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하게 인정하고 호기롭게 유치해지는 순간에 얻는 충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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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적 순간

브레인 110호
2025년 06월 19일 (목)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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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시에 맞닥뜨리는 명상 모멘텀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불시에 맞닥뜨리는 명상 모멘텀

나의 작은 카오스인 10평 남짓한 원룸을 빠져나와 일터로 향한다. 고립계의 엔탈피Enthalpy(결합 및 상호작용에 저장된 에너지를 나타내는 시스템의 총 열량)는 왜 항상 증가하는가, 나는 왜 원룸을 나와 출근해야만 하는가 같은 존재론적 질문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며 엔탈피의 감소를 꿈꾸는 평범한 출근길. 차에 타자마자 흘러나오는 라디오 속 클래식 선율이 나의 모닝 텐션에 비해 너무 비장하다. 번뜩! 명상 모멘텀. 

어린이 보호구역의 속도위반 범칙금은 10만 원. 내 월급은 국가와 나누어 갖기엔 더없이 겸손한 액수. 30킬로미터 속도위반 단속 범위로 접어들기 10미터 전,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하는 조신한 발동작. 순간 느껴지는 발목 비골하 관절의 저릿한 통증. 번뜩! 명상 모멘텀. 

좌회전을 하려는 찰나, 끼어들어 온 차량에 좌회전 선수를 빼앗기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1년 같은 1분. 노르아드레날린 수치가 상승하고 심장이 빠르게 뛰며 앞차는 어디까지 갔을지 궁금해하는 찰나, 번뜩! 명상 모멘텀. 

약 10번의 명상 모멘텀으로 476.2kg.m/s(50kg의 물체가 4km의 거리를 7분간 이동) 운동량을 모두 소진하며 정지한 곳은 나의 코스모스인 사무실 공간. 오늘 하루, 나는 또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명상 모멘텀을 마주하게 될 것인가? 상상하는 것만으로 점심시간이 빨리 왔으면 싶은 직장인의 출근 동시, 퇴근 바람 모멘트. 


명상 모멘텀이란 ‘알아차림’의 순간이자 ‘선택할 수 있는’ 순간

그런데 명상 모멘텀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눈치챈 분도 계시겠지만, 그것은 ‘알아차림’의 순간이다. 좌회전 선수를 빼앗기고 적신호에 덩그러니 남겨진 그 순간! 차에 실려 움직여지고 있는 운전자의 관성이 급정지하고, 강렬한 분노가 빛의 속도로 튀어나온다. 덕분에 난 ‘감정이 일어남’을 강력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일상의 무의식적 행함이 멈추고 알아차리는 의식이 번뜩! 하고 깨어났으니, 이다음의 행동은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겠다. 명상 모멘텀이란 결국 ‘알아차림’의 순간이자 ‘선택할 수 있는’ 모든 순간이다.

선택지1. 다음 신호에 100km/h로 따라붙어 끼어들기 차량을 추월한 뒤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삐닥하게 차를 세우는 것이다. 운전석 문을 열고 내리며 (이제 가장 중요한 때다!)차문을 ‘쾅’하고 닫고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힌 뒤 뒷목에 손을 얹는다.(차가 충돌한 것도 아닌데…왜 뒷목을 잡는 거지…? 이런 이성적 사고는 지금 상황에선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위기 조성이 핵심이다.) 피로한 얼굴로 천천히 끼어들기 차량으로 다가가, 까맣게 썬팅 된 그의 창문을 천천히… 노크하는 것이다. 똑똑똑… 선택지2. I and C 라는 알파벳을 상기하며 이를 악무는 것이다... 임플란트의 뿌리가 선명하게 느껴질 때까지… 라디오에서 나오는 비발디의 사계 겨울 중 3악장에 맞춰 선택지 1의 상황을 Agitato-격정적으로 상상해도 좋겠다. 선택지3. 멈춘 김에 척추를 바로 세우고 케겔운동에 집중하며 왠지 잘 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만끽해볼 수도 있다. 뭐가 좋은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선택할 수 있다’ 는 것이다. 
 

오늘의 가장 빛나는 순간

당신은 절망하며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분노가 일어나는 순간, 분노의 거대한 습관 속으로 속수무책 빨려들어가는데 어떻게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냐.” 맞다. 그런 당신을 위해서 당신의 분노가 일상의 명상 모멘텀이 될 수 있게 만드는 명상가의 특급 비기를 하나 알려줄까 한다. 

