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교육 리서치] 자유의지는 착각인가?

[뇌교육 리서치] 자유의지는 착각인가?

통제와 무기력 사이에서 길을 찾는 항해자의 관점


우리는 정말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있을까?

대체로 우리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도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늘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여러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마침내 결정을 내린다. “마음을 정했어”라고 느끼는 그 순간, 우리는 자신이 결정의 주체라고 생각한다. 내 안의 어떤 ‘나’가 앞으로 나서서 선택한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뇌과학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조금 더 복잡하다. 1980년대부터 신경과학자 벤저민 리벳Benjamin Libet이 진행한 일련의 실험에서는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되었다. 자신이 결정을 내렸다고 의식하기 수백 밀리초 전에 이미 뇌에서는 그 결정과 관련해 측정 가능한 활동, 이른바 ‘준비전위(readiness potential)’가 나타난 것이다. 이후 발전된 뇌영상 촬영 기술을 활용한 연구에서는 그 간격이 경우에 따라 수초까지 길어질 수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

다시 말하면, 당신이 결정을 내렸다고 느끼기 전에 이미 뇌는 그 결정을 향해 움직이고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로버트 사폴스키Robert M. Sapolsky와 같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의미의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우리의 모든 생각과 충동, 행동은 이전에 존재했던 원인들의 결과다. 생물학적 조건과 환경, 경험에 의해 형성된 신경 활동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전개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편한 질문이 하나 생긴다. 우리가 정말 통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저 삶이라는 차에 올라탄 승객에 불과한 것일까?

하지만 이 결론 역시 우리가 모든 것을 통제한다는 생각만큼이나 뭔가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양쪽 모두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정’과 ‘인식’ 사이의 미세한 간격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 ‘결정을 내리는 행위’와 ‘결정을 내렸다고 느끼는 경험’이 서로 다른 것이라면 어떨까?

우리가 마음속에서 여러 선택지를 놓고 고민할 때, 의식의 표면 아래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여러 과정이 가능성을 평가하고, 비교하고, 저울질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나의 방향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는 문장의 형태가 아니다. 선언의 형태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느낌으로 나타난다.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는 느낌. 하나의 성향이나 경향이다. 그리고 나서야 그것이 의식 위로 떠오른다. “결정했어.”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선택’이라고 경험하는 것은 사실 인식에 더 가까울 수 있다. 그 순간 당신이 결정을 처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결정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결정과 인식 사이의 이 미세한 간격을 이해하면 선택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달라질 수 있다.


선택을 바라보는 다른 방식

조금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이런 장면을 상상해 보자. 당신은 작은 배를 타고 강 위에 있다. 강물이 흐르고, 바람이 분다. 그리고 당신의 손에는 노 하나가 들려 있다. 이 상황을 밖에서 보면 당신이 배를 조종해 원하는 곳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조금 다르다. 당신이 강물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바람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배의 반응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당신이 실제로 하고 있는 것은 훨씬 미묘한 일이다. 당신은 느끼고 있다. 물살이 밀어내는 힘을 느끼고, 물의 저항을 느끼고, 바람의 방향을 감지한다. 그리고 그 느낌을 바탕으로 조금씩 조정한다. 배의 방향을 살짝 틀고, 노에 가하는 힘을 조절하고, 몸의 무게중심을 옮긴다. 당신은 자신의 의지를 강물에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강물 속에서 조화를 찾아가고 있다. 

우리는 흔히 ‘느낌’을 모호하거나 감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이성적인 사고보다 신뢰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느낌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느낌은 수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통합하는 과정이다. 여기에는 지적인 정보와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을 통해 들어오는 감각 정보뿐 아니라, 신체 내부 장기의 상태를 감지하는 내수용 감각과 우리 몸의 위치와 자세, 균형과 움직임을 무의식적으로 파악하는 고유수용성 감각도 관여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은 명령이 아니라 방향이다. 하나의 기울어짐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중에 이 기울어짐을 ‘결정’이라고 부른다. 


통제와 무기력이라는 두 극단을 넘어

자유의지에 관한 논쟁은 흔히 두 극단으로 나뉜다. 한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통제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선택을 만들어내는 주체다.’ 다른 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우리는 단지 그 결정들을 실행할 뿐이다.’ 하지만 두 관점 모두 완전하지 않다.

