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건강보험공단 최형근 과장에게 봉사란 대단한 게 아니다.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에서 한 발만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 5년 전에 유답교육을 받은 후, 직장생활 10년차의 매너리즘을 극복하고 그냥 ‘좋은 사람’에서 ‘긍정의 힘’을 믿는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그를 만났다.
최형근 과장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국제야구심판이 되는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일하는 직장인에겐 다소 의외의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명함을 받아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인천광역시 야구연합회 에코리그 회장, 인천광역시 야구연합회 이사, 전국야구연합회 심판위원 등 명함 뒤에 새겨진 직함의 대부분이 야구와 관련된 것들이다. 그만큼 야구를 좋아한다는 말이다.
야구가 좋아서 국제야구심판의 꿈을 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봉사는 직업과 관련된 비전이다.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사람들과 좀더 많이 나누는 삶을 살고 싶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의 사회봉사를 한마디로 말하면 생활밀착형 봉사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함께하고, 자신이 하는 일과 연계시키고, 취미를 함께 나누는 봉사이기 때문이다.
일단 만성질환관리사업이 그렇다. 2006년 7월에 발족한 이 사업은 시 예산 9억 원을 투입해 인천시, 건강보험공단, 가천의과대학 등 세 기관이 협약해 인천 지역의 고혈압, 당뇨 환자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사업이다. 고혈압, 당뇨 같은 성인병은 당장은 중증이 아니지만, 중풍이나 심장 질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예방 차원의 관리가 특히 중요하다.
최형근 과장은 고혈압, 당뇨 환자들의 건강관리 업무를 담당하면서 이들을 좀더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을 느껴 이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올해로 5년째를 맞은 이 사업은 현재 인천 지역 2만 5천여 명의 고혈압, 당뇨 환자들을 집중 관리하는 등 본 궤도에 올랐다.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업을 일개 공단 직원이 추진했다고 하니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최 과장은 “과정을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요. 처음에 시 담당 직원에게 여러 번 제안을 했지만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벌이냐며 면박만 당했어요. 그러다가 가천의과대학 예방의학과 임준 교수님과 뜻이 맞아서 함께 뼈대를 만들어 시를 설득할 수 있었죠. 이 일을 추진하면서 안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인천 시민을 위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거든요. 일이 성사되기까지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 사회복지보건연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참의료실천단 봉사활동에도 참가한다. 참의료실천단에서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진료활동을 벌일 때는 꼭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장애인들과 함께 승봉도에 놀러 갔을 때도 아이들과 동행했다.
아이들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 없이 함께 어울리고 자연스럽게 나누는 삶을 배울 수 있기를 바라서다. 그의 동생은 매주 화요일 장애인 가정에 빵 배달을 다니고, 휴대폰 판매점을 하는 그의 아내는 휴대폰 판매수익 중 일부(1인당 5천 원)를 구입자 명의로 장애인복지관에 몇 년째 기부하고 있다. 말하자면 가족들이 전부 생활 속에서 사회봉사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내 안에서 찾은 답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딴 것도 주먹구구식의 봉사보다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싶어서다. 그래서 그는 봉사활동을 할 때 상대방이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들 입장에서 고민한다. 이종일 씨에게 직업 재활의지를 심어준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대구에서 사업을 하다가 사업이 부도 나서 술로 세월을 보내던 이종일 씨는 설상가상으로 오른쪽 다리를 잃는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삶의 의지마저 잃어버렸다. 야구연합회 이사이기도 한 최형근 과장은 이종일 씨가 야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야구 기록을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2009년에 이론과 실기 교육을 받은 이씨는 작년 3월에 야구기록원으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장애인들에게는 일회성 봉사보다 직업 재활을 돕는 것이 훨씬 가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남부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1급장애인 오건식 씨에게 장애인의 날 기념 시구 기회를 준 것도 기억에 남는 일이다. ‘SK와이번스’ 경기 때 불편한 몸을 이끌고 1만 명이 넘는 관중 앞에서 자세를 다잡고 시구를 하던 오건식 씨의 감격스러운 표정을 그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최 과장이 처음부터 사회봉사에 열성이었던 것은 아니다. 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술자리라면 아내에게 거짓말을 해서라도 절대 빠지지 않고, 사람 좋다는 평가는 받았을지언정 근무평가는 늘 하위권을 맴돌던 그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5년 전에 유답교육을 받고나서다.
“교육을 받으면서 천 톤짜리 해머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유답’이라는 것은 내 안에 답이 있다는 말이잖아요. 제가 갖고 있는 물음의 답을 나 자신이 갖고 있다는 거죠. 내가 진지하게 고민할 때 답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짧은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어요.
그리고 내게 필요한 답은 ‘긍정’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혼자만의 긍정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긍정의 힘을 이끌어내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나태한 삶을 접고 그저 ‘성격 좋은’ 사람에서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때로 좋은 의도를 갖고 진행한 일이 오해를 받을 때는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지만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앙드레 말로의 글귀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의 ‘절대 긍정’은 오랫동안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글·전채연 ccyy74@naver.com | 사진·김성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