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광복절을 앞두고 출고한 '한국의 가톨릭 vs 가톨릭의 한국'(클릭) 기사가 주목을 받고 있다. 문자와 카카오톡으로 응원의 글을 보낸 지인도 있었다. 광복절을 취재하러 서울 사직공원에 갔더니 한 지인이 나의 팔을 붙잡았다. 글을 읽고 속이 다 시원하다고 말했다.
글을 잘 써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많은 매스컴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환영했다. 칭찬일색이다. 4박 5일 동안 매일 그랬다. 오죽하면 광복절 69주년 행사도 가톨릭 행사에 묻혔다. '기자수첩'을 통해 물었다. 주인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 물음에 독자들이 답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가톨릭의 2번째 이야기를 시작하자.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신앙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순교자들을 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福者)'로 공식 선포하는 행사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복식이라고 한다. 윤지충 바오로를 비롯해 124명의 순교자가 대상이다. 교황이 직접 집전한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들은 가톨릭 신자로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가톨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유교와 불교, 민족종교도 순교자가 많았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조국을 구한 종교인이다.
영화 '명량'에서 스님들이 피를 흘리면서 싸운다. 이들의 손은 염주가 아니라 칼을 들었다. 불교에서 첫 번째 계율은 '살생하지 마라'이다. 계율을 따르는 스님이라면 칼을 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조상이 지켜온 땅이 피로 물들고 있었다. 코와 귀가 베인 백성의 울음이 산천을 뒤덮었다.
종교의 가르침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조국을 구할 것인가? 사명대사(1544~1610)를 비롯해서 많은 불교 지도자는 절에서 나와 전쟁터로 향한다. 그들은 교리를 어겼다. 사후관으로 본다면 지옥행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쟁을 치른 승병은 종교를 초월한 애국자다. 진정한 복자라고 생각한다.
대일항쟁기 대표적인 순교자는 홍암 나철(1863~1916)이다. 일본은 1915년 종교통제안을 발표한다. 신도(神道), 불교, 기독교만 공인 종교로 인정했다. 홍암이 1909년에 단군한배검을 교조로 세운 대종교(大倧敎)는 종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일제는 대종교를 종교 단체로 가장한 항일 독립운동 단체라고 보고 탄압했다. 교단의 존폐 위기에 처한 홍암은 구월산 삼성사에서 자결로 일제에 항거한다.
전국에서 수십만 가톨릭 신자가 순교자를 추모했다. 그런데 나라를 위해 순국한 사람을 위해 이렇게 추모한 적은 아직 보지 못했다. 신자들은 독립운동가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종교 이전에 나라가 있고 애종심(愛宗心) 이전에 애국심(愛國心)이 있기 때문이다.
글.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