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는 글쓰기》펴낸 심리상담가 박미라

《치유하는 글쓰기》펴낸 심리상담가 박미라

치밀어 오르는 생각을 써봐 상처가 아물도록

브레인 14호
2013년 01월 14일 (월)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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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미운 당신에게 편지를 썼을 때 이미 당신을 죽도록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 그 사건, 그 기억을 떠올렸을 때, 이미 그때 그 사건은 내 안에서 희석되었지.
- 에리백 (치유 글쓰기 워크숍 참가자)


사람들은 자기 치유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이미 알고 있다. 발설의 욕망을 느낀다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다. 그러니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치밀어 오를 때는 스스로를 치유하고자 하는 본능에 맡겨야 한다.
- 《치유하는 글쓰기》 중에서




천사 콤플렉스에 빠진 워커홀릭
첫 대면이지만 그녀를 친근하게 느낀 건 2007년에《천만 번 괜찮아》를 읽은 느낌이 남아 있어서다. 박미라 씨는 한겨레신문 상담 코너에서 독자가 보낸 고민을 상담해주었고, 그 내용을 모아서 책으로 냈다. 그녀는 푸근한 이웃집 아줌마 같은 인상으로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1년 뒤, 그녀는 두 번째 심리학 에세이 《치유하는 글쓰기》를 냈다. 치유 글쓰기 워크숍을 3년간 진행하면서 만난 사람들 속에서 경험한 치유의 경이로움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글쓰기를 통해 누구나 자기 치유를 경험하게끔 구성한 친절한 안내서다.

‘치유하는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를 알리는 그녀는 자기 치유를 어떻게 경험했을까. 박미라 씨는 ‘평화를 버리더라도 나쁜 여자가 되라’고 말하던 자신이 정작 천사 콤플렉스로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다고 말한다. 








“가족학과 여성학을 공부했고, 사회로 나와서는 여성운동과 관련된 잡지사와 신문사에서 일을 했어요. 주로 여성들과 함께하는 일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제가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자 역할을 하고 있는 거예요. 낮 시간에는 직장 동료, 친구들을 상담해주고 저녁에는 낮에 못한 일을 보충하느라고 밤새워서 일했죠. 몸도 힘들어지고 마음도 지쳐갔어요. 그러면서 ‘나는 왜 이렇게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줘야 하고, 또 못 도와줘서 안달일까’ 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혔어요. 천사 콤플렉스였던 거죠.”


엄마와의 관계 패턴이 사회생활에서도 반복돼

인간관계 속에서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지인이 명상을 권했고, 그녀는 명상을 하면서 차츰 심신의 안정을 되찾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을 성찰하는 감각이 생겼고, 마음의 에너지도 충전됐다.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어요. 엄마는 혼자 힘으로 세 남매를 눈물바람으로 키웠어요. 막내딸인 저에게 심정적으로 의지를 많이 했죠. 저는 엄마의 고통과 외로움을 모조리 들어야 했어요. 엄마의 심리적인 남편 역할을 한 거죠. 그러다 언제부턴가 숨이 턱까지 차올랐어요. 엄마의 지난한 삶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믿었으니…. 그래서 커서도 어디에서나 언니 노릇, 상담자 노릇을 했던 거예요. 회사에서는 상사의 감정적으로 힘든 부분까지 받아줬지요. 상대방이 기대오는 무게에 눌려 쩔쩔매다가 결국 도망가고, 그러길 반복하면서 일곱 곳이나 직장을 옮겨 다녔어요. 나 자신을 성찰해보니, 엄마와의 관계 패턴을 사회생활에서도 그대로 반복했더라고요.”



