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습관처럼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며 머리를 깨우려 애쓴다. 과도한 술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하루종일 뜨거워진 뇌로 쉽게 잠들지 못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직장인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활은 우리의 뇌를 매우 취약하게 한다. 청년실업과 조기퇴직, 가난한 노년을 걱정하는 뉴스가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면 우리 뇌는 위기상황을 알리는 빨간 불을 켠다. 우리 뇌의 화재경보기가 너무 예민해져 시도 때도 없이 사이렌 소리를 낸다.
최근까지도 사람들은 불안장애를 개인적인 의지의 문제로 여기거나 성격적인 문제가 있어서 걸리는 병이라고 여겼다. 이제는 감기처럼 누구나 겪을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퍼지면서 원인과 증상에 관한 관심이 많다. 뇌 영상 촬영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불안을 일으키는 뇌 부위가 밝혀지면서 불안장애가 뇌에 기인한 실체가 있는 질병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뇌에서 불안과 우울장애를 관여하는 다섯 개의 기관들
우리가 불쾌하고, 슬프고, 화나고, 짜증나는 생각을 하면 뇌 속에서 부정적인 화학물질이 방출된다. 방출된 화학물질은 심층변연계를 활성화하고 신체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불안이나 우울장애는 바로 뇌의 취약성과 삶이 주는 스트레스가 결합하여 빚어내는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불안장애는 우울장애와 각자 따로 발생하기보다 함께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콜럼비아 대학의 잭 매튜 골만에 의하면 “불안장애 환자의 약 90%가 우울증을 동반하고, 우울증 환자의 약 85%가 불안 증상을 경험한다.”고 밝혔다. 불안장애와 우울장애가 뇌에서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현상을 일으키는 것일까?
우리 뇌에서 불안장애, 우울장애와 연관된 중요한 부위는 기저핵, 심층변연계, 전방대상회, 측두엽, 전전두엽 5군데가 있다.
기저핵 과활성화되면 항상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는 습관 생겨
먼저 기저핵basal ganglia은 뇌 안쪽 깊숙한 곳에서 감정과 생각, 운동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며 불안의 정도를 결정한다. 사람들이 긴장하면 떨고 당황하면 몸이나 혀가 굳는데 이 모든 일이 기저핵의 작용이다. 이 기저핵에 문제가 생기면 불안과 신경과민 증세가 나타난다. 공황발작을 일으키거나, 신체적 불안증세로 미세한 근육 떨림 등이 생긴다. 과도하게 활성화된 기저핵은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기저핵이 활성화되면 목표를 이루려는 동기가 강해져서 일을 더 잘하려고 자신을 더 몰아붙이게 된다. 그러나 불안감 역시 커져서 느긋하게 쉬는 것이 어렵다.
주변의 모든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면 심층변연계 이상 의심해야
두 번째, 심층변연계deep limbic system. 이곳은 감정의 뇌라고 한다. 뇌의 중심부에 호두알만한 크기이다. 사람이 느끼는 기분에 따라 그날 있었던 일을 해석하고 분류하여 감정을 입히는 필터이다. 감정이 격했던 기억을 더 잘 저장한다. 이 심층변연계가 차분하면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느껴지나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마음이 부정적이 된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심층변연계에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전방대상회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과거 상처에 집착, 고집불통에 강박행동 하기도
세 번째, 전두엽에 위치한 전방대상회anterior cingulate gyrus 는 뇌의 기어이동 장치라 할 수 있다. 우리 행동에 윤활유 역할을 하여 유연한 사고와 행동을 하도록 돕고 주위 환경에 적응하도록 한다. 변화가 필요하면 변화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어떤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주의를 전환하게 하고 여러 대안을 고려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전방대상회에 문제가 발생하면 과거의 상처나 원한에 집착하고, 강박적 사고가 생기고 강박적 행동을 한다. 손이 오염되었다는 생각에 상처날 만큼 반복적으로 씻거나 외출하면서 잠금장치를 수차례 확인해야만 하는 증상 등이 나타난다.
