러워진다. 비극의 당사자에게 직접 사연을 듣는 격이니 느낌이 같으랴!

 
4부 ‘나라의 아버지 국부(國父)를 찾습니다’에서는 세 사람을 한 자리에 소환한다. 고려 공민왕, 조선 선조,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 이 세 사람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적의 침입으로 수도를 버리고 도망간 권력자들이다. 공민왕은 홍건적의 침입으로, 선조는 일본군의 침입으로, 이승만은 50년대 언어로 ‘북한 공산집단’의 침입으로 나라의 중심된 본거지를 버렸다. 저자는 이들의 행적을 역사를 따라 살피고 누가 국부냐, 국부 자격을 묻는다. 


 그런데 읽다보면 저자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든다. 그것은 옛 일을 오늘에 비춰 해석하고 독자에게 생각할 기회를 자주 제공하기 때문이다. E, H. 카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이런 맛이 쏠쏠하여 이 책을 단숨에 읽었다.


 ‘보이는 역사는 아주 작습니다’라는 책 제목도 예사롭지 않지만, 속 제목도 문학성이 가득하다. ‘들불 같던 그 영웅들은 다 어디로 갔나?’ ‘독립 영웅이 몸 일으킨 그곳 이젠 쓸쓸한 자취만이’ ‘조선 여성의 재능은 축복 아닌 재앙이었다’. 이런 제목은 다른 역사서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책을 들고 유물유적을 찾아간다면, 역사가 살아나 내게 올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박제된 우리 역사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글. 정유철 기자 npns@naver.com   사진. 도서출판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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