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란 무엇인가? 감정은 관리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동안 감정을 다스리는 일은 곧 마음을 단속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기분이 나쁘면 마음가짐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긍정적인 관점을 가져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침 시간이 이유 없이 우울하거나, 종일 설명할 수 없이 불안하거나, 별일도 없는데 며칠째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될 때는 이 감정들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지 못해 무작정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감정시계》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감정과 몸의 관계를 탐구하는 심리인문서다.
이 책은 마음이라는 추상적 공간에서 헤매기를 멈추고 몸이라는 구체적 매개를 통해 감정을 들여다보며, 어긋난 생체리듬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회복하려 한다.
이 책의 저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도형 박사는 감정이란 몸이 만드는 리듬의 현상이라고 단언한다. 이 리듬은 시간 속에서 작동하며, 생각이나 마음의 영향은 의외로 크게 받지 않는다.
이 책은 감정의 발생점인 신체 기관을 감정시계 태엽이라 부른다. 감정은 장, 심장, 피부, 척추, 송과체, 편도, 해마, 생식선, 뇌간, 섬엽 등 10개의 장기와, 그것들을 중심으로 구축된 복잡한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리듬에서 비롯된다. 책은 감정시계 개념을 중심으로 인간의 감정을 구성하는 10개의 신체 태엽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감정은 뇌가 아니라, 몸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수많은 감정 관련 서적들이 말하는, 감정을 완벽히 이해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환상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들에게 섣불리 조언하거나, 감정을 이겨내야 한다는 성취 중심적 메시지를 전하는 대신, 감정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이며, 그것을 신체의 기본 조건으로 받아들일 때 적절하게 조율할 수 있음을 말한다.
또 신체와 감정이 교차하는 접점을 헤아리는 일상의 루틴과 감각 명상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감정시계를 조율할 수 있도록 이끈다.
이 책은 감정의 감도를 회복하고 싶은 사람들, 감정의 발생 메커니즘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 어린 시절과 같이 나로서 살아 있는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강도형 박사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그리고 민간정신병원 원장으로 일하며 감정과 생체리듬, 명상과 신경생리학 사이의 관계를 꾸준히 연구해왔다.
그는 특히 다양한 통증이 신체의 리듬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그로 인해 어떤 감정 왜곡이 발생하는지를 임상적 사례와 과학적 데이터로 추적해왔다.
《감정시계》는 그런 연구의 결과물로, 생리학과 신경과학, 심리학, 인문학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감정 해석의 지도를 제시한다.
내 몸을 돌보지 않고는 감정의 시간은 결코 회복할 수 없다
장은 세로토닌을 생산하고 염증반응을 조절하는 감정의 근원지이며, 심장은 혈액의 펌프인 동시에 전기적 감정 신호의 송신소다. 피부는 감정을 세상과 연결하는 감각의 관문이고, 편도체와 해마는 감정을 저장하고 조율하는 기억의 중추다.
척추는 신경 신호를 타고 감정의 진동을 전신으로 퍼뜨리며, 송과체는 리듬의 시작과 끝, 즉 낮과 밤, 각성과 수면을 관장한다. 생식선은 일상의 생기와 활력을, 섬엽은 시간과 감정의 통합된 감각을 통해 ‘자아’를 조율한다.
이 모든 장기를 통해 우리는 감정을 ‘느낀다’. 몸이 감정을 만들어내면 뇌는 이를 번역할 뿐이다.
예컨대 장의 염증은 장뇌축을 통해 뇌에 영향을 미쳐 피로감이나 무기력으로 번역되고, 불규칙한 심장박동 패턴의 전기신호는 뇌간을 거쳐 감정 회로에 즉각적 반응을 유도한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짜증, 불안, 우울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파열된 생체리듬이 불협화음을 만들고 있다.
분노는 감정의 리듬이 급박해질 때 생기고, 우울은 리듬이 느려지고 침잠할 때, 불안은 지나치게 빠른 신호들이 제어되지 못할 때 발생한다.
공허함은 리듬이 멈춘 상태에서, 무기력은 리듬의 진폭이 거의 사라져 미세한 진동이 될 때 나타난다. 이 모든 결과가 신체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교향곡이라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
이 책은 감정 조율을 위한 솔루션 또한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물론 예외적인 의지나 집요한 훈련을 요청하지는 않는다.
매일 아침 얼굴 위로 쏟아지는 햇빛을 향해 몸을 열고, 잠들기 전에 배꼽 주변에 모이는 따뜻한 기운을 상상하고, 고개를 천천히 흔들며 뇌간에 진동을 만들고, 손으로 피부를 자극하며 감각을 깨우는, 아주 작은 습관들을 제안할 뿐이다.
감각의 틈을 열어 감정시계의 태엽을 감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명상 연구자인 저자가 이 거창하지 않은 행위들 일부를 명상으로 규정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는 지금껏 제안된 적 없는 독특한 명상 지침들이 수록되어 있다. 독자들은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 리듬을 점검하고 복원하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감정조절의 강박을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만드는 아주 작은 습관들
저자는 현대인이 감정을 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통제하고 억압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건 감정의 시간을 읽을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감정의 시간성을 처음으로 체감하고, 감정은 조절이 아닌 조율의 대상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감정이 우리 몸과 함께 살아 숨 쉬는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누구든지 리듬의 지휘자가 될 수 있다. 기분이라는 아름다운 선율로 하루를 채울 수 있다.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싶다면 뇌가 아니라 몸을 떠올리자. 기분을 바꾸고 싶다면 생각 대신 몸을 움직이자. 감정시계의 태엽이 제대로 감겼다면 온몸으로 ‘나’를 느껴보자.
글. 전은애 기자 hspmak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