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위한 마음이 음운학의 대가로 만들다
재위 25년째 되던 1443년 12월, 조선 조정을 발칵 뒤집는 일이 발생했다. 세종이 정인지, 최항, 박팽년, 성삼문, 이개, 이선로, 강희안 등 소장 학자들과 함께 철저히 비밀리에 추진한 ‘훈민정음’이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훈민정음의 발표는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 대표 학자들조차 발표 시점까지 그 골자를 보지 못했을 만큼 전격적인 사건이었다.
대부분의 조정 대신들은 즉각 반대에 나섰고 집현전의 많은 학자도 반대 여론에 참가했다. 그만큼 새로운 문자의 창제는 당시 사회에 많은 문제점을 만들어낼 소지가 있었다. 하지만 세종은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3년 후인 1446년 ‘훈민정음’을 정식으로 반포했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변할 수 없는 원칙으로 만든 것이기에 세종은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세종 자신이 당대 최고의 음운학자였다는 점이다. 백성을 위한 독자적 문자의 필요성을 느낀 세종은 오랜 기간 음운론에 관해 수많은 서적을 섭렵했고, 반대 학자들을 꼼짝 못하게 할 만큼 뛰어났다. 이는 당시 훈민정음의 반포에 크나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한글의 태동기로 보는 세종 즉위 10년부터 그는 고어를 연구하고 음운론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스스로 전문가로 성장했다. 백성을 향한 마음이 그의 재능을 한 단계 도약시킨 셈이다.
성군의 바탕이 된 인간 뇌의 가치에 대한 인식
인재의 발굴과 등용, 저마다의 재능을 일깨운 통찰력, 큰 가치를 위한 공적인 비전 등 세종은 단순한 군주를 넘어 뛰어난 뇌교육자였다. 그는 재능을 발굴하고 키우며, 학문을 대중화시키고, 뛰어난 인재를 나라의 근간으로 삼았다.
세종의 교육관은 단순한 지식 전달 위주와 획일적인 교육, 하향 평준화 등 오늘날 겪고 있는 교육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는 선조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교육이란 것이 단순히 지식을 배우고 축적하는 것을 넘어서 뇌가 가진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임을 세종은 이미 알았던 셈이다.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교육자로서 인간의 뇌가 가진 근본 가치를 꿰뚫고 있었던 세종. 세종이 왜 우리 역사에서 으뜸으로 손꼽히는 성군인지 새삼 돌이켜볼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와 민족이 번성하는 길은 ‘교육’에 있으며, 그 해답이 ‘뇌’에 있기 때문이다. 뇌교육이 21세기에 들어 새로운 교육 방법론으로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글·장래혁 editor@brainmedia.co.kr | 사진·김경아
도움받은 책·<대왕 세종> 백기복 저, 크레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