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단법인 국학원이 선정한 '장생모델 2호' 이삼추 님
“살면서 아파서 드러눕고 그런 건 없었어”
중국의 진시황은 불과 서른아홉의 나이에 천화통일의 꿈을 이루며 중국 최초의 황제가 되었다. 최고의 권력과 부를 가진 그가 마지막으로 얻고자 했던 것은 ‘불로장생不老長生’이었다. 늙지 않고 영원히 살기 위해 불로초를 찾으려 했지만 끝내 이 마지막 꿈은 이루지 못했다.
그로부터 2천여 년이 흐른 지금, 불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장생의 꿈은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의학의 발달로 백세시대가 도래하며 90대 인구가 크게 늘었고 100세가 넘는 사람도 종종 볼 수 있게 되었다. 아픈 데 없이 청년과 다름없는 건강을 유지하는 장년층들도 많다.
지난해 11월 사단법인 국학원은 106세 이삼추님을 슈퍼 에이지 시대의 ‘장생 모델’로 위촉했다. 국학원은 “이삼추 어르신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120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귀감이 되어 장생 모델로 위촉한다”고 밝혔다.
▲ 천안 국학원 내 마련된 황톳길 해피로드에서 맨발걷기를 하는 이삼추 님 (사진_K스피릿 강나리 기자 제공)
이삼추 님을 인터뷰하기 위해 대전을 방문한 날, 찬 겨울비가 내렸다. 이삼추 님이 지난주 감기에 걸렸다는 말을 전해 들은 터라 인터뷰와 촬영이 무리한 일정이 되지는 않을지 가는 길 내내 걱정이 앞섰다.
대전 유성구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삼추 님의 집은 베란다가 딸린 자그마한 원룸으로 침대와 텔레비전, 옷장 등의 살림살이가 간소하게 놓여 있었다. 이삼추 님은 막 도착한 기자에게 “커피 한 잔 줄까?” 하며 따뜻한 믹스 커피를 내주셨다.
감기에 비까지 와서 컨디션이 어떠실지 걱정했다는 기자의 말에 “감기약 이틀 먹고 금방 나았어. 살면서 아파서 드러눕고 그런 건 없었어. 몇 년 전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사 맞은 게 다야. 그것도 다른 사람들은 아프다고 하던데 난 아무렇지도 않았어.” 평소에는 난방을 하지 않는데 오늘은 손님이 와서 특별히 보일러도 틀었다고 했다.
이삼추 님은 팬데믹 전까지 100세가 넘은 나이로 주 3일, 하루 3시간의 공공근로를 지속했다. “내가 백 살까지 살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백 살 되니 나라에서 백만 원을 줘. 이건 왜 줍니까 하고 물어보니 맛있는 거 잡수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라고 나라에서 주는 거라네.”
사람들이 장수의 비결을 물으면 “하루 세끼 잘 챙겨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거, 그게 다야”라고 시원하게 말한다. 잠은 보통 밤 9시부터 다음 날 아침 5시까지 자는데, 자는 동안 거의 깨지 않고 깊이 잔다고 한다. 식습관에 대해서는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고, 과식은 하지 않는 편”이라며 “고기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고 생선은 즐겨 먹는다” 한다.
일과는 집 안 청소로 시작한다. 매일 아침저녁, 젊은 사람도 쉽지 않은 쪼그려 앉은 자세로 온 집안을 구석구석 물걸레로 닦는다.
“내가 한 번 본 건 절대 안 까먹어”
이삼추 님은 3.1 운동이 일어난 해인 1919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1945년 해방을 맞던 때를 기억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쟁 난 줄 알고 남편과 짐 싸서 피난을 갔다 한다. 일제 강점기, 6.25 전쟁, 군부독재와 민주화 시기까지 근현대사의 격변기를 통과하는 동안 그는 “먹고사는 게 먼저였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6.25 전쟁통에 남편과 피난길에 올라 경북 김천에 정착했고, 김천에서 수십 년간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었다. 20여 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넷째 아들이 있는 대전으로 옮겨 살고 있다. 자식은 아들만 8형제를 뒀다.
“큰아들이 여든이 넘었지. 막내가 예순여섯 살인데 얼마 전에 은퇴했어. 손주? 몇 명인지 몰라. 자식 이름 외우기도 힘든데, 자기들 알아서 잘 사는 거지 뭐.”
일제 강점기에 소학교를 잠시 다닌 것 말고는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이삼추 님은 기자가 건넨 잡지 제호인 ‘brain’의 알파벳을 하나하나 읽으셨다. 자식들이 공부할 때 곁에서 보면서 한자와 산수, 영어 알파벳을 익혔다고 한다. “내가 한 번 본 건 절대 안 까먹어.”