첫 번째 관점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힘의 영향을 간과한다. 생물학적 조건, 성장 환경, 주변 상황, 심지어 뇌에서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과정까지도 우리의 선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반면 두 번째 관점은 그만큼 중요한 또 하나의 현실을 놓친다. 우리에게는 반응하고, 적응하고, 조화를 찾아가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배의 비유는 이 두 극단 사이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당신은 강물을 통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강물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당신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삶은 통제의 문제가 아니다. 삶은 참여의 과정이다.


우리가 ‘선택’할 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택의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 뇌의 여러 시스템이 가능성을 평가한다. 대부분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 감정적·인지적 신호가 각각의 선택지에 가치를 부여한다.

• 그 가운데 하나의 강한 경향이 형성된다.

• 몸은 행동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 의식이 뒤따라오면서 “내가 결정했다”고 인식한다.

• 그리고 마음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설명할 근거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선택’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의 순간이 아니다.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리고 선택했다는 인식은 그 과정의 출발점이 아니라 과정의 일부다. 우리는 자신의 선택을 인지하기 전부터 사실은 그 과정에 이미 참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결정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우리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면,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해온 이야기는 바로 이 질문을 하는 지점부터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강물을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항해자를 훈련할 수는 있다. 그렇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주의력을 단련해 미세한 변화를 더 일찍 알아차린다.

• 내면의 상태를 조절해 즉각적인 반응이 섬세한 감지 능력을 압도하지 않도록 한다.

• 환경을 바꾸어 더 나은 방향성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도록 한다.

• 습관을 형성해 우리가 인지하기 전부터 결정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하면,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억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선택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시스템으로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책임에 대한 매우 다른 관점이다.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아닌, 더 나은 선택에 이를 수 있는 조건을 꾸준히 만들어가는 연습이다.

항해를 처음 하는 사람은 강물과 싸우려 든다. 배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지나치게 힘쓰며 물살에 저항하다가 이내 지쳐버린다.

하지만 숙련된 사람은 다르게 움직인다. 강물을 거스르지 않는다. 바람을 이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 힘들과 함께 움직인다. 움직임은 더 작고 더 정확하다. 때로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훨씬 효율적으로 항해한다.

숙련이란 더 큰 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를 ‘몰입(flow)’으로 볼 수도 있다. 동양의 전통에서는 ‘무위無爲’가 이와 통하는 개념이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억지로 행하려는 의식 없이 더 깊은 질서와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이다.

가장 높은 수준의 통제는 통제를 내려놓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관점은 의사결정만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사람의 행위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힘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라면, 그 사람에 대해 지나치게 가혹한 판단을 내리는 것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자신의 행위를 형성하는 힘들을 알아채고, 그에 의식적으로 반응하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개인의 성장은 여전히 가능하다. 


‘주의력을 되찾는다’는 것의 새로운 의미

요즘 우리는 자신의 삶과 집중력, 결정력 등을 다시 ‘통제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한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통제’라는 단어가 가장 정확한 표현은 아닐 수 있다. 더 적절한 목표는 어쩌면 ‘감지하는 능력 되찾기’일 것이다.

주의력은 단순히 어떤 대상에 비추는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다. 주의력은 강물의 흐름을 느끼는 감각이다. 주의력이 흩어져 자극과 소음에 끌려다니다 보면 그 감각을 잃는다. 주의력을 잃으면 자극에 더 많이 반응하고, 느낌을 더 적게 감지하게 된다.

하지만 주의력이 안정되면 다시 변화가 일어난다. 물살의 변화를 더 일찍 알아차리고, 그 힘에 휩쓸리기 전에 미세한 변화를 감지한다. 그리고 정확하게 반응한다. 

우리는 여전히 흐르는 강물 위에 있다. 하지만 이제 항해할 수 있다.


삶의 지배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수동적인 존재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있을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그렇지 않다. 내 모든 생각의 저자가 나 자신인 것은 아니다. 모든 충동의 출발점이 나인 것도 아니다. 내가 이 모든 시스템 밖에 존재하면서 이를 지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저 물살에 떠밀려가는 수동적인 존재인 것도 아니다.

우리는 느끼고, 통합하고, 반응하는 과정 그 자체다. 우리는 항해자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삶을 이해하는 데 더 유용하고, 더 진실에 가까운 방식일지 모른다.

우리가 떠 있는 강의 물살은 실제로 존재한다. 바람도 존재한다. 우리가 그것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 조건 속에서 어떻게 움직일지를 터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바로 거기에 우리의 힘이 있다.
 

글_스티브 김 IBREA Foundation 이사. 《공생의 기술》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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