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에서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늘 가슴에 품고 있던 과제를 풀어보기로 마음먹었다. 흙과 친해져 보기가 그것이었다. 2013년 3월 1일 그렇게 맨발 걷기를 시작했고, 나는 맨발학교의 첫 학생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맨발로 걸었다. 맨발 걷기를 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맨발로 걷는다는 것, 그것은 발과 뇌가 대화하는 시간이다. 흙과 만나면 발바닥의 감각이 뇌로 올라간다. 요즘은 발바닥에 흙이 닿기만 해도 몸이 균형과 조화의 상태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
“참 신기해요. 신발을 신고 걸을 때보다 오히려 시간이 빨리 가네요. 맨발 걷기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왜 그럴까요?”
맨발 걷기를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이다. 맨발 걷기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첫발을 내딛고 걸음마를 시작하면 박수와 격려를 받는다.
첫발을 뗐을 때 칭찬 받지 못한 사람은 없다. 이때 전해진 강력한 칭찬의 정보가 뇌에 기억된다. 꾸준히 맨발 걷기를 하다 보면 이 첫걸음마 까지 정보가 거슬러 올라간다.
기쁨과 자신감의 정보가 뇌에서 되살아나는 것이다. 맨발 걷기는 누구나 칭찬 받던 첫걸음마의 기억을 되살려준다. 그래서 맨발로 걸으면 편안한 마음이 되고 용기가 생긴다.
현장 교사를 만나면 예전보다 분노 조절이 안 되거나 자기중심적인 학생들이 많아졌고, 정서 행동장애 학생들로 인해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들의 고민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학생들이 건강해지 고 인성이 좋아지며 두뇌가 활성화되는 비결을 알려주고 싶어진다. 그 비결이 바로 ‘흙길 맨발 걷기’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이웃과 나누고 싶은 것처럼 맨발 걷기라는 보물을 발견하면 이를 알리고 싶어진다. 내가 만난 흙길 맨발 걷기라는 보물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 맨발학교이다.
맨발학교는 지정된 공간이나 시간표가 따로 없다.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걸으면 된다. 학교 운동장도 좋고 동네 뒷산도 좋고 바닷가 모래사장도 좋다. 걷는 것은 누구에게 배울 필요가 없으니 그냥 걸으면 된다. 맨발학교에는 이기고 지는 것이 없다. 늦게 걷는다고 질책하는 사람도 없다. 발길 가는 곳으로 걸으면 된다.
새벽이든 저녁이든 시간을 내어 걸으면 그게 맨발학교의 수업이다. 맨발학교를 통해 맨발 걷기를 시작한 많은 사람들이 몸이 튼튼해지고, 마음도 너그러워지고, 하는 일에 용기가 생긴다며 고마워한다.
지난봄, 나의 맨발 걷기는 3000일을 지났다. 내게 맨발 걷기는 나를 만나고, 과거와 미래를 만나고, 자연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일과를 마친 늦은 밤, 맨발로 천천히 걷다 보면 나무도 꽃도 별도 달도 바람도 친구가 되고, 자연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생겼다. 자연이 내게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한여름 맨발로 산길을 걷다 햇빛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싸리나무를 만났을 때, 그 나무에서 아버지가 보였다. 신을 신고 걸을 때는 보이지 않던 세상이었다.
멈춰서 글을 썼다. 그 글이 ‘싸리꽃 앞에서’라는 시였다. 맨발 걷기 덕분에 나는 시인이 되었다.
‘진리는 단순하고 실력은 꾸준함에서 나온다. 작고 단순한 것도 꾸준히 하는 사람이 행복을 잡는다.’맨발학교의 교훈이다.
글_ 권택환 대구교육대학교 교수. 맨발학교 교장. 시집 《싸리꽃 앞에서》, 에세이 《맨발일기》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