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에 대처하는 뇌의 자세

알츠하이머에 대처하는 뇌의 자세

우리 존재의 뇌과학

브레인 115호
2026년 04월 29일 (수)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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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게티이미지]


연말 모임의 주제는 건강이었다. 나보다 조금 더 오래 살아 나보다 조금 더 삐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나온 선배들이 앞다퉈 건강 정보를 풀어놓았다. 눈에는 뭐가 좋으며 뇌에는 뭐가 좋다더라, 관절에는 뭘 먹어야 하고 갱년기 증상은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상비하는 약통까지 내보이며 조언해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컨디션이 예전 같지 않았다. 갱년기 증상이 하나둘 드러나더니 눈도 침침해지고 기억력도 가물가물해졌다.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고 말문이 자주 막히는 게 아무래도 치매 초기 증상 같다고 했더니, 한 선배가 치매는 아니고 건망증일 거라고 했다. 단어가 아예 떠오르지 않으면 치매인데, 한참 후에라도 떠오른다면 건망증이라는 것이다. 

뇌 속 풍경을 들여다보다 

요양 보호사로 일하면서 알츠하이머 증상이 있는 노 수녀님을 돌보고 있다는 그 선배는 기억이 사라지는 데도 단계가 있다고 말했다. 지남력指南力, 그러니까 지금이 몇 시고 오늘이 며칠인지 가늠할 수 있는 시간 감각이 먼저 사라지고 위치와 방향 감각이 흐려지다가 결국에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최근에 대만의 언어학자가 쓴 《아주 느린 작별》이라는 에세이를 인상 깊게 읽었다. 40여 년의 결혼생활 동안 든든한 버팀목이자 말벗이던 남편이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고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 책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점점 잊어 가는 남편을 돌보면서 겪게 되는 상실감과 참담함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내 인지 기능도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물론 아직까지 일상생활에 균열을 일으킬 만큼 심각한 건 아니다. 그래도 내 뇌 속 풍경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니까,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기억과 언어 사이에 생긴 작은 틈들 

내 뇌에서 가장 고장이 잦은 부위를 꼽으라면 아마 해마일 것이다. 해마는 잘 알다시피 단기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다. 감각 기관을 통해 입력된 정보는 해마에서 먼저 처리된 다음 장기 기억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요즘 나는 점심에 뭘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몇 발짝 걷는 사이에 뭘 하려고 했는지 까먹는다. 치매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단기 기억 상실이 온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내 해마에 문제가 있긴 한 것 같다. 

기억이 깜박깜박하는 것과 더불어 언어 문제도 예사롭지 않다. 알츠하이머병에서 언어 기능의 이상은 기억 문제와 함께 일찌감치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맞은 단어를 잘 떠올리지 못하고, 엉뚱한 단어를 말하고도 자기가 틀렸는지 모른다든지, 사용하는 어휘 수가 줄고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이 모두 언어 문제에 포함된다. 

내 경우에는 고유 명사와 단어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합창단에 입단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단원들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한다. 관심이 없어서라기보다 들어도 금세 까먹는다. 방금 들은 멜로디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가사를 외우는 데도 전보다 오래 걸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화할 때도 단어나 문장을 자주 놓친다. 무음 모드가 작동된 것처럼 상대방이 하는 말이 음소거될 때가 종종 있다. 마치 그와 나 사이에 투명한 유리막이 가로 놓여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는 인상을 찡그리며 “뭐라고?”라고 되묻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나중에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리액션으로 상황을 모면한다(이 ‘모면한다’라는 단어를 떠올린 지금도 퓨즈가 나간 듯 뇌 속에서 단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상황을 넘어간다’라고 고쳐 쓰려다가 간신히 ‘외면한다’라는 말을 떠올리고, 그 단어와 비슷한 카테고리에서 ‘모면한다’를 다시 꺼내 쓸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증상들은 일시적인 건망증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잔뜩 흐렸다가 금세 맑아지는 여름 날씨처럼, 뇌 속 풍경이 맑게 갠 날에는 아무 불편 없이 꺼내 쓸 수 있으니까. 하지만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빈도수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사진=게티이미지]

방향 감각을 상실한 골목길에서 

시각-공간 지각 능력의 문제도 종종 포착된다. 시각-공간 지각의 손상은 기억과 언어 문제가 시작되고 나서 발생하지만, 때로는 첫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부위가 손상되면 물건을 엉뚱한 데 두고 찾지 못하거나 길을 잃고, 물건이나 사람의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아주 느린 작별》에서는 평생을 앞서 걷던 남편이 어느 날 “당신이 앞장서!”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뇌과학적으로 분석하면, 남편의 해마 뒷부분에 있는 신경세포들이 손상돼 더 이상 방향 식별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물론 공간 지각 능력은 해마 뒷부분만이 아니라 뇌의 여러 영역이 동시에 협응하는 뇌 기능이다. 주로 두정엽을 중심으로 후두엽과 해마가 돕는다). 어쨌든 남편은 체면 때문에 “내 뇌가 방향 식별을 하지 못해서 길을 잃어버렸어”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저 “당신이 앞장서”라고 한다.  

