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 속으로 들어간 세월

조화 속으로 들어간 세월

안중근 콤플렉스 힐링 4편

나는 마음이 산란하여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그래서 명상하든 기도하든 염불하든 하여야 했다. 나는 기도를 해본 적이 없고 염불을 해 본 적도 없으므로 명상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명상에 들어가기 위하여 먼저 편안하게 자리를 잡아야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노산 선생이 갖다 준 그림이 있어서 그림을 바라보며 명상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그림을 바라보니 몇 장의 그림이 순서가 바뀌어 있었다. 모두 다 색조는 어두웠고, 안개가 끼어 있었고, 숲이 있거나, 둥근 달이 나무의 배경에 있거나, 끝을 알 수 없는 길이 나 있거나, 어둠 속에 집이 있거나 했다.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림마다 사연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나는 사람이 없는 빈집처럼 보이는 집에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집 앞에 가니 ‘지구에서 온 사람이 쉬어가는 집’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나는 말머리를 하고 있었으므로 과연 이 집에 들어가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말처럼 허리가 구부러지려는 것을 억지로 꼿꼿이 서서 걸어야 하였다. 문을 통과하니 복도가 나 있는 양관이었다. 1900년대에 일본과 중국과 한국에 서양 사람이 들어오면서 지은 건물이었다.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나타났다. 기모노를 입은 조신하게 생긴 일본인 여자였다. 

“선생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에서야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일본인 여자가 영계의 언어로 말하였다. 영계에서는 한 가지 언어만 쓰고 있었다. 그 언어는 산스크리트 어로 알려진 풍이족의 언어였다. 나는 내가 말머리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저를 알아보십니까?”
“영계에 있으면 영안이 열려서 상대방이 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말머리에 대헤서는 신경을 쓰지 마세요. 본 모습이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보아 주시니 고맙습니다.”
“저의 남편이 손님을 맞아야 하는데 형편이 여의치 못하여 제가 대신 맞습니다. 저는 우에노 도시코입니다.”
“어디에선가 듣던 이름입니다.”
“그렇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나는 그제야 이 여자가 누구라는 것이 생각났다. 

“안중근 의사의 위패를 모시고 한국에 오신 분이지요.”
“그렇습니다.”
“사시는 곳이…….?”
“저는 생전에 미야기 현의 구리고마(宮城県栗駒町)라는 곳에 살았습니다. 저의 선친은 지바주시치(千葉十七)입니다.”
“알겠습니다. 지바 선생의 따님을 영계에서 뵙다니요. 놀랍습니다. 감격스럽고요.”
“저의 선친은 26세 되던 해인 1910년에 일본 육군에서 제대하여 집에 돌아오실 때 안중근 의사의 유품을 집에 가지고 오셔서 신단을 만들어 모셨습니다. 41세 때 세상을 떠나셨고, 그 후에 저의 모친 가쓰요가 제사를 지내다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엔 저인 우에노 도시코가 제사를 지내다가 유품을 서울로 모시고 와 안중근 기념관에 기증했습니다.” 
“한국 사람을 대표하여 제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알기로, 지바 주시치는 당시에 상등병으로 일본군 장춘(長春) 헌병 분위대에서 복무하였다. 그는 이토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를 호송하면서 안중근 의사와 인연을 맺었다.  

“제가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우에노 도시코 여사가 말했다. 사실 나는 풀만 조금 먹었을 뿐 물은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를 대접하겠다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오에노 도시코 여사는 난로에서 주전자를 들어 테이블 위에 놓인 잔에다 차를 따랐다. 생전 맡아 보지 못한 향이 은은하게 내 코를 자극하였다. 나는 말처럼 쩝쩝거리며 차를 마셨다. 도저히 점잖게 마셔지지 않았다. 말머리가 몹시 거북하였다. 

“벗으시지요.”
“벗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말하였다. 우에노 도시코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제가 하루에 한 번은 식사를 가져다 드릴 수 있습니다. 생전에 덕업을 쌓았다고 저는 이곳에서 한국인 조상이 사는 곳과 일본인 조상이 사는 곳을 넘나들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선생님이 계신 곳은 한국인과 일본인 혼백이 머물렀다 가는 혼백의 집으로 보이는데, 제가 식사를 만들어 가지고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문책을 받지 않을까요?”
“덕업을 쌓으면 문책이 면제된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내일부터 이 시간에 제가 ‘지구에서 온 사람이 쉬어가는 집’에 가겠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명상에서 깨어났다. 이제부터 책으로 들어가도 좋을 만큼 나는 안정이 되어 있었다.

나는 우에노 도시코 여사가 싸서 오는 도시락을 얻어먹으려고 다음 날 ‘지구에서 오는 사람이 잠시 쉬어가는 집’으로 갔다. 그 집에 가는 길은 어두웠고 검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내가 우에노 도시코 여사와 만났던 방으로 들어가니, 난로에서 주전자에 든 찻물이 끓고 있었다. 우에노 도시코 여사가 보자기에 싼 도시락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방금 왔습니다.”

우에노 도시코 여사는 보자기를 끄르고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일본식 도시락이었다. 

“드세요.”

나는 도시락을 먹기 시작하였다. 우에노 도시코 여사가 찻잔에 차를 따라 내 앞에 놓아 주었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
ⓒ 브레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 뉴스

설명글
인기기사는 최근 7일간 조회수, 댓글수, 호응이 높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