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뮤즈’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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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인터뷰

브레인 35호
2013년 01월 10일 (목)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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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와 제이 지Jay Z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별로 없는 것 같다. 한 명은 클래식 작곡가이고, 다른 한 명은 래퍼다. 한 명은 세상을 떠났고, 한 명은 아직 살아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즉흥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놀라운 수준의 창조력이 그것이다. 두 사람 모두 음악적 기교를 지녔지만, 당대의 다른 음악가들과 비교하여 두드러진 점은 준비 없이 해내는 능력이 엄청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바로 그 순간, 전속력으로 음악을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

즉흥적이지 않다면 진정한 음악적 재능이나 기교를 가지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야 음악가들은 새로운 멜로디나 리듬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음악가들이 그것을 어떻게 해내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존스홉킨스병원의 이비인후과 부교수이며 두부, 경부 외과의사이고, 피바디음악대학교(Peabody Conservatory of Music)의 교수인 찰스 림 박사의 연구과제는 즉흥적인 음악적 아이디어가 어떻게 창조되는지 그 과정에 대해 밝혀내는 일이다. 그는 재즈나 힙합이 갖는 창조성에 대해 흥미로운 통찰을 학계에 제공했다. 

브레인 월드(이하 브레인)  어떻게 ‘즉흥성’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게 되었나?

찰스 림(이하 림)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항상 음악에 깊이 빠져들었다. 부모님의 말씀에 따르면,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나는 일찌감치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십대가 되자 거기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다. 그 시절은 내 존재를 이해하려고 분투하는 시기였으며, 그 시기에 음악보다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없었다. 음악보다 더 심오하고 아름다우며 나를 위로해주는 건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음악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늦은 나이에 꽤 괜찮은 재즈 색소포니스트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브레인  그렇다면 음악이 당신을 과학으로 이끌었나?

  사람들은 과학과 창조성을 좀처럼 연관시키지 않지만, 실제로 둘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새로운 이론들을 실험하려면 창조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음악과 의학을 동시에 공부했으며, 듣는 전문가가 되어 그 둘을 결합해야겠다고 느꼈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의사다!

브레인  즉흥적인 창작을 할 때 뇌에서는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림  단순하게 말해, 뇌에서 자기인식과 관련된 부분이 닫힌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말할 정도로 단순하지는 않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을 촬영할 때 우리는 흔히 뇌의 어느 부분에 ‘불이 들어온다’ 혹은 ‘닫힌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그런 영역들의 활동에서 일어나는 상대적인 변화를 본 것이며,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것뿐이다.

만약 누군가가 특정한 일을 할 때 뇌의 한 부분이 정상적인 활동 범위보다 눈에 띌 만큼 활발하게 활동하거나 약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어느 부분이 닫혔다거나 불이 켜졌다고 하는 것은 쉽게 하는 표현일 뿐이고, 실제로는 그것보다 더 미묘하다.

예를 들어 즉흥적인 창조 행위를 할 때 뇌를 관찰해보면, 뇌 앞쪽부터 양옆의 넓은 부분을 차지하는 배외측전전두엽(dorsal lateral prefrontal cortex)의 활동이 둔해지는 것이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수면, 명상, 최면 등에 의한 ‘의식변성상태(altered state of consciousness)’에서도 전두엽 활동이 감소한다.

사람들은 이런 때를 두고 ‘푹 빠져 있다’거나 ‘몰입해 있다’고 묘사한다. 한마디로, 자기검열이나 자아인식이 별로 없는 상태다. 일부러 창조적이 되겠다는 목표 없이 그냥 몰입하는 과정인 것이다. 만약 재즈 음악가인데 ‘실수를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줄곧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면, 거의 모험을 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음악적인 참신함을 만들어내고 싶다면 자기억제를 줄이는 게 필수다.

물론 즉흥적인 창조 행위라고 하더라도, 낮은 수준의 창조성과 높은 수준의 창조성에는 엄격한 차이가 있다. 기타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 기타 줄을 엉망으로 만들면서 연주하는 것과 음악적으로 매우 숙련된 사람이 아름다운 즉흥연주를 하는 것은 다르다는 뜻이다.

브레인  즉흥연주를 하는 동안 뇌에서는 어떤 활성화 과정이 일어나는가? 

  연구결과에 따르면, 창조적인 즉흥연주를 할 때 감각과 운동 영역이 더 크게 활성화된다. 기술적으로는 쉬운 연주라 하더라도 즉흥연주로 그것을 해낸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연주한다고 할 때도 듣고 보고 만지고 움직여야 한다. 그것은 매우 고도로 복합적이며 정교한 행위임에 틀림없다.

브레인  즉흥연주를 할 때처럼 뇌가 작동하는 다른 순간은 없나?

  즉흥연주를 할 때와 꿈을 꾸면서 REM수면에 빠질 때 뇌의 활동은 거의 유사하다. 두 상태의 관계에 대해 엄청난 양의 연구 결과는 없지만, 두 행위가 동일선상에 있다는 점은 아주 흥미롭다. 두 상태가 유사하다는 것은 매우 논리적이다.

왜냐하면 꿈을 꿀 때 우리 의식은 즉흥연주와 마찬가지로 정해지지 않은 결과물이나 우연의 산물을 다루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창조적인 시간은 꿈을 꿀 때인데, 자신을 억제하지 않음으로써 상상력이 엄청나게 확장된다.