문득 내 공간 지각 능력에 의심을 품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작년 봄,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체육관을 오가며 요가 수업을 들을 때였는데, 매번 체육관에서 대로변까지 나오는 동안 골목길에서 몇 번이나 멈춰서 방향을 가늠해야 했다.

날이 어두웠고, 체육관이 골목 안쪽으로 한참 들어가 있는 데다, 구도심의 골목길이 잘 구획되어 있지 않아 길을 찾기가 어렵기는 했다. 그래도 평소 공간 지각 능력이 꽤 좋다고 자부해왔던 터라 엉뚱한 대로변으로 나올 때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뉴런의 운명은 다른 뉴런들과의 의사소통에 달려 있고 뉴런의 생명은 정보의 입력과 전달 과정에서 전기적, 화학적 자극에 의해 유지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면 내 해마에서 단어를 기억하고 연상하는 뉴런들, 방향을 인지하고 위치를 가늠하는 뉴런들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고 접촉 불량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다른 뉴런들과 효과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뉴런은 퇴화할 수밖에 없다. 퇴화해 기능을 잃은 뉴런은 결국 사멸의 길을 걷는다. 과연 내 뇌는 지금 괜찮은 걸까? 

알츠하이머 진단의 두 가지 근거 

알츠하이머병은 두뇌의 바깥쪽에 있는 신경세포가 사망하면서 발병하는 퇴행성 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뇌 기능의 상실은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의 변형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까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들러붙어 뇌세포에 유해한 영향을 주는 플라크가 형성되고, 뇌세포의 골격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타우 단백질이 꼬여 변형이 일어나는 것이 알츠하이머병 진단의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은 1906년에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박사가 처음 발견한 것으로, 비교적 최근까지도 죽은 환자의 뇌를 열어보지 않고는 뇌에서 플라크와 신경 섬유 뭉치를 들여다볼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요즘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할 수 있다. 생체표지자 검사와 뇌 척수액 검사를 통해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축적 상태와 비정상적인 타우 단백질이 관찰되는지 확인할 수 있고, 비교적 간단한 혈액 검사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알츠하이머병의 가능성을 진단할 수 있다. 

뇌 손상은 증상이 나타나기 20년 전부터 시작된다 

문제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 제일 먼저 발견되는 플라크가 치매 관련 인지 증상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생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인지 손상은 대개 70대 이후에 나타나고, 조기 치매의 경우 50대 이전에도 드러난다. 이를 감안하면 그보다 10년에서 20년 전, 그러니까 30~50대에 이미 뇌세포의 손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치매에 걸린 뇌과학자》를 쓴 대니얼 깁스는 치매 발병 위험이 높은 사람은 마흔 살부터 뇌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치매를 진료하는 신경과 의사이면서 동시에 알츠하이머병 환자이기도 했던 그는 가족력과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자신의 병명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었다.

그는 유산소 운동과 지중해식 식단, 다양한 지적 활동과 취미 생활 등을 병행하면서 아밀로이드 축적 속도와 인지 손상을 일정 정도 늦출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왔다. 무엇보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에게는 잠이 보약이라고 한다. 생쥐와 사람 연구 모두에서 충분한 수면은 알츠하이머병 초기 단계에 아밀로이드 축적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다만 알츠하이머병의 경우 중등도를 넘어가면 사실상 손 쓸 방도가 없게 된다. 실제로 영국에서 중등도 치매 환자에게 운동이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는데, 알츠하이머 중등도나 후기 단계에는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도 별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에는 성인의 해마에서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성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지만(스웨덴 카롤린스카의과대학 요나스 프리센 교수팀, 2025) 이미 파괴된 신경세포를 재생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 [사진=게티이미지]

속도를 늦추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죽기 전까지 글을 쓰고 교정지를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밀로이드로 인한 플라크와 타우 단백질 뭉치가 내 뇌를 잠식한다면? 그 결과로 뇌세포가 사멸하고 뇌가 점차 쪼그라든다면? 뇌세포가 죽어감에 따라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기억들이 하나둘 휘발되고, 내가 나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의 파편들이 파도에 휩쓸리듯 쓸려갈 것이다.

어휘 능력이 점점 빈약해지고 적확한 단어를 찾을 수 없는데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글이 나를 대변해줄 수 있을까? 결국엔 서술 기억만이 아니라 작업 기억까지 사라질 텐데, 노트북을 켜서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별수 없다. 올해는 식단과 운동, 지적인 활동에 더 충실할 수밖에. 외모를 가꾸고 튼튼한 몸을 만들고 더 많은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사는 동안은 민폐 끼치지 않고 살고 싶어서, 내가 나인 것을 인지한 상태로 생을 마감하고 싶어서 삶의 패턴을 바꿔야 할 때가 비로소 왔을 뿐이다. 

글_전채연 
출판 기획자이자 작가. 쓴 책으로 《스님의 호흡법》, 《우리 뇌는 그렇지 않아》, 《휴맥스, 다시 벤처 정신을 말하다》, 《박지성처럼 꿈꿔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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