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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에 대한 예의는 강연의 시작에서부터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 YES24,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공동주관으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저서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출간기념 초청강연이 있었다. 이날 강연에는 청중 2백여 명이 강수진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준비된 좌석이 부족하여 바닥까지 청중들이 점령하는 모습은 가히 강수진의 인기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공지된 강연 시작 시각은 오후 7시였다. 6시 50분경이 되자 진행자가 나와서 한마디를 했다. “강수진 선생님께서 지금 오고 계시는데 도로가 너무 막혀서 10분 정도 늦어질 것 같습니다. 양해를 부탁하겠습니다.” 10분이 지났다. 하지만 강수진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다른 행사 진행자가 나와서 또 한마디 했다.
“오늘이 어버이날이라서 효도를 하고자 하시는 많은 분이 차를 몰고 나와서 도로 사정이 상당히 안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효도를 하고자 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에 위안으로 삼으며 청중 여러분께서 넓은 마음으로 양해를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또 10분이 지났다. 여전히 강수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행사 진행자가 나와서는 또 한마디 했다.
“지금 강수진 선생님과 연락이 닿지 않아서 어디쯤 계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도착 예정 시간도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열심히 오고 계시는 중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아마 저희보다 강수진 선생님께서 더 조급해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다시 10분이 지났다. 이번에는 진행자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강수진 선생님께서 방금 정문을 지나셨다고 합니다. 이제 정말 10분 정도 후면 도착하실 것 같습니다. 많이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여 7시 시작 예정이던 7시 40분이 되어서야 강수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찍부터 강수진의 강연을 듣기 위해 자리를 하고 있던 청중들, 특히 불편함을 감수하고 바닥에 앉아 있던 청중들은 기다리는 시간이 상당히 지루했다. 한 청중은 그녀의 저서 제목으로 패러디하여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다만 너희를 기다리게 할 뿐이다.”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나마 주최 측에서 10분 간격으로 상황을 알려주고 기다리는 동안 강수진의 발레 동영상을 보여 주었기에 지루함을 약간은 달랠 수 있었다. 자칫 청중들의 불만이 커질 수 있었을 법한데 주최 측에서 슬기롭게 잘 대처한 듯하다.
드디어 강연 시작. 아이러니하게도 강수진님 강연의 첫 주제는 ‘늦는 것보다 더 큰 잘못은 시도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화두를 던지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도로 사정이 많이 안 좋아서 강연을 취소할 수도 있었지만 전 취소하지 않고 여기에 왔잖아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청중들에게 정중한 사과와 함께 시작한 강수진님은 이처럼 재치 있는 말로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책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읽는 순간 아쉬움이 더욱 커졌다. 책에 이런 문구를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시간관념은 칼 같아서 늦게 가서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는 것도 싫지만, 내가 너무 일찍 가서 쓸데없이 기다리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싫었다.”
물론 그날은 국내 도로 사정에 익숙하지 않아 발생한 실수이겠지만 만약에 그날의 행사가 강연이 아닌 공연이었다면 그런 실수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을 버리기는 쉽지 않았다. 강수진은 발레리나이지 전문 강연자는 아니다. 따라서 이런 문화에 익숙치 않아 실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번의 실수는 용납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실수의 반복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는 강수진뿐만 아니라 모든 강사가 지켜야 할 필수 예절이다.

행동하라, 인정하라, 지배하라.
40분 늦게 강연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강수진의 강연은 정말 유익했다. 살아온 경험을 솔직담백하게 이야기해주었기에 더욱 그녀의 말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강수진은 강연의 주제로 세 가지를 던져 주었다. 첫 번째 늦은 것보다 더 큰 잘못은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나를 인정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세 번째는 시간을 지배하는 자 세상을 지배하리라.
이 세 가지 주제는 젊은 청춘들 그리고 직장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이제는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은퇴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이 말은 곧 직장에서 은퇴하더라도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직장인들의 은퇴 시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직장을 떠나게 되었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미리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은퇴 후 무엇을 해야 할지를 찾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쳤다면 행동을 해야 한다. 행동하지 않고 생각만 하는 것은 공상, 망상, 상상에 불과하다. 행동하기 위해서는 시간 활용을 잘해야 한다. 그 시간 활용에 자기계발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 강연을 축제처럼 즐기며 자기계발을 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은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물론 직접 경험이 가장 좋긴 하지만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은 직접 모든 것을 경험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간접 경험도 좋은 방법이다. 이 간접 경험을 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강연 듣기다. 여러 강연을 듣다 보면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내 피가 뜨거워지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그것을 찾아 행동하면 된다.
시간은 고무줄과 같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하루의 시간은 24시간이지만 어떤 이는 28시간처럼 사용하고 어떤 이는 20시간처럼 사용한다. 시간을 늘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루를 남들보다 먼저 시작하거나 늦게 마감하는 것과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침형 인간을 추천하지만,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개인의 성향에 맞혀 늦은 밤 또는 새벽 시간을 활용하면 된다.
그리고 이동하는 시간, 약속을 기다리는 시간을 잘 활용하면 24시간을 28시간으로 늘릴 수 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직장인은 퇴근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많은 시간이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출판기념 강연회도 지혜의 향연이 되어야 한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강연이 끝난 후 사인회에서였다. 이날 행사는 40분 강연 후 40분간 질의응답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그 이후에 바로 사인회가 시작하였다. 사인회를 시작하며 진행자는 청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든 분이 사인 받기를 원하실 텐데요. 시간 관계상 모든 분에게 해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책을 사신 분에게만 사인해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일부 청중은 강수진의 사인을 받기 위해 현장에서 판매하는 책을 샀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그러나 시간이 잠시 지난 뒤 진행자가 또 이렇게 말을 했다.
“시간 관계상 줄 서 있는 분들 모두에게 사인을 해드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9시 15분까지만 사인회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양해 부탁하겠습니다.”
그때 여기저기에서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중 한 분의 원성의 소리가 들려왔다.
“사인받으려고 방금 밖에서 책까지 샀는데 너무 하시네요. 말도 안 돼요.”
저자가 책을 출간하면 홍보를 위해 출간기념 강연회 또는 사인회를 진행하게 된다. 이것은 저자로서도 , 출판사 입장에서도 좋은 마케팅 방법이다. 그러나 강연회 자체를 책을 팔기 위한 수단으로 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강연이 주가 되고 책 판매가 부가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주객이 바뀌면 뭇 사람들의 구설에 오르기 마련이다. 오로지 책 판매가 목적이라면 길거리에 좌판을 벌여 책을 파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다.
행사 진행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면 주최 측에서 잘 조율을 해야 했다. 질의응답 시간을 줄인다든지 아니면 행사장 밖에서라도 사인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었어야 한다. 그것이 그 순간을 위해서 시간을 투자에서 강연장을 찾은 청중에 대한 예의다.
이날 행사 마지막 주최 측의 행동은 단지 책을 팔기 위한 행사로밖에 느껴지지 않았음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삶의 지혜를 나누는 강연회가 수익의 수단일 수는 있지만, 목적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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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영대 강연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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