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리포트] 감정은 신체와 의식을 잇는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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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감정조절에 실패하는가

브레인 95호
2022년 10월 13일 (목)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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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억제가 아닌 조절의 대상이다

“인간 의식활동의 대부분은 감정에 물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의식활동의 주요한 내용 대부분은 감정중립적일 수가 없다. 동물에서 감정은 어떻게 진화되어왔을까? 동물은 결국 움직이는 존재고, 움직이려면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동물은 먹이를 찾아 나아가야 하니 목적지향적일 수밖에 없다. 목적지향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판단을 해야 하는데, 판단의 중요한 근거로 진화해온 것이 감정과 느낌이다.” -박문호 《뇌, 생각의 출현》
 

움직임과 감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필자가 재직하는 대학에 74세 최고령으로 입학한 심윤식 학우는 졸업 후 감정코칭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경로당에서 한 강의를 본 적이 있는데 자신의 후배(?)들에게 ‘나이가 들면 움직이는 것 부터가 감정의 충돌이다’라고 했던 말이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현대 과학에서 제시하는 ‘감정-행동’ 기제를 아주 잘 표현한 말이라서 이다.

‘움직임(motion)’은 동물과 식물을 구분 짓는 대표적인 차이이며, 생물 종의 진화적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은 움직임의 다양성과 복잡성, 감정과 행동의 예측 그리고 언어와 고등 기능을 가진 동물이다. 동물의 생명은 움직임으로부터 시작되고, 나이가 들면 점차 움직임이 둔해진다. 그러다 움직임이 멈추면 생을 마감하게 된다.

즉 ‘감정(emotion)’은 ‘움직임(motion)’이 내재화 되지 않은 채 표출되는 형태로서, 움직임과 감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몸 상태가 좋으면 외부의 자극에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며 넘어가지만, 피로하거나 지쳤을 때는 사소한 자극에 감정 반응이 쉽게 일어난다. 따라서 감정관리에서 몸 상태를 빼고 얘기할 수 없다. 그렇다면 뇌의 구조적 관점에서 감정을 들여다보자.


생명 중추와 이성적 사고 영역 사이에서 기능하는 감정뇌

인간의 뇌는 지구상 모든 생물체 중에서 가장 복잡한 기능과 구조를 갖추고 있다. 1950년대 미국의 신경과학자 폴 맥린은 인간의 뇌를 진화 발달 단계로 볼 때 뇌의 가장 심부에 자리해 생명기능을 담당하는 뇌간(brain-stem), 그 바깥쪽으로 감정반응을 담당하는 대뇌변연계(limbic system), 가장 바깥쪽에서 이성과 사고 기능을 담당하는 대뇌피질(neo-cortex)로 구성된다고 하며 ‘삼위일체’ 뇌이론을 주장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널리 통용되고 있다.

뇌간, 대뇌변연계, 대뇌피질, 이 세 개의 층은 기능적으로 당연히 연결되어 있다. 아래층 공사가 잘되어야 상층이 안정되게 놓일 수 있듯, 생명기능을 관장하는 1층의 뇌간에 문제가 있어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그 상층의 감정과 이성의 기능도 불안정하기 쉽다. 평소 몸의 컨디션에 따라 기분이나 의욕, 의지 등이 달라지던 경험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부분이 감정과 이성적 사고의 관계성이다. 세계적인 뇌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 교수는 인간 정서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인간의 의사결정은 감성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판단과 의사결정 과정에 정서가 주도적으로 개입되며, 인간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합리적 결정을 하기보다는 정서적 기억과 상태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



감정은 생존을 위해 진화된 기제

이러한 과학적 이론과 증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정을 신체와 연결지어 생각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히 쓰는 “저 사람 참 감정적이야”라거나 “감정에 휩쓸리면 안 돼”’ 같은 말에서 보듯 감정에 대한 인식도 대체로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감정感情(emotion)’에 대한 정의는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 ‘외부 자극에 대한 단기적, 인지적 반응’, ‘움직임 차원에서 밖으로 향하는 움직임’ 등 학문 분야에 따라 다양하게 설명된다. 

과학적인 측면에서의 감정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생명작용 그 자체이다. 감정 기제 중에서도 공포는 생존에 직결되는 감정반응이다. 뇌를 가진 척추동물에는 공포반응과 부정적 기억을 담당하는 ‘편도(amygdala)’라는 영역이 별도로 존재한다. 

만약 편도를 제거한 쥐가 있다면 고양이를 어떻게 대할까? 실제 실험한 연구가 있다. 편도를 제거한 쥐를 고양이와 같이 두면 쥐는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고 다가간다. 이전의 공포 기억이 존재하지 않으니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호기심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감정은 생존을 위해 진화된 기제이다. 
 

