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계학으로 고대사를 이야기하다

카자흐스탄 카즈구대학 국제관계학 김정민 박사

브레인 36호
2013년 01월 10일 (목)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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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8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동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고대사 역사 인식 공유를 위한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25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학술회의에서 김정민 박사는 ‘고조선과 카자흐스탄 주스의 공통점과 역사적 연계성’에 대해 발표했다. 국제관계학자의 시각에서 본 고대사에 대한 통찰이 흥미로웠다. 학술대회 참석차 한국에 온 그를 만났다.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가 주최한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 카자흐스탄, 일본의 학자들이 참가해 동북아시아와 카자흐스탄 문화의 공통점을 살펴보는 자리였다. 김정민 박사는 카자흐스탄과 한국 고대사의 유사성을 비교언어학, 유적·유물의 유사성과 해당 국가의 문헌 등을 참고해서 발표했다.

뒤이어 발표한 카자흐스탄 카즈구대학 나비잔 무카메타눌리(역사학) 교수도 ‘고대 카자흐족과 한민족의 천신관념 사상에 대한 공통점’을 언급해 참가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리적으로 가깝지 않은 한국과 카자흐스탄에서 이러한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김정민 박사는 카자흐스탄과 한국 고대사의 유사성을 다양한 자료를 근거로 언급했는데, 실제로 두 나라는 언어, 통치제도, 신분제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놀랄 만큼 유사성을 보였다. 우선 민족의 기원이 스키타이로 같다. 고대 한국인을 ‘색족色族’이라 불렀는데, 고대 카자흐족 최초의 민족은 ‘삭족’이다.

카자흐족은 한국의 색족처럼 신분을 네 가지 색깔로 구분했다. 둘 다 기마민족이었고, 편두 풍습(머리를 납작하게 눌러 불의 형상으로 연출하는 지배계급의 풍습)을 가지고 있었으며, 알타이어계 언어를 썼다. 민족 철학과 종교도 같았고, 언어의 유사성은 놀라울 정도이다.

예를 들어 고조선의 지도자는 ‘단군’이고 카자흐스탄의 지도자는 ‘탱그리’다.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명이 ‘조선’이라면 그들은 ‘주스’ 또는 ‘주잔’이라고 불렀다. 고조선의 수도는 ‘아사달’이고 카자흐스탄의 수도는 ‘아스타나’다. 그는 이 같은 언어의 유사성에 대해 단순히 발음이 비슷한 차원이 아니라 비교언어학적 측면에서 일관성이 있다고 밝혔다.

지금은 카자흐스탄 TV에도 출연하는 유명인사가 된 그는 5년 전만 해도 일본 무역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카자흐스탄에 가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삼성동 무역센터에 직장이 있었는데, 점심을 먹고 우연히 코엑스 유학박람회를 둘러봤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카자흐스탄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는데, 카자흐스탄 키멥대학 총장이 한국인이더라고요. 그때는 이런 나라에도 한국인이 가 있구나 하고 신기하게 생각하고 말았는데, 직장생활이 무료해서 외국에 나갈 계획을 세우다 보니 카자흐스탄이 떠올랐어요.”


그의 카자흐스탄 행은 그렇게 조금은 무모하게 결정됐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가능성을 택한 데는 그의 특이한 인생 이력도 한몫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을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에서 보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가족 전체가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한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을 마친 후 무역회사에 입사해서는 중국과 일본 등으로 해외 파견을 나갔다. 영국 유학을 다녀왔고, 직장생활 틈틈이 해외 30개국을 여행하기도 했다. 스스로도 유목민 기질이 다분하다고 말하는 그는 5개 국어를 구사하고, 해외 파견을 나가서도 현지인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천상 세계시민이다. 카자흐스탄에서도 카자흐인과 어울리고 카자흐어를 구사하는 몇 안 되는 한국인이라고 한다. 이렇게 현지인들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우리와 비슷한 카자흐 민족의 문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카자흐스탄에 갔을 때는 2년 동안 MBA 과정만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카자흐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 민족과 비슷한 점이 무척 많았어요. 처음에는 그저 우연이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우연치고는 유사성이 무척 많아서 하나하나 메모를 하다가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되었지요. 그 결과 카자흐 민족과 우리 민족이 고대에 같은 알타이어계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2009년 그는 그때까지 혼자 연구한 결과를 국제적으로 공인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한 국제관계학 박사의 고대사 알리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고대사 연구의 패러다임이 달라져야

그렇다고 해도 국제관계학 전공자가 고대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어떻게 고대사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재차 묻자 그는 국제관계학을 하면서 역사를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국제관계학의 관점에서 보면 역사는 외교의 모든 성공과 실패사례를 집약해놓은 것이에요. 마케팅에서 케이스 스터디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영업을 할 때 과거의 실패사례와 성공사례를 찾아보고 다음 영업에 대비하듯 국제관계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역사를 바로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국제관계학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일까? 그의 고대사 연구는 접근부터가 한국의 역사학자들과는 다르다. 그간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우리 고대사를 단일민족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그래서 강단 중심의 사학계는 우리 역사를 한반도 안에 구겨넣기 일쑤였고, 재야사학자들은 고조선이 동아시아 전체를 지배한 듯 묘사하곤 했다. 그는 이와 달리 우리 민족을 범 알타이어계 북방민족의 한 줄기로 본다.

“고대사를 연구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주변 민족과의 관계를 연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다른 나라로 분리되어 있지만 고대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고대사의 경우는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를 아우르는 북방민족 전체의 역사로 접근해야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고대에는 범 알타이어계 북방민족이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에 걸쳐 같은 통치제도 아래 연방정부를 수립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카자흐스탄과 한국이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문화적인 유사성을 보이는지 설명된다.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에서 주장하는 고조선의 영토 범위에 대한 논쟁도 어느 정도 합의의 실마리가 보인다. 그래서 그는 특정 사관을 가지고 역사를 연구하기 전에 먼저 제대로 된 역사철학이 정립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물을 바라볼 때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사물에 대한 해석이 달라집니다. 고대 역사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사관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해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러한 역사관이 현재의 시대적 흐름과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느냐 하는 것이죠. 지금의 세계 정세를 읽고 시대상에 맞는 새로운 역사관을 정립할 때 비로소 창조적인 발상으로 미래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시대 흐름에 맞는 새로운 역사관을 정립해야

그래서 그는 여전히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으로 나뉘어 소모적인 논쟁만 무성한 한국의 현실이 답답하다고 했다. 세계는 경제의 흐름 속에서 시시각각 재편되고 있는데, 한국 학자들은 그 흐름을 읽지 못한 채 자기 관점 안에 고여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한국인들에게 대륙적인 시야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져 오랫동안 대륙으로 뻗어나가지 못하다 보니 한국인의 시야가 섬나라 사람처럼 닫혀 있습니다. 그래서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당장의 이익에만 연연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는 우리 고대사를 단일민족의 역사로 보고 학술적 논쟁 차원에 그치는 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결론에 이르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과거의 영광에 연연하는 재야사학의 관점이나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강단사학의 관점으로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국제사회에서 공인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내세우고,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맞닥뜨린 중요한 문제들은 우리가 문제를 만들어냈을 때와 같은 수준에서는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고대사도 마찬가지다. 학계의 오랜 갈등을  해결하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공인받으려면 기존의 틀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새로운 역사관을 정립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김정민 박사는 우리가 범 알타이어계 연방정부의 하나였던 시절, 거침없이 대륙으로 뻗어나갔던 그 시야를 회복해야만 앞으로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전채연 ccyy74@naver.com
사진·박여선 pys03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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