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칼럼]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장영주의 파워브레인


 여름 숲속에는 별무리들이 반갑게 피어난다. 오각형의 보라색과 흰 꽃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찬란하다. 왠지 친숙하면서도 신령스러운 느낌의 도라지꽃. 올해도 어김없이 그냥 피어나시니 반가울 뿐이다. 

도라지는 초롱꽃과의 여러 해살이 풀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본, 중국, 만주와 동부 시베리아의 풍요롭고 너른 땅에 오래도록 번식하여 왔다. 도라지는 뿌리가 단단하고 곧아서 '길경(桔梗)'이라고도 불리는 귀한 약재이기도 하다. 

동의보감은 기관지 건강, 가래 제거, 해열, 항염 작용, 소화 촉진, 면역력 강화에 탁월하다고 밝힌다. 도라지의 철분성분은 빈혈에 좋고 인삼에 버금갈 정도로 다량의 사포닌이 함유되어 항암 효과도 크다.

 몸의 건강에 좋은 약재만이 아니라 한민족의 애환이 실린 민요 중에 ‘아리랑’에 버금가는 ‘도라지’타령(打令)이 전해오니 더욱 반갑다. 

타령이란 ‘맨 날 밥 타령, 옷 타령한다,’처럼 간절한 생각을 말이나 소리로 되풀이하는 짓이다. 노래로는 도드리장단에 느긋하게 부르는 서도백성들의 민요이다. 과연 도라지타령은 황해도에서 퍼져 나온 겨레의 노래이다.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 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만 스리 살살 다 넘는다./ (후렴) 에에헤야 에에헤야 에헤야 에야라 난다 지화자 좋다. 네가 내 간장을 스리 살살 다 녹인다.“ 

 이처럼 도라지타령이 겨레의 가슴속에 영원히 자리한 이유는 ‘도라지’란 말뜻이 결코 범상치 않기 때문이다. 얼핏 들으면 남녀 간의 사랑노래 같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처럼 시공을 초월하여 겨레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올 수는 없다. 

도라지타령이 도라지의 강인한 생명력만큼 질기게 살아남아 온 것은 가락 속에 한민족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비밀코드가 숨겨있기 때문이다. 

 ‘도라지’는 ‘도(道)를 알아야지’란 뜻이 응축된 말이다. 도를 깨우쳐 완성을 이루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이 심심산천 마음자리 속에 넘쳐난다는 속 깊은 뜻이다. 

백도라지의 흰 ‘백(白)’자는 사람 인(人)자와 뫼산(山)자를 옆으로 돌려 합성한 글자로 파자하면 신선 ‘선(仙)’자가 된다. 가사 중의 ‘백(白)자’를 ‘선(仙)자’로 바꾸면 ‘도라지’라는 민요의 비밀 문이 열리면서 겨레문화의 거대하고 심오한 지평이 활짝 펼쳐진다.  

 “도를 알아야지, 도를 알아야지, 너와 나와 모두를 살리는 도를 알아야지. 도중에는 선도가 최고라지. 마음속 깊고 깊은 곳에는 아름다운 선경이 있듯이 뇌 속 깊은 곳에 우주의 본성이 내려와 있다네. 

선도를 통하여 한, 두 번만이라도 우주의 본성을 느껴보자. 마음 바구니에 깨달음의 행복이 철철철 넘쳐난다네.“ 뇌는 우리의 두 주먹을 합친 것 만한 크기이다. 뇌는 숨쉬고, 느끼고, 생각하고, 움직여 살아가는 모든 생명활동, 곧 생활(生活)이 유지되게 하는 곳이며, 우주의 큰 생명력이 나에게로 와 깃든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뇌야말로 ‘모든 것의 모든 것’이다. 

겨레의 거룩한 경전인 삼일신고에는 “자성구자하면 강재이뇌시리라(自性求子 降在爾腦)“라고 적시되어 있다. ”우주의 절대적 생명력을 밖이 아니라 너의 성품 안에서 구하라. 그러면 너의 뇌 안에 이미 깃들어 있다.” 라고 ‘도(道, TAO)’의 정체를 가르쳐 주고 계신다. 조금도 시들지 않고 세계를 풍미하는 k-pop의 강렬한 원형이기도 하다.

 '도'는 만물의 마음이 서로 하나 되어 통하고 조화롭게 되는 이치이다. ‘도’는 무정함으로써 천지를 다스린다. 이 무정함 속에 참된 정이 있으며, 이 정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이 ‘도심(道心)’인 것이다. 도술(道術)이라는 말에서 ‘도’는 본성에서 나오고 ‘술’은 감정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도를 중심 삼고 술이 발전할 때 그 기술은 공동선이 되어 사회에 공헌하지만, 도를 중심 삼지 않은 채 술이 발전하면 우주의 질서가 깨어진다. 그래서 동이 겨레의 선조들은 공산주의, 자본주의를 비롯한 모든 종교, 학문, 사상이 다 같이 잘 살도록 이바지 힐 때 ‘참 도’라고 가르쳐 오셨다. 

그 비의를 ‘아리랑’과 ‘도라지타령’등의 민요라는 친숙한 문화 속에 버물어 숨겨 전해왔다. 그 비의를 스스로 깨우쳐 알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엄한 자격평가이기도 하다. 

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여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지구인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돕는 한민족의 심신단련 수련법이 ‘백도’ 곧 ‘선도’인 것이다. 도리지 타령은 “도를 알면, 즉 선도를 깨우친다면, 나와 너의 마음 구석구석에 이상향인 선경이 펼쳐질 것이라지.”라는 심신쌍수의 속뜻이 간절하게 담겨 있다. 

 도라지의 꽃말은 ‘변치 않는 사랑’이다. 천지간에 뭇 생령들의 ‘도’를 알기 위한 넘치는 사랑이 다만 변치 않기를 기원 드린다.

글. 원암 장영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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