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기술(How to Read a Book)』은 읽을 가치가 있는 양서(良書)를 지적(知的)이고도 적극적으로 읽기 위한 규칙을 서술한 것입니다. 모든 책이 다 이 책에서 권장하는 바와 같은 독서법을 적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엄밀히 말씀드리면 이것은 명저(名著)라고 일컬어지는 책에만 알맞는 독서법입니다. 그러한 명저는 한 번뿐 아니라 두 번 혹은 그 이상 정독(精讀)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7쪽)
책을 읽는 방법에 관한 책을 찾을 때 손에 들어온 『독서의 기술』 (모티에 J. 애들러 외 저, 민병덕 역, 범우사, 1999. 2판)의 머릿말이 눈에 잡혔다. 해마다 미국인들이 읽고 대학과 고등학교 교재로 쓰고 유럽 여러 나라에 번역되어 널리 사랑받는 독서법에 관한 책.
『독서의 기술』은 원제목 그대로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독서법에 관한 안내서이다. 독서의 기술이 왜 필요한가? 저자와 독서가의 관계는 야구 투수와 포수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저자는 비유한다. 투수는 저자고 포수는 독자다. 투수가 던지는 공은 척척 받아내려면 포수가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속구, 변화구, 마구 등 온갖 공을 받아내려면 솜씨 좋게 잡는 기술이 필요하다. "'읽는' 경우도 온갖 종류의 정보를 될 수 있는 대로 솜씨 좋게 잡을 수 있는 기술이 없으면 안 된다."(14쪽) 그 기술의 차이ㅡ같은 책을 읽고 어떤 이는 큰 수입을 올리고 어떤 이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어느 쪽이 되고 싶은가.
『독서의 기술』은 제1부 독서의 의의, 제2부 분석 독서-독서의 제3수준, 제3부 문학을 읽는 법, 제4부 독서의 최종 목표로 구성하였다. 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는 독서의 수준을 나누어 그에 맞는 독서법을 제시한다. 정독, 다독, 목차활용, 단권화 정도만 알고 있던 당시 독서의 수준을 네 단계로 나누고 그 단계에 맞는 독서법을 제시한 『독서의 기술』에 조금은 충격을 받았다. 독서법에 새로운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지는 것같았다.
그 수준에 대해 조금 더 언급해보겠다. 독서의 제1수준은 초급독서인데 읽기, 쓰기를 전혀 못하는 어린이가 초보의 읽기, 쓰기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다. 이 수준의 문제는 '이 문장은 무엇을 말하는가'하는 것이다. 이 정도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데 이 수준의 문제에 부딪힌 독자가 많다고 한다. 초기의 독서 지도가 미비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독서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곳이라면 더욱 심각하리라.
제2 수준은 '점검 독서'인데 일정한 시간 안에 할당된 분량을 읽어내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에 될 수 있는 대로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제2수준의 문제는 '이 책은 무엇에 대하여 쓴 것인가'이다. 더 풀어 설명한다면 '이 책은 어떻게 구성되어 잇는가', '어떠한 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가'하는 문제를 검토하는 거다.
독서의 제3수준은 '분석 독서'이다. 분석독서란 철저하게 읽는 것을 말한다. 독자로서 가능한 한도의 극히 고도의 독서법이다. 분석 독서는 시간 제약이 없는 경우 가장 뛰어난 완벽한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가 맞붙은 책을 완전히 자기의 피가 되고 살이 될 때까지 철저하게 읽어내는 것이다. 분석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챍을 잘 씹어서 소화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독서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책을 읽어서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하는 독서법.

마지막 가장 고도의 독서 수준-제4수준은 '신토피칼 독서'다. 신토피칼 독서는 비교 독서법이다. 신토피칼로 읽는다는 것은 한 권뿐만 아니라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몇 권의 책을 서로 관련지어서 읽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가장 복잡하고 조직적인 독서법이며 설령 평이하고 알기 쉬운 소재라 하더라도 독자에게는 상당히 노력이 필요한 독서법이다. 저자는 고등학교에서는 최저한도의 '분석 독서'를, 대학에서는 '신토피칼 독서'를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수준별 독서를 살펴보니 아무리 보아도 나는 제1수준에 해당하는 것같았다.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책을 읽으며 '무엇을 말하는지' 파악하는지 급급했고 그것도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의문이었다. 많은 책을 읽어도 머리에 남는 게 별로고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동이 내게는 오지 않는 이유가 다 있었다. 아! 이런 안타까운 일이….
책에 맞춰 독서 수준을 결정하라
''신토피칼 독서'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이 책을 읽고 또 읽기로 했다. 읽을 때마다 독서에 효과가 있는 방법을 하나씩 터득을 했고 독서의 깊이와 속도가 더해졌다. 책을 읽는 재미에 더욱 빠지게 됐다.
책을 구입하면 본문을 읽기 전에 하는 사전 작업이 많게 된 것도 『독서의 기술』에서 배운 점검 독서 영향이다. 점검독서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조직적인 골라읽기 또는 예비독서다. 이렇게 하는 것이다.
1. 표제나 서문을 볼 것. 2. 책의 구조를 알기 위해 목차를 살펴볼 것. 3. 색인을 살펴본다. 4. 커버에 씌여 있는 선전 문구를 읽는다. 5. 그 책의 논의의 요점이라고 생각되는 몇 개의 장을 잘 볼 것. 6. 군데군데 띄엄띄엄 골라서 읽어본다.
이렇게 하면 무엇에 관한 책인지, 어떤 내용인지 절반은 알 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이렇게 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서문을 읽는다거나 색인을 보는 것으로 책 내용을 대부분 파악했다-이곳에 무궁무궁한 보물이 들어있는데 보지 않으니 몰랐다. 또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논의의 요점이라고 생각되는 몇 개의 장만 읽어도 되고 군데군데 골라서 띄엄띄엄 읽어도 된다. 이런 식으로 하면 책을 읽는 데 부담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사라진 덕분이다.
