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도서출판 재미마주 대표 이호백씨

어린이 도서출판 재미마주 대표 이호백씨

우리 창작 그림책이 외국 시장에서 베스트 셀러

뇌2003년12월호
2013년 01월 09일 (수)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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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에 고작 한 두 권의 책을 만들더라도 외국 그림책은 절대 만들지 않는다.’

이는 어린이 책 전문 출판사 ‘재미마주’ 대표 이호백 씨의 남다른 뚝심이다. 이런 신조를 바탕으로 그간 국내 회화 작가들을 발굴하여 공들여 출간해 온 재미마주의 그림책들이 해외 시장에서까지 인정을 받고 있다.

지난 11월 이호백 씨 본인의 그림책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가 뉴욕타임스 ‘올해의 우수그림책’에 선정된 것. 또 작년 뉴욕타임스 우수그림책으로 선정된 〈노란 우산>역시 창작은 류재수 씨가 했지만 이를 책으로 기획 출간한 것은 이 씨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외국 그림책에 견주어 그 양부터가 너무 왜소해 보이는 우리 그림책의 역사를 풍성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그의 그림책 열애담.

사무실 벽이 온통 토끼 일러스트로 도배되어 있다. 이 공간은 도서출판 재미마주의 사장실이면서 이호백 씨의 작업실이기도 하다. 생기발랄한 토끼 한 마리가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은 그림 나라에 겨울 볕이 창으로 흘러 들어와 너울거리는 오후, 그와 마주앉았다.

우선 그림 속 토끼 이야기부터. 토끼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있는 건가? 뉴욕타임스 우수 그림책에 선정된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의 주인공 또한 토끼이다. 

“실제 집에서 토끼를 길러요. 일상생활 속에서 소재를 가져 온 거죠.”

하루는 가족들과 어머니 집에 다녀와 보니 방안 곳곳에 토끼 똥이 떨어져 있더란다. 거기에서 줄거리를 착안했다고. 그러니까 ‘도대체 그 동안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하는 상상. 가족들이 외출한 뒤 혼자서 집을 보던 토끼가 슬그머니 집안으로 들어온다. 토끼는 마치 사람처럼 비디오를 보고, 화장을 하고, 막내의 한복도 입어본다. 그리고는 ‘시치미 뚝 떼고’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날 아침, 집안 구석구석에 흩어진 토끼똥을 본 식구들은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어리둥절할 뿐이다. 목탄과 수채물감을 쓴 그림에 토끼의 미묘한 표정과 동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토끼 이야기에 극찬하는 해외 서평들
50년 전통의 권위를 지닌 뉴욕타임스 ‘올해의 우수그림책’은 매년 미국 전역에서 영어로 출간된 그림책 중 최고의 책 10권을 선정해 발표하는 행사이다. 모리스 센닥, 레오 리오니, 크리스 반 알스버그 등 여러 유명 작가들의 그림책들이 선정되어 수상했다.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은 “부드럽고 투명한 회색조의 그림과 컬러 색조가 대비를 이루며 진행되는 이 책은 그런 재미난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음직하게 토끼의 모험을 생생히 그렸다”고 평했고, 북리스트 스테어드 리뷰는 ”토끼가 움직일 때마다 떨어뜨려 놓은 예쁜 똥으로 아이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잡아끄는 이 한국 그림책에는 미묘함과 지적인 사고가 모두 녹아들어가 있다. 정말 귀여운 책이다!”라고 평했다. 

이호백 씨는 1997년 이래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볼로냐 아동도서박람회에 참여해 우리 창작그림책을 외국인들에게 선보여 왔다. 그리하여 지난 3월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가 미국 케인밀러출판사에 의해 출간 되었으며, 이후 여러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미국 전역에 소개되었다. 또한 지난 9월에는 일본 헤본샤에서도 출간되었으며, 프랑스의 파스텔출판사에서도 판권 계약이 성사되어 내년 9월 출간 예정에 있다.

그림책 인생을 열어 준 ‘글 없는 그림책’
이호백 씨는 서울대 미대 3학년 때 인생의 전환을 가져오는 한 권의 그림책을 만난다. 그는 20년이 훨씬 넘은 이 그림책을 아직도 소중하게 소장하고 있다며 기자에게 꺼내 보였다.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글이 없는 그림책을 발견했어요. 찰스 키핑의 ‘Inter-City’였죠. 나중에 알고 보니 ‘Inter-City’는 런던에서 옥스퍼드를 통행하는 기차 이름이더군요. 전철 안에서 바라보이는 창밖 풍경을 묘사한 이 그림책에는 런던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죠.”

