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 '뇌' 활용의 중요성 증명해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 '뇌' 활용의 중요성 증명해

[칼럼] 뇌로 보는 세상

▲ 이세돌 9단이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최종국에서 첫수를 착점하고 있다. (사진=한국기원)

인류의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던 인간 대 인공지능의 바둑대결이 마침내 끝났다. 대국 시작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직은 인간이 이기지 않겠어?'라는 자만은 내리 3판을 패하면서 겸손함을 넘어 경악과 충격을 던져주었다.

“한 판 이겼는데 이렇게 축하받아본 건 처음이다. 오히려 3연패 당하고 1승 하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지난 13일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바둑대결 4국에서 첫 승을 거두고 난 뒤의 소감이다. 3판 내리 지고 1판 이긴 게 뭐가 그리 대수냐 할 수도 있지만 3판이 진행되는 동안 어느샌가 마음속에 자리 잡은 우울감과 무기력증이 한 번에 해소되는 것 같았다.

인공지능 시대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다가왔다. 나의 노년은 인공지능의 공격을 피해 한 줄기 햇빛조차 없는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각종 피부병과 영양실조로 마감하지 않을까 슬픈 상상마저 들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간 영웅 '존 코너'를 찾는 사진에 이세돌 9단을 합성한 사진이 패러디되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인간과 인공지능의 바둑대결에 쏟아진 세계적인 관심과 이를 둘러싼 여러 논의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 거리를 안겨준다.

▲ 영화 '터미네이터 2'에서 존 코너를 이세돌로 합성한 패러디한 장면.

이제 인공지능의 시대? 아님 아직은 한 가지 재주만 부릴 줄 아는 곰에 불과한가?

1997년 IBM에서 만든 컴퓨터 '딥블루(Deep Blue)'가 체스 세계챔피언이었던 게리 카스파로프를 이겼을 때, 각종 언론과 과학자들은 "로봇의 시대가 다가온다"며 한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곧 우리 집에서 로봇 하인을 두는 날이 올 것으로 생각했다. 어질러진 집 안을 청소하고, 설거지해줄 것이라 장담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하나 둘씩 빗나가기 시작했다. 체스를 두는 기계는 오직 체스만 둘 뿐 그 외의 일은 전혀 할 수 없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는 결국 '한 가지 재주만 부릴 줄 아는 곰'에 불과했다.

일본의 경우 전 세계 산업용 로봇의 30% 이상을 생산하며 그 어느 곳보다 활발하게 인공지능에 대해 연구한다. 일본 혼다에서 제작한 로봇 '아시모(ASIMO)'의 경우 6~7세 어린아이의 크기로 혼자 걷고, 뛰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여러 언어를 구사하며, 음악에 맞춰 춤까지 출 수 있다. 그러나 아시모를 만든 과학자들은 아시모의 지능이 "곤충 정도의 수준"이라고 말한다. 아시모의 걸음걸이와 언어는 언론보도를 위해 연출된 것이다.

인간에게는 '상식'이지만 인공지능에는 상식도 '지식'이 된다. '날씨가 맑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든지, '어머니는 딸보다 나이가 많다'든지 당연한 상식을 수학적 논리로 변환해 입력해야 한다. 알파고 역시 마찬가지다.

▲ 대국 후 기자단 브리핑에서 답변하고 있는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CEO (가운데). 오른쪽은 데이비드 실버 ‘딥마인드’ 팀 리더 (사진=한국기원)

알파고는 바둑의 수를 연산하고 사고하고 학습해 최선의 수를 계산하는 것은 스스로 가능하지만, 정작 바둑돌을 놓는 건 사람이 대신해주어야 했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 데미스 하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바둑판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고 정확하게 놓아야 할 곳에 돌을 놓게 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알파고는 지난 4국 78번 수에서 황당할 만큼 이상한 수를 두었는데, 이 역시 기존의 어마어마한 빅데이터에서 최선의 결과를 산출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실퍼 알파고 수석개발자는 "알파고가 반복적으로 축적한 지식에는 허점이 있다. 지난 4국에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의 한계를 증명했다"고 밝혔다. 즉, 기존의 정보가 얼마나 정확하고 올바르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공지능의 활용도 결국 인간의 뇌에 달려

알파고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구글은 마냥 기뻐하지 않고 시종일관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인공지능 개발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크기 때문이다. 하사비스는 "알파고의 승리는 바둑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질병 예방 등 건강관리나 기후변화 연구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인공지능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했다.

또한, 구글 내에 인공지능윤리위원회를 설치해 매년 세미나를 열며, 인공지능의 윤리적 위험성을 내부에서 통제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했다. 그는 "기술은 가치 중립적이지만 그 기술이 어떤 파장을 가지고 올지 반드시 고려해야 하며 이는 모든 과학자의 책임"이라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 이세돌 9단은 다섯 차례 대국한 바둑판에 친필 휘호를 해 하사비스 CEO에게 선물했다.(사진=한국기원)

결국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의 '가치'가 이러한 논란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인공지능도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추구하고 충족시키는 데 활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서는 바둑의 아름다움은 느낄 수 없다. 오직 이겼냐 졌냐의 승패만이 있을 뿐이다. 앞으로 인류가 이세돌과 알파고와의 대결에서와 같이 승패와 경쟁만을 추구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만든 모든 기계가 그러했던 것처럼 인공지능은 지구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안겨줄 것이다. 인공지능이 축복이 되느냐, 재앙이 되느냐는 인류의 의식이 지구와 인류 전체를 생각할 만큼 얼마나 빠르게 성숙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달려 있다.

인공지능의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 지구와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의 답은 결국 우리 뇌 속에 달려 있다. 도구적인 문제에 대한 답은 인공지능이 제시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가치의 문제는 우리 자신이 답을 해야 하고,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지구와 인류 전체의 건강과 행복을 가장 최우선 순위에 놓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은 복잡한 연산이 필요 없는 '상식'이다.




글. 전은애 뇌 전문기자 hspmak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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