점검 읽기 두 번째 방식은 표면 읽기인데 이는 난해한 책과 처음 맞붙었을 때 좌우간 통독을 하는 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마음에 새겨두고 난해한 부분은 건너뛰어 자꾸자꾸 계속해서 읽어간다. 각주, 주해, 인용문헌도 여기서는 참조하지 않는다. 사전도 찾지 말고 우선 읽는데 주력한다. 최초의 통독으로 반밖에 알지 못하더라도 다시 읽으면 훨씬 잘 알게 된다.
생각해보니 이 방법으로 대학시절 방학 때 단어집을 끝낸 적이 있다. 당시 22000단어집을 꼭 보아야 했는데 방학이 절반이 가도록 책 삼분의 일도 다 하지 못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는 사전을 찾아 발음기호와 뜻을 적고 읽어보는 식으로 하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새로운 단어에 막힐 때마다 사전을 찾아야 하니 지겹고 이 책을 언제 다 보나 절망감 같은 게 들었다. 그래서 모르는 단어는 놔두고 아는 단어만 확인하는 방법으로 바꾸니 일주일도 못 되어 책을 끝냈다. 그때 느낀 성취감이란! 영어단어책을 한 권 다 끝냈다는 만족감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런 식으로 다시 보니 모르는 단어의 뜻까지 알게 되고 책읽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나중에는 한 권을 다 보는데 1시간이면 족했다.
띄엄띄엄 읽고 싶은 곳만 골라 읽는 재미
정독하면 다 읽는데 2, 3일 걸리는 책을 점검 읽기로 한두 시간에 끝내고 2, 3일 서너 번 그렇게 읽는다면 한 번 꼼꼼하게 읽고 마는 정독에 못지 않는 효과를 가져온다. 아니 낫다고 할 수 있다. 한 번 본 것과 모두는 아니어도 중요한 곳을 두세 번 본 것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 기억하는 내용- 중요한 부분, 키워드 등이 더 많았다. 무엇보다 끝까지 읽었다는 성취감이 컸고 그것은 만족감과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독서의 기술』에서는 분석 독서를 3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제1단계 무엇에 대한 책인지 분별한다, 제2단계 내용을 해석한다, 제3단계 지식은 전달되었는가. 이 단계를 염두에 두고 책을 읽으면 독서라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고도의 지적 활동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크게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저자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숙독할 만한 책도 많이 있지만, 그보다도 오히려 점검 독서에 그쳐야 할 책이 훨씬 많으니까. 참다운 의미로 훌륭한 독서가가 되려면 각각의 책에 적합한 독서법을 발견하여 독서의 기술에 때와 경우에 따라 적절하게 분간하여 쓰는 요령을 터득해야 한다.
독서의 최종 목표-신토피컬 독서에 대해서는 저자가 요약해 놓은 것을 그대로 소개한다.
신토피칼 독서ㅡ준비 작업에서 모은 문헌을 사용하여
제1단계 : 준비 작업에서 관련서(關聯書)로 삼은 책을 점검하고, 가장 관련이 깊은 곳을 발견한다.
제2단계 :주제에 대해서, 특정한 저자에게 치우치지 않는 용어 사용 방식을 정하고 저자에게 타협을 짓게 한다.
제3단계 : 일련의 질문을하여, 어떤 저자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명제를 세운다. 이 질문에는 대부분의 저자로부터 대답을 기대할 수 있을 만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저자가 그 질문에 드러나게 대답하고 있지 않는 수도 있다.
제4단계 : 여러 가지의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을 정리하여 논점을 명확하게 한다. 서로 대립하는 저자의 논점은 반드시 확실한 형태로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다른 견해에서 대답을 추측할 수도 있다.
제5단계 :주제를 될 수 있는 대로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질문과 논점을 정리하고 논고를 분석한다. 일반적인 논점을 다루고 나서 특수한 논점으로 옮겨간다. 각 논점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명확하게 나타낼 것.(주의: 변증법적인 공평성과 객관성을 전과정을 통해서 유지하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어떤 논점에 관하여 어떤 저자의 견해를 해석할 때에 반드시 그 저자의 문장에서 원문을 인용하여 첨부하지 않으면 안된다.)(211~212쪽)
독서의 수준에서 보듯이 이 책은 초등학생에서부터 학위를 받은 연구자까지 독서가ㅡ"정보와 지식을 주로 활자에 의해서 얻는 습관이 있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독서법을 알려준다. 이 방법을 체득하여 독서를 할 때마다 적용하여야 효과가 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영법을 알려주면 수영장에 들어가 그 방법을 익혀야만 메달을 딸 수 있듯이.
『독서의 기술』에서 소개한 책 읽는 방법은 나중에 접한 독서법에 관한 다른 책에서도 자주 나왔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방법이리라. 이건 설렁설렁 읽어도 될 것, 이건 읽고 또 읽어 볼 것, 이건 이 부분에 주목하여 읽을 것, 책을 대하면 이런 판단부터 하게 된다. 『독서의 기술』을 따라 책에 맞게 읽는 방법을 고민하고 읽는 재미가 컸다. 이해력과 기억력도 덩달아 좋아져 지금도 이 책을 펴본다.
이 책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읽는 법-독서법에 대해 가르친다고 한다. 미국에서 출판된 독서의 기술에 관한 책이 얼마나 되는지 검색을 해보니 10여 권 보인다. 읽는 게ㅡhow to readㅡ중요하고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널리 인식했기 때문이리라. 두 권을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글. 정유철 선임기자 npns@naver.com
전 전남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