내면의 아이가 찾는 엄마는 어디에도 없다
“내면을 성찰하고 문제의 핵심을 알았을 때에는 이미 엄마가 돌아가신 후였어요. 엄마에게 물어보고 확인하고 싶은 게 많았죠. 엄마를 무덤에서 끌어내 때려주고 싶다고 쓴 적도 있어요.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 결국 혼자 해결할 수밖에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어요. 어른이 되었지만 내면의 아이가 계속 엄마를 찾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지만 엄마는 이미 내 곁에 없어요. 그때 벼랑 끝에서 절감한 것은 ‘더 이상 나에게 엄마는 없구나, 나를 괴롭혔다고 생각한 엄마였지만 날 보호해주고 나랑 싸워준 거였는데, 사회에서는 그 역할을 대신해줄 사람이 어디에도 없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이렇게 생각하자 슬픔은 잠깐이고, 곧 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결국 나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는 어른이 된 내가 그 상처를 보듬어줘야 해요.”







박미라 씨는 그래서 항상 잊지 않는다. 치유의 주체는 상담 전문가가 아니라 치유를 원하는 그 사람 자신이라는 것을. 치유 글쓰기 워크숍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글을 쓰는 그 사람이며, 상담자가 하는 일은 참가자 스스로 자신을 치유할 거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뿐이다.



상담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나만의 방식

치유 글쓰기 워크숍을 통해서 만난 사람이 2백여 명. 그들이 털어놓는 문제 속에서 박미라 씨는 자신의 문제를 보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살아오면서 고통스럽다고 생각한 경험이 삶에서 이렇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감사했다고. 그래도 때로는 다른 이의 고통을 계속 들어줘야 하는 일이 힘들지는 않은지 물었다.

“천사 콤플렉스에 빠져 있을 때는 ‘왜 나는 보상도 없는 치유자 역할을 하는가’ 하는 피해의식이 있었죠. 하지만 명상과 글쓰기를 통해서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면서 이 일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알았어요. 상담은 내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이에요.”

그녀의 워크숍을 찾는 사람들은 1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20~30대 여성들이다. “요즘은 심리학에 관한 정보가 참 많아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뿐만 아니라 치유 프로그램도 다양하죠. 이런 현상으로 인한 장단점이 있지만, 나는 축복받은 시대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어머니들은 분노를 가슴에 쌓아둔 채 50~60대를 맞았지만, 요즘은 가족 관계 속에서 주어진 역할에 묻히지 않기 위해 자기를 성찰하는 분위기가 많이 자연스러워졌죠.”


우리 딸들, 엄마를 대단하지 않게 봐주길
동갑내기 남편, 열일곱 살. 열세 살인 딸 둘과 함께 사는 박미라 씨. 딸들의 존재는 유능한 심리상담가를 한없이 겸손하게 만든다.

“딸들이요? 원수죠~ 하하. 지지고 볶는 게 일이에요. 딸은 엄마를 생물학적으로만 보죠. 세상에 어떤 엄마든 지겹고 상투적인 게 있어요. 우리 딸들도 ‘엄마 별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고 관계 속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극복해갔으면 해요. 예전에는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아이에게 분노를 폭발하기도 했어요. 사회생활은 그런대로 잘 해나가면서 자식한테는 왜 감정 조절이 안 되는지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인간의 뇌 속에는 ‘파충류의 뇌’가 있다고 하잖아요. 가족 관계에서는 이 원시적인 파충류의 뇌가 작동하나 봐요. 본능이 가장 강하게 튀어나오는 게 부모 자식 관계인 것 같아요. 아이가 반항하는 건 자기를 독립된 인격체로 봐달라는 신호거든요. 아이들과 갈등이 생길 때는 ‘저 인간이 어느 별에서 왔는지 모르지만, 제가 책임을 맡아서 양육하다가 언젠가는 떠나갈 존재임을 자각하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해요.”

이제는 엄마와 딸로서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잘 지낼 수 있는지, 그 방법을 터득해가고 있다고 한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싸우고 나서 반성한 다음에 사과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약속하기. 약속을 하면 지키기 위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단다. 









“치유가 되었다고 해서 그다음부터는 아무 문제없이 잘살게 되는 건 아니죠. 살아가면서 문제는 계속 생길 수밖에 없어요. 어떤 문제를 만나든 그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야말로 자신이 성장할 기회라는 것을 믿는 게 중요해요.”


글·김보희 kakai@brainmedia.co.kr | 사진·김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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