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의 다양한 이슈를 ‘뇌’의 관점에서 풀어보는 브레인 셀럽.
‘한국고기없는월요일’ 이현주 대표를 브레인 셀럽으로 초대해 채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채식 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개인적인 이유로 채식을 하다가 관련 책들을 보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나 자신의 삶이 다른 생명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어요. 고기를 먹는 행위가 기후변화, 기아, 생물 종들의 멸종, 토지 훼손 등 수많은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이런 폭력의 고리를 끊는 사회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고기없는월요일’이라는 운동을 알게 됐어요. 비틀즈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가 2010년에 시작한 운동이에요.
일주일에 하루만 채식을 해보라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제안할 수 있는 일이니 적극적으로 해보자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고기없는월요일’은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환경재단 같은 큰 환경단체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요즘 공공기관에서 채식하는 요일을 정하거나 채식 선택 급식제를 시행하는 곳들이 늘고 있어요.
서울시청은 2014년부터 매주 금요일에 채식을 제공하고, 단체 급식소에서도 주 1회 또 는 월 2회 정도 채식을 제공합니다. 또 기업 단위에서는 풀무원이나 샘표 같은 대기업들이 공식적으로 저희 참여 단체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비건 관련 제품들도 많이 나와 앞으로 활동영역이 더 넓어질 거라고 봅니다.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일주일에 하루 채식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가 한 끼를 고기 없이 채식을 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5~11배 정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는 주로 공공 급식의 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서울시청 같은 경우, 본청 직원이 2,500명 정도 되는데, 1년에 1,052끼 중 보통 52끼를 채식으로 급식하면 점심 급식만으로도 1년에 30년 된 소나무 7만 그루를 심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2014년에 시작했으니 지난 8년 동안 56만 그루를 심은 셈이죠. 이만하면 숲이 하나 살아난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물론 점심은 채식을 하고 집에 가서 고기를 두 배 드시는 분도 계실 수 있겠지만, 저희는 일단 교육적인 차원에서 먹거리와 환경의 연관성을 알려 나가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건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뭐라고 이야기하세요?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고 건강하게 생존하는 게 저한테는 아주 중요한 의제였어요. 흔히 남한테 상처 안 주고 살고 싶다 하잖아요.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는 없을지언정 최소한 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아요.
공익적으로는 지금 기후변화 문제가 굉장히 심각합니다. 기후변화와 코로나 팬데믹은 별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팬데믹이 더 심각하게 올 수도 있어요. 예전에는 지구를 위해서 또는 동물을 위해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인간 자신을 위한 일이에요. 당장 식량부족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지구에서 동물들이 차지하는 물리적 부피(바이오매스)가 사람이 차지하는 부피보다 훨씬 많아요. 동물 중에서도 특히 가축의 바이오매스가 굉장히 많죠.
인간이 먹고살기 위해 숲을 밀어내고 가축을 기르는 방식은 결국 지구의 황폐화라는 결과를 불러옵니다. 육식을 줄이는 것은 식량위기 사태를 막는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예일대학 같은 경우는 교내식당을 총괄하는 분이 ‘대학 강의실보다 식당문화가 더 중요하다’는 마인드를 갖고 계세요. ‘예일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전 세계의 리더가 될 건데 이 학생들에게 아무거나 먹이면 안 된다’며 식단의 80퍼센트 이상을 식물에 기반한 음식으로 제공하고 있어요. 대체육 햄버거를 세계에서 제일 먼저 선보인 곳도 예일대학 식당이고, 2030년까지 100퍼센트 채식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채식연습》이라는 요리책도 내셨죠?
저는 사실 요리에 관심도 없고 재주도 없는데, 채식을 시작한 이후 밖에서 마땅히 사 먹을 데가 없어서 음식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어요. 한 끼 식사를 정성을 담아 즐겁게 준비하고 맛있게 먹을 때 오는 행복이 꽤 크더군요.
‘정말 다른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고 싶다면 나부터 먹는 걸 통해서 행복해져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요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요즘 저하고 공부하시는 분들에게 강조하는 기본 철칙이 ‘삼시세끼 규칙적으로 먹기’예요. 단톡방에 매 끼니를 올리고 요리법도 공유하고 있죠. 저는 음식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매 끼니를 나에게 대접하듯이 정성 들여 차려 먹어요. 이것이 내 모든 활동의 원동력이 되고,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을 느낍니다.
채식하는 것이 행복해요. 채식은 이제 아주 자연스러운 삶의 한 방식이 됐죠. 채식을 하다 보니까 즐겨 먹는 채소 종류가 굉장히 많이 늘었어요. 매끼에 거의 20여 가지 정도의 채소를 먹게 돼요. 샐러드에 들어가는 토핑 재료만 해도 10가지가 넘죠. 완두콩과 구기자를 넣은 밥, 각종 채소를 넣어 끓인 스프 등을 곁들이면 충분히 20가지를 채울 수 있어요.