▲ 고관절 펴기와 한발 서기를 보여주시는 이삼추 님
“나이가 있으니 못 한다는 생각은 안 해”
실제로 이삼추 님의 건강 상태는 어떨까? 2년 전에 한 건강검진에서 고혈압, 당뇨 등의 대사질환은 없고, 약간의 골감소증이 있는데 뼈 나이가 58세로 나왔다. 건강을 위해 영양제나 따로 챙겨 먹는 건강식품은 없다고 한다. 바닥에 앉을 때도 양반다리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는다. 발바닥 붙이고 다리와 골반을 열어주는 ‘나비자세’를 수월하게 할 만큼 고관절과 허리도 튼튼하다.
지금도 바늘귀에 실 꿰는 건 돋보기 없이 가능하고, 5층 계단도 거뜬히 오르내린다. 걸음이 너무 빨라서 기자가 쫓아가기 힘들 정도이다. 다만, 청력은 많이 약해져 대화할 때 거리를 좁혀야 한다.
▲ 바늘귀에 실을 꿰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셨다.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90세 넘게 사셨어. 건강을 타고나서 장수하는 걸 거야.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부터 행동이 빨랐어. 걸음도 빠르고. 이거 해야겠다 생각하면 바로 해버리지.”
생각하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고, 오랜 시간 고민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성격이란다. 스트레스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겠다는 짐작이 드는 대목이다. 이삼추 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나이가 있으니 이것은 못 해’라는 생각을 일절 안 한다는 것이었다.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사는 거지. 단지 너무 오래 살아서 자식들한테 피해 줄까 그게 걱정되지.”
▲ 장생모델로 여러 기관 및 단체에서 상을 받은 이삼추 님은 이런 걸 왜 찍냐며 민망해하셨다.
무엇이 세포 노화를 일으킬까?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삶은 모든 사람의 꿈일 것이다. 그러나 202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 기대수명은 83.5세이지만 건강수명(유병 기간을 제외한 기대수명)은 66.3세로 큰 차이를 보인다. 인생의 마지막 17년은 병든 채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노화는 세포에서 시작된다. 늙는다고 느끼기 훨씬 이전부터 세포의 노화는 시작된다. 무엇이 노화를 일으키는 걸까? 이것을 알면 세포의 노화를 막을 방법을 찾을 수 있고, 궁극적으로 신체 노화의 시계를 늦출 수 있을지 모른다.
인간의 최대수명은 120살 정도로 본다. 대다수 동물이 성장 기간의 6배 이상 살지 못한다는 게 그 근거다. 인간의 성장 기간을 20년으로 보면 120세 정도인 것이다. 반면 의학 기술의 발달과 체계적 건강관리로 수명이 훨씬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세포 연구와 DNA 복제 기술의 발달, 생체 이식 보편화 등이 수명을 연장시킨다는 주장이다.
우리 몸 안의 세포는 늙으면 더 이상 유지, 보수할 수 없고 분열하여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낼 수도 없게 된다. 이를 ‘세포 노화’라고 하는데, 노화한 세포는 주변의 건강한 세포나 신체 조직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늙어서도 크게 아프지 않고 살 수 있지만, 너무 많은 세포가 노화하면 우리 몸은 스스로 모든 기능을 멈추고 만다. 이 같은 세포 노화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답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텔로미어’다. 텔로미어란 염색체 끝부분에 해당하는 DNA 염기서열, 즉 막대 모양의 염색체 양쪽 끝에 있는 캡 모양의 구조물이다. 세포는 분열할 때마다 염색체의 끝부분이 짧아져서 한계에 이르면 더 이상 분열하지 않고 노화 세포가 된다. 텔로미어가 닳아 없어지면 각종 질병을 유발하며 세포가 노화하는 것이다.
텔로미어 길이는 유전과 환경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유전적 요인은 36~82퍼센트 정도로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텔로미어의 길이는 태어날 때부터 개인차가 크지만, 텔로미어 길이를 단축하는 것은 유전적 영향보다 환경적 영향이 더 크다. 환경적 요인에는 비활동성, 비만, 흡연, 과음, 스트레스 등이 있고, 이를 바꾸면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 아파트 5층에 사는 이삼추 님은 계단 오르내리기도 거뜬하다
나이가 건강과 의식을 결정하지 않는다
100세가 넘은 노인은 허리가 굽거나 다리가 불편하거나 주로 앉아서 생활하며 움직임이 느리다고 생각한다. 이삼추 님은 나이에 대한 이러한 편견을 시원하게 깬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광고문구처럼 나이가 건강과 의식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케 하는 진정한 장생 모델이다.
글_전은애 hspmaker@gmail.com / 사진_김경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