또한 반항적인 행동을 하고 툭하면 논쟁을 벌인다. 지나치게 걱정이 많고, 까다로우며 비협조적이고 자신만의 생각을 고집한다. 생각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자동적으로 ‘아니오.’라고 말하거나 경직된 태도를 보인다. 심층변연계는 감정을 거르는 필터 역할을 하므로 과도하게 활성화 되었을 경우 감정에 부정적인 색을 입히기 때문이다.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이 부족해서 이 부위에 문제가 생기면 주의를 전환하기 어려워지고 융통성이 없어지며 지나치게 무언가에 집중하는 성향이 생기고 인지유연성이 떨어진다.
측두엽 이상시 특별한 이유없이 불안이나 두려움 겪는다
네 번째, 측두엽temporal lobe은 기억을 처리하고 장기간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기억 담당 매니저’이다. 정서적 안정, 기분조절, 기억과 관련이 있다. 측두엽 내부에 있는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amygdala가 과거 경험에 근거해서 현재 접하는 세계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측두엽에 문제가 생기면 특별한 이유 없이 불안이나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기억과 학습에 문제가 생긴다. 또한 정서적으로 불안해지며 다른 사람이나 자신을 향한 공격성이 나타난다. 자살을 생각하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것이다. 남이 무시하면 민감하게 반응하고 약한 편집증세를 보인다. 원인 모를 두통이나 복통을 호소하기도 하고 표정을 인식하는 능력, 목소리의 억양을 해석하는 능력, 안면 인식장애를 겪거나 사회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처음 온 곳인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deja vu나, 반대로 전에 왔던 곳인데 처음 와보는 것 같은 미시감jamais vu이 든다. 종교나 도덕에 집착하며, 간질과 같은 발작이 일어나기도 한다. 좌측 측두엽이 비정상적으로 활동하면 어둡고 폭력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살인이나 방화 , 배우자 학대, 강간 등 폭력적인 행동을 저지른 사람들에게서 좌측 측두엽 이상이 발견된 경우가 많았다.
전전두엽에 문제 생기면 ‘양심’이라고 부르는 내부 감시 기능도 떨어져
다섯 번째는 뇌의 최고사령부라고 불리는 전전두엽prefrontal lobe이다. 뇌에서 가장 진화한 부위로 사람의 뇌에서 약 30%를 차지한다. 의사결정력, 주의집중력, 판단력, 충동조절능력을 조절한다. 실수를 통해 배우고 계획을 세우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행동을 계속 조절해 나가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전전두엽 활동이 저하되면 사람들은 주의가 산만해지고 집중을 못하며, 지루함을 잘 느끼고 업무수행능력이 떨어지며 충동적이 된다.
반대로 전전두엽이 과도하게 활동하면 걱정이 많아지고 과거의 상처나 나쁜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다. 또한 전전두엽은 감정의 뇌인 변연계와 깊은 연관을 가져 변연계에 감정을 억제하라는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감정을 통제한다. 특히 왼쪽 부위가 손상되거나 활동이 떨어지면 전전두엽은 변연계를 조절하지 못한다. 일상을 조직화하는 데에도 문제가 생기고 양심이라고 부르는 내부 감시 기능도 떨어진다.
이 다섯 개의 뇌의 부위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개별적으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전방대상회가 과도하게 활성화된 상태에서 기저핵과 심층변연계가 모두 혹은 어느 한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과집중 불안장애 또는 우울장애가 발생한다. 전방대상회에 문제가 생긴 상태에서 심층변연계 활동이 과도해지면 부정적이고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동재 박사는 “불안을 느낄 때 공포에 휩싸여 아무 생각도 못 하고 있으면 안된다. 왜 불안한지 이유를 찾아야 하고, 정말로 불안하게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맞는지 의식적으로 뇌에게 자꾸 물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금 현대인에게 흔한 불안장애와 우울장애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3편 계속)
■ 참고문헌
다니엘G.에이멘.리사C. 루스 공저, <불안과 우울로부터의 힐링> ,소울메이트, 2014년
오동재, <한없이 외로운 불안- 불안의 방에 갇힌 내 영혼 구하기>, 행성:B 잎새, 2013년
글. 강현주 기자 heonjuk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