당시는 그 책이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라는 것도, 찰스 키핑이라는 화가가 영국에서 유명한 그림책 작가라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 대학 졸업 후 그림책은 잠시 잊고,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라 고대 신문방송학과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했다. 1989년에 결혼하여 아내와 함께 프랑스에 유학, 커뮤니케이션과 이미지 인스티튜트를 수학하는데 그때 다시 그림책을 만나게 되었다고.

“아들 담이가 프랑스에서 태어났죠. 담이 돌때 프랑스 친구들이 그림책을 선물해 주더군요. 우리가 돌반지를 선물하듯 그림책 선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토죠. 그 때 알았어요. 제가 감동한 찰스 키핑의 그림책이 특별한 장르가 아닌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걸 말이죠.”

그는 유학 시절 내내 어린이 도서관과 책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꼬마 아이들과 섞여 그렇게 그림책의 매력에 푹 빠져 살았던 것이 계기가 되어 1994년에는 어린이 책 전문 출판사인 재미마주를 설립한다. 재미마주는 ‘재미를 마주한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불어로 ‘J’aimimage 나는 이미지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우리 그림책 작가 발굴하기

“서구에 그림책이 발달하게 된 계기는 산업혁명과 함께 인쇄업이 발달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화가들은 대중들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인쇄 출판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그림만으로도 읽어낼 수 있는 그림책은 미술 문화사에서 중요한 갈래가 됩니다. 우리나라 화가들에게는 아직도 그림책은 유치한 것, 아이들 위주로 보는 책이라는 인식이 강하죠. 더 많은 회화작가들과 디자이너들이 그림책에 도전해야 그림책 문화가 바뀔 겁니다.”

재미마주에서 기획한 그림책들에는 핏줄 속에 위대한 회화 전통을 이어 받고 있는 우리 작가들의 가능성을 힘닿는 데까지 퍼 올리고자 하는 뜻이 잘 담겨 있다. 서양 일러스트레이션에 길들여진 우리 아이들에게 그에 못지않은 조형미를 간직한 한국의 그림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기획한 민화그림책 시리즈 〈토끼의 소원>은 우리 민화 열 네 작품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낸 그림책. 각각의 그림 속에는 장수, 건강, 가족의 화목 등 민중의 소원을 담은 선명한 상징물로서 동물들이 등장한다. 미술평론가이자 가회박물관 관장인 윤열수 씨의 장인 정신으로 결실을 맺은 이 그림들은 해외 도서박람회에서 외국인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또 〈재미내골>은 연변에 실재하는 조선족 마을에 전래되는 설화에 쉬운 판소리가 곁들인 이색적인 그림책이다. 우리시대 출판미술계의 명실공히 초기세대인 홍성찬 선생이 그림을 그리고 소리꾼 김수미 씨의 소리가 CD로 첨부되어 있다. 이 책 또한 영어, 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로 번역되어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2002 최우수 그림책으로 선정된 〈노란 우산〉은 그림과 음악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구성의 탁월함이 돋보이는 책. 비 오는 날 우산 쓴 아이들이 하나 둘 집에서 나와 다리를 건너고 놀이터를 지나 학교로 가는 모습을 그렸는데, 빗줄기 하나 그리지 않고 글도 없이 우산만으로 비 오는 아침의 분위기를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딸린 CD에는 이 책을 위해 작곡한 피아노 독주곡이 있다. 음악을 들으며 한 장 한 장 음미하면서 볼 책이다.  

그림책 권하는 어른, 아이와 교감하는 어른 
이호백 씨는 독서운동단체의 부모님과 선생님들 대상으로 강연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는데, 강연 때 마다 늘 가장 강조하는 이야기가 있단다.

“부모 먼저 그림책의 매력을 느낄 때, 아이들에게 진정 권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유명하다니까, 무슨 상을 받았다니까가 사 주는 것 말고요. 부모가 먼저 감동해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는 게 중요하죠.”

그러고 보면 밝은 색상과 따뜻한 느낌, 재미있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의 그림책은 밝고 고운 햇살을 참 많이 닮았다. 추운 겨울, 볕 잘 드는 곳에서 잠시 눈을 감고 그 볕이 온 몸을 간지르며 몸 속으로 파고드는 충만한 느낌. 이호백 씨는 그 충만한 느낌을 소년 시절의 추억 속에서 길어 올리곤 한다.

“어렸을 적 넓은 마당에 등나무가 있는 집에서 살았어요. 그 등나무를 배경으로 친구들, 형제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마치 실제 겪었는지 아니면 상상인지 가물가물한 이미지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 아련한 이미지들을 그림책으로 풀어놓을 참이다.


글│곽문주 joojoo@powerbrain.co.kr   사진│김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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