브레인  그렇다면 사람이 술에 취했거나 의식변성 상태일 때도, 자기억제를 하지 않기 때문에  더 창조적일 수도 있다는 말인가?

  의식변성 상태는 창조적인 행위와 동일선상에 있거나 유사한 효과를 지닌다. 그런 상태 역시 전두엽 활동이 감소하므로 마찬가지로 창조성을 발휘할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창조성을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다른 기능이 손상되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악기를 창조적으로 다루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만, 술을 마시면 운동 능력이 손상된다.

그러니 반응 속도와 음악에 따라 진행하는 다른 능력 또한 그리 좋을 리 없다. 그렇긴 하지만 최근 역사만 보더라도 질병, 정신병, 우울증과 같은 외부 요인이 예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예가 많기는 하다. 이런 사례들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남으로써 창조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한다.

브레인  창조적인 사람들은 뇌가 구조적으로 차이를 보이는가?

  창조적인 사람들의 경우 뇌의 구조와 기능이 바뀌는 것처럼 보인다. 절대음감을 지닌 음악가들은 일차 청각 피질(primary auditory cortex)이 비대칭인데 이는 매우 기이한 현상이다. 대개 뇌의 모양만으로 봐서는 어떤 재능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뇌의 피질이 두껍다든지, 특정한 부위에 있는 뉴런의 부피가 큰 경우 등이다.

하지만 설령 그런 경향성이 있기는 해도, 그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에 불과하다. “그런 뇌를 지녔기 때문에 음악가가 되었을까, 아니면 음악을 했기 때문에 뇌가 그렇게 발달했을까?” 하는 의문이나 마찬가지다. 아마도 사람들은 타고난 소질이 있을 것이고, 음악을 연습하다 보니 뇌의 변형이 왔을 것이다.

브레인  음악가들마다 즉흥연주를 할 때 뇌가 반응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나?

  프리스타일 힙합 래퍼들은 재즈 연주자가 즉흥연주를 할 때와 동일선상에서 뇌의 활동이 감지되었다. 그러나 래퍼들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차이점도 함께 발견되었다. 우리는 fMRI 실험을 통해 래퍼들에게 기본 리듬을 틀어주고는, 소설을 리듬에 맞춰 읽거나 즉흥적으로 주어지는 단어로 자유롭게 랩을 읊어보라고 했다.

창조적인 프리스타일의 즉흥 랩을 하는 동안 래퍼들의 뇌는 언어영역과 감각운동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고, 전전두엽 피질에서의 불활성화가 뚜렷이 감지됐다.


솔직히 말해 이 연구를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 프리스타일 래퍼는 다른 사람들보다 놀라울 정도로 창조적이고 흥미로운 그룹에 속한다. 그들의 태도 역시 놀랍다. 존스홉킨스병원의 과학자들에 의해 방해를 받기는커녕, 온전히 몰입하여 실험에 임했다. 래퍼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뇌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진정으로 알고 싶어 했다.  

브레인  그렇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뇌 영역에서 자기인지를 담당하는 부분을 차단함으로써  더 창조적일 수 있다는 것인가?

  비슷한 예로 아이들의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어린이들은 자기억제가 덜하며 대체로 어른들보다 더 창조적이다. 그러나 아이들도 나이가 들면서 자기억제를 하는 훈련을 받는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자기검열이나 자아인식과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기인식을 하게 되면 즉흥적인 능력을 잃고 만다.

그러나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지는 것과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실현하는 것, 더 나아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작업에 대해  매우 섬세한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가지는 것은 다르다. 아이의 창조력은 어른의 것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어떤 것에 더 예술적 가치가 있을까?

대체로 우리가 예술에서 가치를 두는 쪽은 전문 소양을 갖춘 경우이므로, 아이의 창조성은 어른의 것과 비교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 교육 시스템이 아이의 창조적인 사고 습관에 그리 중점을 두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브레인  창조성을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것뿐 아니라 음악적인 즉흥성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음악을 공부하는 것이 어떻게 감상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고 믿는다. 음악을 듣고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음악을 어떻게 듣고 이해하는지 알 수 있다면, 우리는 뇌를 진단하고 그것을 종합해 듣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에게 인공와우관 이식술(cochlear implant)을 하면 훈련을 통해 듣는 능력을 쉽게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음악은 그보다 훨씬 어렵다. 이식술을 통해 듣긴 하지만 듣는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 절대음감을 지닌 사람이라도 이식수술을 하고 나서 소리를 들으면 악기의 소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브레인  앞으로 당신은 어떤 연구를 더 해나가고 싶은가?

  우선 연구를 위한 자금 조달을 더 부지런히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연구하는 분야에 대해 흥미로워하지만, 지원금을 내놓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창조성은 매우 중요하지만 펀딩 회사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쨌든 나는 여러 분야에서 즉흥성이 발휘되는 과정을 앞으로도 꾸준히 연구하고 싶다. 이를테면 화가나 소설가, 만화가에게는 즉흥성이 어떤 과정을 통해 발현되는지 궁금하다. 또 창조성이 발휘될 때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뇌는 어떻게 다른지도 비교해보고 싶다.


이 분야에서 할 일은 너무나도 많다. 내가 평생 해왔던 음악과 창조성의 연관성에 대해 연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뚜렷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보다 집단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글·프란치스카 그린 Franziska Green | 번역·구승준 wcandy@empas.com
이 기사는 국제뇌교육협회(IBREA)가 발행하는 영문 계간지 <Brain World>와 기사 제휴를 통해 본지에 게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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