신체 균형의 부조화가 감정 변화를 만들어낸다

감정이 생존을 위해 진화된 움직임이라면, 신체 균형의 부조화는 곧 감정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당연히 그 반대로도 상호 영향을 미치지만, 생명중추 기제인 뇌간이 뇌의 가장 안쪽에 자리한 만큼 그 상위에 있는 감정과 인지적 사고에 미치는 신체의 영향도가 훨씬 크다. 우리가 명확히 알아야 하는 것은 감정이 신체보다 먼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신체 균형의 핵심은 무엇일까? 생명을 유지하는 기본 기제인 ‘항상성恒常性(homeostasis)’이다.

항상성은 우리 몸이 여러 가지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생명현상이 제대로 일어날 수 있도록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성질 또는 그런 현상을 말한다. 생명을 유지하는 베이스캠프인 것이다. 

항상성의 저하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길항작용하는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깨뜨린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비전염성 질환에 노출된 현대인들의 대다수가 자율신경계 부조화 상태에 있다고 한다.


호흡 훈련은 감정을 조절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자율신경계가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아주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호흡’이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때의 반응을 떠올려보자. 화가 나고, 감정조절이 잘 안 되고, 얼굴이 상기되고,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무거웠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 감정반응과 연관돼 있다. 반대로 호흡이 편안할 때는 감정반응 없이 심신의 상태가 안정적이다. 

자율신경계 중에서 호흡 기제가 특별한 이유는 의식으로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호흡을 통해 자율신경계를 변화시키고 인체 항상성의 조화를 회복할 수 있다. 따라서 호흡 훈련은 감정을 조절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감정을 어떻게 하면 조절할 수 있나요?” 기업 특강이나 교사 직무연수, 학부모 대상 강연 자리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나는 지금 내 뇌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뇌를 심장이나 간, 신장 같은 생물학적 기관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대부분의 신체기관은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면 이식을 할 수 있다. 인공심장 처럼 인공물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뇌의 경우에는 문제가 완전히 다르다. 뇌는 정신활동을 담당하는 기관이어서 뇌를 바꾸면 사람이 바뀌는 문제가 일어난다. 뇌는 단지 생물학적 신체기관이 아닌 것이다.

자신의 뇌를 느껴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성인은 주름진 뇌의 형태를 떠올리지만, 어려서 부터 뇌교육을 접한 아이들은 ‘밝다, 어둡다, 무겁다’ 같은 말로 상태를 표현한다. 뇌를 고착된 기관이 아닌,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 뇌의 변연계 구조에 속하는 편도체와 해마.(Getty Image)


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매개는 몸

마음 기제의 총사령탑인 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매개는 몸이다.

뇌가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뇌의 바깥에서 오는 정보를 처리하는 것인데, 그 바깥의 대표가 몸이기 때문이다. 기어다니다가 두 발로 서고, 자신의 몸을 마음껏 쓰기 시작하면서 감정 소통이 활발해지고 학습이 본격화되는 유아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인간 뇌의 발달 특성을 알 수 있다.

태어나자마자 바로 뛰어다니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환경과 상호작용 하면서 오랫동안 발달과정이 이어진다. 태어날 때 300~400그램에 불과했던 뇌가 몸과의 소통을 통해 신체에 대한 조절력을 키우고, 감정 기제가 발달하는 단계와 인지학습 단계를 거치며 놀라운 수준으로 발달한다. 

이 순서를 보면 몸을 조절하는 기능이 먼저 발달하고, 그다음 몸 바깥의 대상과 상호작용하며 감정과 인지기능 발달로 이어진다. 이렇듯 인간의 두뇌 발달 단계를 전체적으로 보면, 감정이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감정은 억제가 아닌 조절의 대상이다

결국 감정조절은 몸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신의 몸을 낯선 타인처럼 대하고 있다면 몸과 친해지는 것이 우선이다. 사람을 알아갈 때처럼 자신의 몸에 관심을 기울이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몸과 친해지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뇌교육(Brain education)에서는 뇌와 친해지는 활동으로 ‘뇌체조’를 한다. 뇌체조에서 중요한 것은 ‘동작, 호흡, 의식’, 세 가지이다. 근육과 관절을 이완하고 기혈순환을 촉진하기 위해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것이 일반적인 스트레칭과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동작이라도 자극이 오는 부위에 의식을 얼마나 집중하느냐에 따라 신체의 반응이 달라지기 때문에 의식의 집중과 호흡의 흐름은 특히 중요하다.

뇌교육은 체계적 훈련을 통해 몸과 마음의 상호 관계 속에서 신체적 균형감을 회복하고, 감정조절력을 향상하고, 의식 확장성을 이끌어낸다.

감정은 억제가 아닌 조절의 대상이다. 뇌를 생물학적 대상이 아닌 활용과 계발의 대상으로 인식하면 감정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고, 자신의 감정을 더 잘 다룰 수 있게 된다. 


글. 장래혁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교육학과 교수, <브레인> 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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