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열 저, 《지능의 탄생》(바다출판사) 지능의 본질 탐색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이대열 교수의 첫 저서인 《지능의 탄생》(바다출판사 간)은 생명의 진화 과정에서 지능이 어떻게 출현했는지, 뇌와 같은 신경계가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살펴본다. RNA부터 DNA, 세포와 뉴런까지 생명의 진화사 전반을 훑어가는 이 책은 생물학에 문외한인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바퀴벌레나 해파리, 예쁜꼬마선충 등 다양한 동물의 사례를 보여준다. 인간의 행동은 생물학이나 심리학이란 하나의 렌즈만으로는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저자인 이대열 교수는 신경과학과 경제학, 그리고 심리학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인간 지능의 다양한 면모를 탐색함으로써 학문의 진정한 융합을 보여준다.
유전자와 생명의 관점에서 바라본 지능의 본질
알파고와 프로기사 이세돌의 대결 이후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지능’, 인간이 지닌 ‘자연지능’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대열 교수는 《지능의 탄생》에서 지능에 관한 우리의 상식을 재고할 것을 요청한다. 바로 생명과 유전자의 관점에서 지능을 보자는 것이다. 뇌가 그것의 주체인 생명과 맺는 관계에서 나타난 다채로운 사고 작용이 바로 ‘지능’이다. 《지능의 탄생》은 생명의 관점에서 바로 이러한 지능의 근원과 한계를 설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지능은 생명체의 기능이다. 생명체는 자기 스스로 복제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복제 과정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복사본은 가끔 원본과 작은 차이점을 보이게 되고, 그 결과로 원본보다 더욱 능률적으로 자기복제를 할 수 있는 복사본들이 진화 과정에서 등장하게 된다. 지능이란, 이렇게 진화를 통해서 생명체가 획득하게 되는 능력들 중의 하나로서, 자기 자신을 보존하고 복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 개발된 인공지능은 참다운 의미의 지능이라고 할 수 없다. 왜? 인간이 선택한 문제를 인간 대신 해결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지능은 진화의 산물이다. 다양한 생명체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능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는 생명체들이 각각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왔는지 그 의사결정과정을 살펴본다. 이와 같은 다양한 의사결정을 통해서 표현되는 지능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목표다. 이 책의 1부에서는 바퀴벌레와 해파리, 예쁜꼬마선충, 그리고 인간의 안구에서 나타나는 행동을 통해 지능의 다채로운 면모들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인간의 지능을 이해해야 하는가?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지능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의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사회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간의 지능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이해하여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인간 지능의 근원과 한계에 관한 통찰이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점차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인공지능의 역할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능에 관한 통찰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적 메커니즘으로 뇌를 해명하다
뇌는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위해 발명한 가장 놀라운 장치다. 초기의 생명체는 자원이 풍부한 비교적 특수한 환경에서만 자기복제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위의 환경이 변화할 경우 이런 생명체는 속수무책으로 제거당할 수밖에 없다. 유전자는 생명체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유전자에 의해 선택된 행동이 항상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즉, 스스로 판단하여 환경을 개선시키거나 아니면 다른 환경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생명체만이 유전자를 남겼다. 이때 등장한 것이 뇌와 신경계로, 유전자는 뇌에게 자기를 대신해 적절한 행동을 선택할 권한을 부여한다. 즉, 뇌는 유전자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대신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대리인인 것이다.
유전자 관점에서 뇌의 진화를 설명한 2부에는 이대열 교수의 고유한 통찰이 녹아들어 있다. 유전자와 뇌의 관계는 사장과 노동자의 관계와 유사하다. 사장은 모든 일을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에 급여를 주고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고용한다. 이 노동자가 열심히 일해 수익이 많이 나고 회사가 잘 되면 사장과 노동자 모두에게 유익하다. 유전자 또한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위해 뇌를 이용하고, 뇌에서 벌어지는 일은 비록 뇌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전자를 위한 것이지만 뇌 또한 그 관계에서 이득을 보는 것이다. 이대열 교수는 경제학의 ‘본인-대리인 이론’을 접목하여 유전자와 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분업과 위임을 살펴본다. 분업과 위임은 뇌처럼 복잡한 구조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메커니즘인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대리인은 유전자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환경 속에서 유전자를 무사히 복제할 수 있기 위해 여러 가지 학습방법을 개발하게 된다. 즉, 지능이란 다양한 학습 방법이 서로 유연하게 결합되는 과정을 말한다.인공지능의 시대, 지능의 근원과 한계에 대한 통찰이 필요
전 세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이세돌 9단과 알파고(AlphaGo)의 대국이 있은 지 1년이 지났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기계가 인간의 뇌를 따라 잡기엔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알파고 대국 이후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시대가 생각보다 더 가까이 와 있다는 현실에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과연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 사람들의 염려와 두려움을 반영하듯 인공지능에 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지능의 발달로 인해 생명체가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문제점들을 다룬다. 뇌가 진화하는 동안 유전자는 한 가지 문제에 부딪힌다. 뇌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뇌에게 부과된 권한도 점점 커짐에 따라, 뇌가 행하는 어떤 행동들은 유전자의 자기복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사장과 노동자의 관계로 돌아가면, 능력이 매우 뛰어나 많은 결정권을 넘겼더니 사장의 이해관계는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시작한 노동자가 바로 뇌인 것이다.
대표적인 뇌와 유전자의 갈등 사례인 ‘후회’나 ‘실망’은 뇌가 주변 환경을 분석하고 예측하여 학습하는 데 필연적으로 따르는 감정이지만 너무 오래 지속되는 후회나 실망은 오히려 생명체의 번영을 방해하기도 한다.
뇌의 한계는 그것이 자신을 모사한 기계, 즉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면서 더 극대화되었다. 생명의 역사는 38억 년이나 되지만 인공지능의 역사는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인공지능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두었으며 향후 변화 양상은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예측하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능과 인공지능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간 지능의 한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대열 교수는 인공지능의 학습 능력이 더욱 진보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인간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존재를 위협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능을 능가할 뿐 아니라 인간의 효용과 양립할 수 없는 인공지능 그 자신의 목표를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공지능을 이제까지 인간의 수고를 덜기 위해 발명된 수많은 기계들과 다를 바가 없다.
글. 정유철 기자 npns@naver.com 사진. 바다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