그 전에 한 가지 질문. 당신은 여기까지의 글을 참고했을 때 ‘나(필자)의 모습’이 어떠할 것이라 상상하는가? 혹시 이런 모습은 아닌가? 화가 난 순간, f(1)=명상 모멘텀을 외친 다음, f(2)=명료한 의식 속에서, f(3)=선한 선택을 하는 f(1)+f(2)+f(3)=아름다운 명상가의 모습. 안타깝지만 오답이다. 오늘 오후, 사무실에서 맞이한 내 명상 모멘텀의 실상은 이러하다.

내 뒷자리의 선배를 소개하자면 일을 잘한다. 많이 잘한다. 그러니 자비가 없는 것일까? 업무가 틀어지면(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난 듯 날카로운 에너지를 발산하며 원인을 분석하는(반성 의자에 앉아 고개를 절로 숙이게 하는) 그녀의 성정이 나는 좀 버겁다. 

오늘은 좀 심하다. 휴, 지친다. 싫다. 진짜 왕 밉다. 번뜩! 감정이 일어남을 알아차린다. 명상 모멘텀. 성난 얼굴로 돌아봤는데 그녀가 없다. 그녀 자리로 걸어간다. 책상 위에 뜯어 놓은 과자 한 봉지가 눈에 들어온다. 선택의 순간이다. 과자 하나를 집어 든다. 입으로 가져간다. 아그작. 나의 마음을 바라본다.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두 개째 집어 든다. 아그작아그작. 맑은 소리 고운 소리. 좀 더 속도를 붙여 세 개째. 미움으로 막혔던 가슴이 통쾌함으로 뚫리기 시작한다. 네 개째. 심지어 맛있다.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다섯 개째? 걸릴 것 같다. 과자를 내려놓는다. ‘그래, 복수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내 호기로운 선택에 킥킥대며 자리로 돌아오는 평범한 사무실 풍경. 평화로운 나의 명상 모멘텀.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선배에게 얼굴을 내밀며 이야기한다. “과자 좀 먹었어요.” 미움은 사라졌다. 왜? 미움을 인정해 줬으니까. 유치찬란한 나의 미움과 그보다 더 찬란(감정 따위가 매우 즐겁고 밝다)하게 한판 놀아주고 나면, 그 마음은 마치 치기 어린 청춘의 기억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것처럼 오늘의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기억되고 마는 것이다.  
 

알아차렸으면 인정하자

미움이라는 거대한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그 미움을 인정해야 한다. 당신 또한 당신의 생활에서 알아차렸을 것이다. 누군가를 향한 미움을, 분노를, 원망을. 하지만 그것이 명상 모멘텀이 되지 못한 이유는 ‘이것’ 하나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알아차린 이후의 태도. 

알아차린 당신은 인정이 아닌 부정의 태도를 취했을 것이다. 유치하기 싫어서. 나이 든 김에 어른인 척. 미움, 분노, 원망이라는 작용이 일어났는데 그에 대한 반작용이 똑같이 강하니 서로의 힘이 상쇄되며 새로운 방향의 선택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항상 작용하는 벡터인 ‘습관의 힘’이 당신을 이끌 수밖에. 

알아차렸으면 인정하라. 무엇을? 알아차린 자신의 마음을. 마음을 인정하니, 하고 싶은 선택이 유치한가? 그럼 유치해져라. 혹 유치해지는 것이 두려운가? 그렇다면 유치해지지 못하는 두려움도 인정하라. 자신의 속 좁은 미움을 인정하고 정직하게 유치함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스스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괜찮아. 다 받아줄 수 있어. 아무 문제 없어.” 캬! 이것이 바로 ‘으른’ 아닌가? ‘그 사람을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내가 너를 알아(드라마 ‘나의 아저씨’ 대사).’ 그래, 내가 나를 안다. ‘나의 으르신’.

누군가 나에게 오늘 하루 중 가장 만족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언제인지 묻는다면, 당연히 선배의 과자를 훔쳐먹던 때라고 답할 것이다. 나를 위해 4개의 과자를 씹어주던 나는 얼마나 멋이 있는가! 그 얼마나 으른스러운가! 

생의 모든 순간에 함께 해줄 이 으르신이 있기에 오늘도 우리는 부딪히며 살아갈 용기를 내는 것이 아닐까? 삶의 엔탈피가 증가하는 순간 거침없이 외치는 거다. 명상 모멘텀! 용감하게 인정하고 호기롭게 유치해질 때, 고립계가 열린계로 진입하며 당신은 누리게 될 것이다. 새로운 선택이 주는 일상의 찬란한 충만을.


글_권나라
건축학을 전공하고, 극단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브레인트레이너로서 유튜브에서 명상 채널을 운영하며, 명상 상품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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