채식을 하면 영양이 부족하지 않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죠. 뿌리채소, 잎채소, 열매채소까지 아주 다양한 채식 재료들이 있어요. 식물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보호물질들을 각 부위에 숨겨두고 있어요. 이 물질들에 우리 건강에 도움을 주는 성분들이 많습니다.
▶채식만으로도 영양 섭취가 충분하다고보시는 건데, 그렇다면 채식을 하면 힘을 못 쓴다, 영양소가 결핍된다는 것은 오해인가요?
학교 다닐 때 배운 피라미드 형태의 영양학을 기억하실 거예요. 5대 영양소를 강조하는 영양학이었죠. 이러한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같은 거대 영양소 위주의 영양학은 최근 들어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인류세 식단’이라고, ‘EAT포럼’에서 발표한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식단 가이드가 있어요.
2019년 1월에 나왔는데, 세계적인 석학들이 모여서 만들었죠. 이 식단은 한 끼의 50퍼센트를 과일과 채소로 채우라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25퍼센트는 통곡식, 나머지 25퍼센트는 동물성이나 식물성 단백질, 지방, 미량 영양소들로 채우라고 합니다.
예전에 단백질 위주의 식단을 영양학적으로 강조했던 것과 완전히 다르죠. EAT뿐 아니라 하버드 의대에서 제안한 한 끼 건강 식단도 똑같은 비율을 권장합니다.
얼마 전 오슬로에서 환경회의가 열렸는데, 오슬로의 공공 급식은 기본이 채식이고 고기를 원하면 별도로 신청하도록 운영한다고 해요. 보통은 채식하는 사람이 소수여서 고기 메뉴를 기본으로 제공하고 채식을 신청받잖아요. 비행기 탈 때 기내식도 그렇고요.
영양학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면서 앞으로 계속 변화가 이어질 거예요. 가장 보수적으로 알려진 미국의 경우, 농무성에서 1956년에 내놓은 모델을 그대로 쓰고 있어 고기를 많이 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그런데 미국 농무성 모델에서도 동물성 단백질을 줄이고 특히 ‘적색육을 먹지 말라’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식단 가이드들도 변화하고 있는 추세예요.
새로 제안되는 식단의 핵심은 채식을 많이 하고, 고기 섭취을 줄이는 것입니다. 이제 채식이냐 육식이냐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건강한 식단을 고민해야 해요.
▶그렇다면 건강한 식단을 위해 단백질은 어떻게 섭취하는 것이 좋을까요?
식물에 기반한 단백질 제품이 많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동물성 단백질은 사실은 동물이 살아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단백질만 단일하게 갖고 있지 않아요. 단백질과 함께 동물성 지방도 갖고 있고, 동물성 지방은 불포화지방산뿐만 아니라 많은 포화지방을 포함하죠. 그래서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한다는 것은 동물성 지방을 섭취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 식물성 단백질 식품은 단백질을 단일하고 안전하게 섭취하는 방법입니다.
식물성 단백질이라고 하면 흔히 콩 단백질을 생각하는데, 그보다는 통곡류 단백질이 더 양질입니다. 현미 같은 곡물은 단백질 함량이 높아요. 브로콜리나 케일과 같은 녹색 채소류에도 단백질이 많이 들어 있고, 김, 미역, 톳, 우뭇가사리 같은 해조류는 특히 단백질 함량이 높습니다. 스피룰리나 같은 해초는 단백질의 보고로 알려져 있죠.
예전에 단백질을 강조하는 식단에서는 고기 한 덩어리의 단백질을 권장했다면, 최근에는 미량영양소들에 둘러싸여 영양 밀도가 높은 단백질 식품을 권장합니다. 미량영양소라고 하는 것은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이 한 식품 안에 함유되어 있으면서 단백질도 풍부한 것인데, 그런 식품이 바로 통곡류입니다.
우리나라 영양학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저도 전국 교육청에서 영양교사 선생님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영양학계에서 파이토케미컬 성분이 부각이 되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 십 년 전이에요. 예전에는 파이토케미컬의 영양적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파이토케미컬은 채소와 과일에 들어있는 식물성 화학물질로, 세포손상 억제 및 면역기능 향상에 도움을 주는 물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파이토케미컬이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을 치료하는 신약 성분으로 쓰이고, 피부 재생 크림이나 식품 성분으로 들어갑니다.
▶ 채식 운동 외에 ‘오감테라피학교’와 한약국도 운영하고 계시죠.
저는 사회운동을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고 하는 것에 앞서 이것이 제 삶의 한 방식이고 제 존재의 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면 다른 사람을 더 잘 설득할 수도 있겠죠.
내가 나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곧 이타적인 행위라는 생각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무거나 먹을 수 없어요. 저는 우리가 다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만 한다면, 그것이 건강한 인생을 만들고 세상을 바꾸는 비결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어. 신은정
정리. 《브레인》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